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분노의 뿌리 ③ - Recognition

가정회복-5

자신에게 있는 분노의 뿌리를 이해하는 작업은 분노조절의 첫 걸음이기도 하다. 내가 별것도 아닌 일에 엄청나게 화가 날 때는 실수를 한 상대방의 잘못도 있겠지만, 내 안에 예전부터 숨겨진 화약고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있어야 분노 아래 숨겨진 진짜 이슈와 현실을 구분해 낼 수 있다. 문제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다. 실제로는 한주먹 거리의 문제를 집채만 한 문제로 오해하지 않을 수 있다. 한 달간 삐질 일과 5분간 섭섭할 일을 구분 할 수 있다. 그래서 조금 덜, 조금 짧게 화낼 수 있다.


W양은 상담소를 들어서면서도 씩씩거렸다. 남편과 한바탕 싸우고 집안을 다 뒤집어 놓고 왔단다. 몇 년째 졸업을 못하고 질질 끄는 남편이 꼴도 보기 싫었다. 빨리 학위만 마치면 얼마든지 좋은 직장에서 모셔갈 만도 한데, 공부해야 한다는 이유로 시간당 기본수당만 주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으니 속이 터질 노릇이다. 자신도 일을 하건만, 옷가지를 정리하고 계산대에서 잔돈을 거슬러 주는, 그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단순한 직업에 신물이 났다. 자기의 삶이 왜 맨날 이도 저도 아닌가 한숨만 났다. 자신의 삶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줄 것 같던 남편이 계속 제자리걸음인 게 실망스러웠다. 그 날은 작정을 하고 달려들어서 남편이 보던 책을 죄다 찢어놓고 왔다.


W양의 행동은 언뜻 보면 악처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도록 파괴적이고 충동적이다. 여자가 저렇게 거칠면 남편이 어떻게 기를 펴고 살까 싶을 수도 있다. 또 아내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능하고 답답해 보이는 남편에게 다정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W양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왜 그렇게 매사 화가 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녀는 7명의 아이 중에 딱 중간으로 태어났다. 공부를 아주 잘한 것도, 그렇다고 아주 못한 것도 아니었다. 눈에 확 띄도록 예쁘지는 않았는데 아예 매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얻었는데 그다지 좋은 직장도 아니었지만 아주 형편없는 것만도 아니었다.  W양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Average, 딱 중간”이라는 단어였다. 그녀는 어딜 가나 잘 나지도 못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점이 신물이 나도록 싫었다.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인식은 그녀에게는 항상 분노로 향하는 방아쇠(trigger)가 되었다. 특징이 없었던 자신의 삶을 확 바꿔놓을 수 있을 것 같았던 남편은 기대하는 만큼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남편이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면서, 스스로를 향하던 분노는 남편에게로 부어졌다.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던 세상의 향한 분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처럼 그녀 안에서 부글거렸다. 그런데 남편은 이 화산의 마그마를 쏟아낼 빌미를 제공하곤 했다. 우리가 쏟아내는 분노에는 여러 갈래의 뿌리가 있다. 겉으로는 알기 힘든 숨겨진 이슈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인정(Recognition) 받고자 하는 갈망이다. 자신의 존재나 능력을 인정받는 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다. 나를 알아주는 상사가 있으면 목숨 바쳐 충성하기도 한다. 반대로 무엇을 해도 인정받지 못했던 기억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옆에서 보면 별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일이 도화선을 따라 타들어 가면서 가슴에 묵혀진 상처를 또 건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케케묵은 아픔이 엉뚱한 상황에서 분노로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도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인정과 격려에 목마르다.


아이들인 서너 살에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엄마, 아빠, 여기 봐. 나 좀 봐봐”이다.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끊임없이 보여주고 싶어 한다. 거기에 가족들은 기쁨으로 반응하면서 아이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특별한 존재임을 각인시킨다. 남의 아이들도 다하는 걷기, 구르기, 말하기도 우리 아기가 시작하면 세상에서 이런 천재는 둘도 없을 것처럼 기뻐한다. 두 세 발자국 걷다가 넘어져도 “잘했어요.”라고 박수치는 가족들 때문에 신이나 또 일어나 걷는다. 그런데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정, 있는 그대로 충분히 멋지고 귀하다는 의식이 좌절되거나 박탈되면 상처받기 시작한다. 성적표에 기재된 5개의 A보다는 한 개의 B 때문에 야단을 맞았던 기억들이나 너무 바빠서 경기장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아버지가 그 기억창고 저편에 저장되어 있을 수도 있다. 어머니가 나를 늘 못난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르고, 공부 잘하고 똑똑했던 형의 그늘에 항상 가려져 자랐을 수도 있다.


한 자매는 말한다. 어느 순간에 자기가 예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자기는 공부라도 안 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단다. 죽도록 공부해서 일류대학에 갔다. 그런데 막상 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인정받아야 하는지 알 도리가 없어서 또 좌절한다. 다른 사람을 웃기지 않으면 주목받을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는 재미있고 웃기는 아이가 되지 않으면 아무도 자기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를 편하게 해주고 농담도 하다보면 꼭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어 더 깊이 상처가 되었다. 우리는 어려서는 가족들에게, 커가면서는 친구와 주변인들에게 끊임없이 인정받고자 한다. 특별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얼짱, 몸짱이 되고 싶고, 달인이 되고 싶다. 이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는 상처받았다고 하고, 그리고 분노한다. 그래서 현재에 날 알아주지 않는 그 누군가 에게 더 화가 치솟는 것이다.


운전 좀 천천히 하라고 잔소리라도 하면 남편이 화를 버럭 내며 소리친다.  “너, 나 무시하냐? 왜 그렇게 사람을 못 믿냐?” 운전을 천천히 하자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는 그냥 안전의 문제이다. 그런데 남편은 신뢰의 문제, 자신이 능력 이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로 인식 하는 것이다. 아내가 조금 전에 일러둔 일을 남편이 깜박 잊었다. 분명히 마켓에서 우유 좀 사다달라고 했는데 빈손으로 덜렁덜렁 들어온다.
이내 아내는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내가 우스워?”라고 언성을 높인다. 남편 생각에는 단순히 건망증이 이슈이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자신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가의 문제로 다가서는 것이다. 지금 당장 벌어지는 현재의 일보다 더 뿌리 깊은 다른 문제가 분노의 원인이 된다.


교회에서 ‘박사님’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하고 똑같이 ‘집사님’이라고 날 부르는 어느 사람이 정말 미워질 수도 있다. 안수집사 선정에서 탈락하면 너무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 버릴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은 때가 안 된 기다림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데 당사자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다는 깊은 상처와 거절감의 문제가 돼버리는 것이다. 과거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상처와 잘못 된 확신은 우리를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는 방해꾼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무리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셔도, 나의 귀한 자녀라고 인정하셔도 믿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벌주시는 하나님, 정죄하시는 하나님, 판단하시는 하나님으로만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단단히 오해하는 것이다. 날 인정하지 않았던, 날 칭찬하지 않았던 나의 부모님처럼….
/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미주)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배너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