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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해석에서 텍스트와 독자의 연관성에 대해-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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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주의자인 데리다(Derrida)는 글을 쓰는 행위를 글쓰기로 규정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텍스트의 의미는 또 독자의 사용에 따라서 다른 언어나 말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된다. 또 다른 단어나 말에 의해서 상치시킴으로써 이전의 의미는 현재의 독자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로 출현한다.

 

텍스트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나타나는데, 하나는 텍스트의 의미가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원의미를 연기하게 하는 것이다. Derrida에 있어서 텍스트의 의미는 차이와 연기를 결합한 차연”, 즉 디페랑스의 개념이다.

 

하지만 해체주의 해석은 새로운 의미를 열어주기는 해도 텍스트가 지시하는 의미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기 때문에 성서해석에 접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신학자 캐빈 밴후저는 해체주의가 성서 텍스트의 의미를 무위화또는 니힐리즘으로 이끌어갈 위험성이 있다고 비판하고, 영국의 신학자 엔서티 티슬턴은 성서라는 텍스트를 독자 자신에게만 애착을 느끼게 하는 나르시시즘으로 이끌어갈 위험성이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에 근거하여 본 연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 그 자체를 환원시키거나 재고려해야 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이때 환원하는 방식이 문자중심주의의 환원이 아니라 텍스트 그 자체의 권위로 환원시키는 일이다.

 

이는 성서해석에서 성서라는 텍스트는 독자에게 하나의 능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해석은 텍스트 자체의 권위에서 출발한다. 텍스트가 권위가 있다는 것은 텍스트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성서라는 텍스트는 독자에게 어떤 능력을 보여준다. 영국의 언어철학자 존 랭쇼 어스틴이 주장했듯이, 텍스트 자체는 발화수반행위발화효과행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스틴은 텍스트 본성에 관한 분석에서 독자가 단어를 가지고 행하는 것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종류의 언어행위들이 있다고 보았다.

첫째는 발화행위이고, 둘째는 발화수반행위이고, 그리고 셋째는 발화효과행위이다. 어스틴은 언어를 수행문으로 이해한다. 이를테면, 기도하기, 사랑하기, 미워하기, 존경하기, 교회가기, 약속하기 등의 문장들은 행동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언어로 발설하거나 표현된 담론 및 텍스트는 행동을 수반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단순 발화행위는 말을 단순히 발설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하고, ‘발화수반행위는 무슨 말이나 이야기를 하면서 무엇인가를 행동하도록 지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컨대 요한복음 2031절에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게 하려 함이요라는 이 구절은 발화수반행위의 실제적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또 요한복음 2124절에서도 이 일을 증언하고라는 구절은 텍스트가 증언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성서 텍스트를 기록하는 이유는 그것이 윤리적이든 또는 신앙적이든 무엇인가를 수행하게 하는 발화수행행위가 따라오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텍스트는 발화효과행위를 통해서 진정한 수행이 실제로 이루어진다. 언어의 말이나 텍스트는 공허한 말로 단순히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발화효과행위는 무엇을 행하도록 단순히 지시하는 것을 넘어서 무슨 말을 건넴으로써 독자에게 어떤 실제적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 발화효과행위가 성서 텍스트에서 주로 일어나는 화행론을 명시적으로 가리킨다.

 

다시 말해, 성경을 읽음으로써 무엇인가 우리 자신에게 어떤 잘못을 지적해 회개의 행동으로 이끌어가거나, 아니면 윤리적으로 올바른 행동으로 인격의 수정을 요청하고 있다. 이 발화효과행위는 하나의 행동을 유발시킴으로써 이전의 잘못된 삶에서 돌이키는 것이나 독자 자신에 대한 행위, 그것이 윤리적이든, 신앙적이든, 행동을 유발하는 설득을 제공하는 능력으로 작용한다.

 

이렇듯, 발화효과행위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분명히 보여준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는 텍스트에 가해지는 객관적 이론의 집요한 구속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텍스트 자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 같은 화행론의 근거에서 성서는 특수한 범주에 속하는 텍스트로 이해하게 되면, 텍스트와 독자의 연관성은 분명히 밝혀진다.

 

그것은 성서 텍스트가 독자나 해석자를 변혁하는 힘을 지니는 연관성에서 더욱 분명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서 텍스트가 독자나 해석자에게 무엇인가 지시하기 때문에 독자나 해석자는 그 자신의 실존적이고 역사적 삶의 정황을 고려하면서 성서를 통해서 그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행동에 대한 결심과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성서 두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디모데후서 316~7절이고, 또 하나는 히브리서 412절이다. 디모데후서 316~7절에서 바울은 성서 텍스트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모든 성경(구약 텍스트)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하려 함이니라.”

 

부연해 설명하자면, 모든 성서 텍스트는 독자나 해석자에게 교훈하고 책망하며 바르게 하는 것과 올바른 것으로 교육하는 데에 효과가 있다.

그리고 성서 텍스트는 독자나 해석자에게 온전한 삶을 살도록 훈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고 행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316~7절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서 412절도 독자나 해석자를 변형하게 하는 텍스트 자체의 수행적 능력을 갖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 말은 성서 텍스트가 죽은 발화나 문장이 아니라 살아 있고 능력이 있는 발화나 문장이기 때문에 독자의 생각과 의도를 밝혀내고 판단하는 텍스트임을 뜻한다. 따라서 성서 텍스트가 해석자인 독자를 변혁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독자는 자신의 신념이나 편견에 의해서 알고 있는 것이 텍스트를 읽는 행위를 통해서 변화될 수 있다.

 

이것이 텍스트가 가지는 변혁의 효과이다. 야고보서 122~3절이 보여주듯이,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텍스트와 독자의 연관성은 발화수반행위발화효과행위의 상호의존적 관계에서 수행적 또는 화행적 관점에서 분명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정승태 교수

한국침신대 신학과(종교철학)

서울목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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