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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떠나는 것과 신앙을 버리는 것

시 론

교회를 떠나는 것과 신앙을 버리는 것

내성인지, 인지능력 상실인지 이제는 별로 놀라지 않는 일을 다시 꺼내는 것은 식상하다 못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학습효과란 쉽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의 교회들이 쇠퇴를 넘어 소멸의 위기에 처한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터라 최근 미국의 종교지형이 유럽처럼 변한다 하여도 별로 마음이 나대지 않는다. 그래도 먹기 싫은 음식,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도 먹어야 하고 기억해야 하듯이 우리의 나아갈 길을 위해 타산지석(他山之石)내지 반면교사(反面敎師)라도 삼으면 영양가는 없어도 배는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상했던 것처럼 미국의 기독교인구가 점점 줄어들어 78.4%였던 2007년의 기독교 인구가 2014년에는 7.8%가 줄은 70.6%로 조사됐고 반대로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특정 종교가 없는 사람들의 비율은 7년 전보다 6.7% 증가한 22.8%로 나타났다. 그뿐이 아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사회구조처럼 교회구조도 노령세대는 증가하고 젊은 세대는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의 위기 속에서 영국의 포스트-에반젤리칼(Post-Evangelical)운동과 그 영향을 받은 미국에서의 이머징 교회 운동(Emerging church movement)은 그나마 이러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에 직면한 교회의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갈수록 그 증상이 중환자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200만을 자랑하던 한국 기독교인이 2005년에는 862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할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더 줄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더 정답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대인논증(argumentum ad hominem)에 의해 기독교의 장래는 희망이 메마른 절망의 골짜기와 같다는 진단을 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볕뉘 같은 희망이 아직 남아있다. 너무 일찍 포기하고 체념하고 현실을 받아들인 것은 냄비 같은 우리의 국민성처럼 성급한 면이 없지 않다. 아직은 포기하기 보다는 다시 힘을 내서 재도전해 볼 가능성이 숨 쉬고 있다. 매우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 매우 절망적인 것도 아니다. 최근 한국 종교 인구 통계를 보면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비율이 5050으로 조사됐다. 50%의 종교인구 가운데 불교인구가 200424%에서 20142% 줄은 22%였는데 반해 200421%였던 기독교 인구는 10년이 지난 2014년에도 21% 그대로였다. 늘어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줄어들지 않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최근 모 일간지에서 보도한 서울의 기독교 인구에서도 나타난다. 서울시민 10094800여 명 중 기독교인은 2654930여명으로 서울 인구의 26.3%로 조사되어 불교인(10.6%)과 천주교인(9.4%)을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희망적인 것은 8년 간 25~27%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안티 기독교인들과 사회적 비판 그리고 한국교회가 작금에 보여준 자살골, 즉 비복음적 행태를 생각하면 이런 통계는 놀라움 또는 기적 그 자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성장은 더 이상 불가능한 것으로 우리 스스로 너무 일찍 희망을 버리며 무력해졌었는데 하나님은 여전히 한국 교회에 희망을 불어 넣으시며 교회를 보존하셨던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래서 희망을 갖는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십자가를 지는 교회와 성도로 거듭나기만 한다면 한국 교회는 다시 부흥의 계절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할까? 먼저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일탈이론인 아노미’(anomie)화 된 기독교적 참된 가치관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더 나가 기독교적 가치의 붕괴를 가져오는 요소들을 제거하여야 한다.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붕괴되면 땅은 온통 범죄, 비행, 자살 등으로 고통당하게 된다. 특히 과학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현대과학은 신의 턱밑까지 다다랐다. 자끄 엘룰(Jacques Ellul)이 말한 대로 과거 신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지금은 과학 또는 의학으로 해결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을 결속시키던 종교의 그 신비함과 그 규범들은 현대사회에서 과학과 인본주의에 의해 점점 약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결국 종교의 신비감을 상실하게 되면서 종교적 아노미와 함께 도덕적 진공상태로 사람들 내면의 황폐화를 가져온다. 현대라는 시대적 관점에서 종교가 사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던 시대는 지났다. 교회를 통한 구원보다 과학을 통한 구원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Copernicus)같은 생각의 전환이 절실하다.

종교가 모든 것을 통치하려하기보다는 종교의 진정한 본질에로 돌아가 그 정신에 충실하여야 한다. 지나친 성장주의, 물량주의로 이탈되었던 교회의 참된 복음의 본질, 그 정신을 제대로 다시 찾아야 한다. 탕자가 돌아오듯이 돌아와야 한다. 탕자는 아버지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으로만 돌아온 것은 아니다. 탕자는 아버지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아버지의 사상, 아버지의 정신, 아버지의 본질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교회는 다시 아버지, 즉 하나님의 진정한 정신, 그 복음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닌, 십자가, 즉 예수그리스도처럼 죽음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세속화된 성장에만 몰입한다면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Juan Carlos Ortiz)가 지적한대로 그것은 진정한 성장이 아닌 비만으로 질병 덩어리가 될 뿐이다.

이러한 모습이 한국교회의 내일이 된다면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이후 지식인들이 기독교를 이탈하듯이 세속화되고 있는 오늘의 기독교는 그 인구를 점점 줄이는 일만을 더 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기독교의 아노미현상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아직 희망의 실오라기가 그 불꽃을 피우고 있을 때 U턴해야 한다. ‘골든타임이라는 말처럼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가 다시 복음으로의 회복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일지도 모른다. 지금, 기회의 오늘을 놓친다면 데이비드 키네먼과 게이브 라이언이 저서 나쁜 그리스도인’(Unchristian)에서 기독교는 이제 궤도를 벗어났으며, 더 이상 그리스도께서 맨 처음 의도하신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 기독교는 더 이상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다라는 맛 잃은 소금으로 딜러드 윌러스가 잊혀 진 제자도에서 일갈한 대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거룩, 즉 성화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그의 피, 즉 구원에만 관심 있는 사람으로 그가 표현한 대로 뱀파이어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할 것이다.

다시 기독교의 참된 정신, 본질인 예수그리스로 돌아가야 하는 그 당위성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이유도 고민도 없이 오늘의 우리 스스로를 깨뜨리면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다시 소생할 수 있다. 신앙을 떠난 사람은 혹시 몰라도 교회를 떠난 사람은 다시 교회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 교회와 신앙을 떠나면서 1200만의 성도가 862만으로 줄었지만 다시 복음적인 바른 교회로 돌아간다면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다시 교회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에서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목회사회학연구소가 그들을 조사한 것에 의하면 교회를 떠난 이유가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원해서 30.3%, 목회자에 대한 불만 24.3%, 교인들에 대한 불만 19.1%, 신앙에 대한 회의 13.7%였다. 이 이유들의 면면을 보면 변질된 교회로부터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현재의 교회를 떠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교회를 떠났지 신앙을 떠난 것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교회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 53.3%가 언젠가 다시 교회에 나가겠다고 대답했고, 13.8%는 가능한 빨리 나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가고 싶지 않지만 나가지 않는 거 자체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12%였다. 이렇듯 79.1%의 사람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돌아와 교회다운 교회 신자다운 신자가 된다면 신앙을 떠난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성령은 그들에게도 여전히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교회 내 참된 기독교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을 회복한다면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연어(?)처럼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말고 다시 복음의 능력 안에서 희망을 갖고 우리의 참된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 교회 전체가 변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섬기는 교회부터 복음적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한국교회 전체의 신뢰는 잃었어도 아직 남아 있는 성도들은 자신이 섬기는 교회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신뢰할 만하기에 남아있는 것이다. 상황화 된 복음을 복음으로 상황화 되는 참된 교회의 본질과 사명으로 돌아가 그리스도예수의 제자가 되고 세상의 바른 빛과 소금이 되는 믿음을 준다면 남아있는 성도는 물론 떠난 성도들도 다시 교회에 돌아와 세상을 향한 교회적, 신자적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누구부터가 아니다. 나부터, 우리가 섬기는 교회부터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으로 돌아가 교회다운 교회, 목사다운 목사, 성도다운 성도가 되면 한국교회 전체가 한국사회의 절대적 가치로 모든 삶의 방향이 되면서 다시 바른 부흥의 계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계인철 목사 / 광천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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