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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교수의 문화 나누기>멘델스존의 종교 개혁 교향곡

10월의 달력을 살펴보다가 눈에 띄는 날이 마지막 날이었다. 책상 위에 달력에는 올 해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작은 글씨로 종교개혁일이라고 적혀있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고대 켈트인의 삼하인(Samhain) 축제에서 비롯된 할로윈 데이라는 지극히 미신적인 축제일과 겹치는데 그래서 이 날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마틴 루터가 1517년 비텐베르크 성안 교회당 정문에 95개조의 논조라는 문서를 붙인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종교개혁일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사전적 이해이다. 그러나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이 다시 선포되고 복음이 제대로 전달되어 질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 진 날이기에 세월이 지나도 기독교인들이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날이다.


이 날의 중요성과 의미를 음악으로 표현한 작곡가가 있다. 바로 독일의 작곡가, 멘델스존(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이다. 유대인이지만 개종한 기독교인으로 평생을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한 작곡가 멘델스존은 5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마지막 5번 교향곡이종교개혁 교향곡작품 107번이다. 이 작품은 1830년 종교개혁 300년을 기념 축전을 위해 작곡된 작품으로 루터의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삽입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모두 네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루터의 신앙고백 300주년 행사를 위해 특별히 작곡된 것이었지만 가톨릭의 극심한 반대로 무산되는 바람에 원래의 목적대로 연주되지 못하고 2년 후 베를린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일부 음악학자들은 이 작품이 멘델스존 특유의 낭만적 서정성보다는 딱딱함과 엄격함만 있는 작품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작곡가 스스로가 인간적인 감성보다는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엄숙함과 경건함을 표현하려는 의도에 의한 결과이기 때문에 이런 비판은 상당히 왜곡된 견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멘델스존은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 작품에서 나타나는 양식이나 기법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먼저 1악장은 17세기 드레스덴 궁정에서 사용하던드레스덴 아멘을 사용한 장중함은 새로운 종교의 기원과 발전을 암시하는 듯하다. 크리스마스 축제를 묘사한 듯한 빠르고 경쾌한 2악장에 이어 짧지만 간절한 기도의 선율을 연상하게 하는 3악장이 아름답다.


찬송가내 주는 강한 성이요의 선율을 중심 주제로 펼쳐지는 4악장은 장엄한 찬양으로 곡 전체를 힘차게 마무리한다. 이 작품의 구성이나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멘델스존의 찬양의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시종을 진지하고 경건하게 이끌어가면서도 음악이 갖는 특별한 아름다운 소리와 울림의 조화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작곡가의 믿음의 통찰력이 감동을 준다.


자신의 달란트를 하나님을 향한 견고한 믿음과 온전한 순종의 고백으로 표현한 음악이 종교개혁 교향곡이라 할 수 있다. 멘델스존의 음악이 특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음악어법과 작곡기법을 다른 목적으로 쓰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사용하겠다는 결단의 마음이 바로 멘델스존의 음악이 우리에게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올해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날에는 멘델스존의 음악과 함께 그가 남긴 값진 신앙의 유산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고 오직 예수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고백을 음악과 함께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늦가을, 특별한 은혜의 시간이 될 것이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란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 시리로다. 이 땅에 마귀 들 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종교혼합주의가 만연한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이 찬송의 고백이 생명의 근원이 되기를 기도한다.

최현숙 교수 / 침신대 피아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