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낙태가 화제다. 낙태가 불법인 대한민국이 낙태율 1위이다. 신생아 수는 40만 명인데, 낙태 수는 110만 건이다. 상황이 이런데 낙태가 합법화되면 하루에 죽는 태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태아는 그냥 핏덩어리나 제거해야 할 암 세포가 아니라 독립적인 생명체다. 이것은 생명과학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태아는 수정 된지 16일 째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40일이 지나면 뇌파가 측정된다. 심장이 뛰고 뇌가 살아 있는데 이게 생명이 아니면 무엇이 생명인가. 태아는 단순한 세포, 결정권, 자유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가장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생명이다. 생명권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요 국가의 책임이다. 그뿐 아니라 낙태를 한 사람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미 모자보건법엔 임산부와 태아를 고려해서 낙태에 대해서 처벌 받지 않는 조항이 많다. 낙태죄는 유지돼야 한다. 태아는 세포가 아니라 아이(child)다 낙태는 가벼운 죄가 아니다. 낙태는 살인이라고 성경은 증거한다. 성경을 추적해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니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에게 정혼되었으나 그들이 동거하기 전에 그녀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아이를 가진
우리교단 기독교한국침례회(The Korea Baptist Convention)는 대한민국의 침례교 신앙을 표방하는 교단이다. 우리교단은 1889년 12월 8일 한반도 땅을 밟은 캐나다 선교사 말콤 펜윅(Malcom C. Fenwick)의 선교로 시작됐다. 우리교단은 지금의 북한 원산에 본부를 두고, 한반도 전역은 물론, 해외선교에 주력하여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선교를 했으며, 일제와 공산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받아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했고, 일제로부터 교단 해체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1944년 5월 10일 일왕에 대한 신사참배거부로 인한 침례교단 해체령이 내려졌다. 광복 후에 다시 교단이 재건됐고 지난 2015년 105차 총회는 ‘5·10 침례교(단) 신사참배거부 기념일’을 제정해 해마다 지켜오고 있다. 침례교회는 성경을 신앙의 유일한 권위와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성경무오설, 성경해석의 자유, 신앙고백 등을 강조한다. 또 전신자제사장주의(만인제사장설)를 표방하며, 신앙의 자유와 교회와 국가의 분리(정교분리), 신자의 교회로서 회중정치를 내세우고 있다. 가장 성경적인 교단, 선교하는 교단인 기독교한국침례회는 오는 2019년이 ‘선교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
총회가 끝났다. 논쟁보다는 화합과 미래를 위한 대의원들의 합심으로 예정보다 하루 빠른 날짜에 마무리가 됐다. 규약 개정도 90%가 통과됐다. 교단발전의 미래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총회로 마무리 지어졌다. 하지만 고질적인 문제가 남았다. 그것은 바로 선거만 끝나면 썰물처럼 총회 회의 현장이 텅 비어버린다는 점이다. 물론 타 교단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총회 현장의 대의원 숫자가 줄어들긴 하지만 우리교단은 그 현상이 더욱 심한 느낌이다. 선거 당일 앉을 자리 없이 빼곡히 들어선 대의원들이 선거만 끝나면 어디로 갔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이후 회무는 소수만이 자리에 남아 교단의 중요 문제를 결정짓게 된다. 투표는 굉장히 중요하다. 대의원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하지만 그 의무와 권리는 표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극단적인 예를 들어 선거 후 소수만 남은 총회 현장에서 “주님께서 동성애를 허락하셨으니 우리 모두 동성애자에게 목사 안수를 주자”라고 결의해버린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다음 정기총회 때는 부디 선거가 끝난 후에도 많은 대의원들이 자리에 남아 교단의 미래를 계획하고 설정하는 일에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린다.
2) 삼자 : 이정희 목사(부인 서영임)의 자녀들 자子: 이기대, 이기윤, 이기중 이정희 목사(대전온천지방회 주님의기쁨교회 원로목사)는 침례신학대학교 8대 총장(94년)을 역임했다. 이정희 목사의 장남과 차남은 각자 자기가 속한 교회에서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삼남 이기중 목사는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석사를, 미국 텍사스에 있는 서남침례신학대에서 목회학 박사를 받고 4대째 목사이다. 3) 이덕여 목사의 자녀들 그들은 다 충성스러운 교인들로 자기가 속한 교회에서 집사로 봉직했다. 셋째 딸 이숙자 집사는 남매를 낳았고, 맏딸 남혜숙의 남편은 박영홍 목사인데 장로교회 목사로 봉직했고, 넷째 딸 이춘자 집사는 오남매를 낳았고, 장자인 성은창 목사가 있고, 현재 호주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2. 이덕여 목사의 동생 이덕흥의 자녀들 자子: 이창희, 이창홍, 이경희, 이요섭. 여女: 이연희, 이복희 이덕흥 목사의 자녀들은 다 각자의 교회에서 충성스런 신자들이고, 장남 이창희 목사는 기독교한국침례회 18대 총회장을 역임했고, 사남 이요섭 목사는 2017년도 교회진흥원 제4대 원장으로 취임해 봉사하고 있다. 두 딸들이 있는데 장녀 이연희 사모는 고 김선경 목사(칠산)의
제108차 경주총회가 은혜롭게 끝났다. 올 한해 교단의 주요 현안에 대해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아 자칫 정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총회였지만 예상과 달리 차분하게 진행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회장 선거열기가 과열 된 것 만 빼놓고는 모든 것이 무난했다. 대의원들은 총회 규약 수개정을 비롯해 목회자 인준, 가입교회 인준 등 총회의 행정적 처리부터 상정안건 처리까지 총회의 질서를 확립하고 명실공히 교단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의미 있는 결의를 이뤄냈다. 이는 협력과 협동을 추구하는 침례교회가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능동적으로 감당하고 또한 교회의 독립성과 총회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침례교회는 총회 중심의 일처리가 아닌 개 교회 중심, 지방회와 기관들이 총회와의 협력을 통한 사업총회로의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총회장 의장단 선거는 교단 안팎에서 큰 관심을 받았으나 총회장 선거 뒤 많은 대의원들이 회의장을 떠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세 번째 도전한 박종철 목사(전주새소망)가 제108차 총회장으로 당선됐으며 그동안 공석으로 남아있던 제2부총회장에 이종성 목사(안산상록수)가 당선되어 총회 의장단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덕여 목사가 가장 좋아 하던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대는 모든 경우에 정신을 차려,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디모데후서4:5)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2:18~25) 이덕여 목사가 늘 사용하던 말씀은 다음과 같다. 의중백귀출(疑中百鬼出) : 즉 의심하면 백가지 귀신이 나돌아다닌다는 말씀이다. 이덕여 목사는 광시면 광시리 이장을 했는데 동네 사람들에게 분쟁이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는 지도자의 역할을 했다. 그때에 분쟁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서로 믿고 살아야지 그렇게 의심하면 없었던 일도 생겨 분쟁이 그치질 않는다고 타이르다시피 했다. 대인 관계에서도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쳐주는 교훈이 담긴 모습이었다. 사람이 두 주인 ‘재물과 하나님’을 못 섬긴다(마 6:24, 눅 16:13)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안(NAP)의 독소조항 폐지를 위한 한국교회의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제3차 NAP는 지난 8월 7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인권을 앞세워 NAP를 시행하려는 현 정부는 대다수 국민의 인권은 억압 침해하고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국가의 힘을 동원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나 다름없다. NAP의 핵심은 헌법에 기초한 양성평등을 무력화하고 성평등, 즉 동성애를 옹호하며 성소수자들을 정부가 나서서 보호하고 지켜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차 동성애와 동성혼까지 합법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NAP는 성경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앞날에 재앙이나 다름없다. 최근 NAP의 독소조항 폐지를 위한 ‘국민기만 인권정책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비대위는 지난 8월 27일 한기총 한기연 한국교회교단장회의 전국 17개광역시기독교연합회 등 기독교연합기관을 비롯해 타 종교 등 500여 시민단체가 참여했다. 이날 비상대책위원회 참석자들은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NAP 독소조항 반대를 크게 외쳤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는 최근 ‘각 교단들의 9월 총회에 바란다: 국가인권계획은 제2의 신사참배
이 감노는 “비록 물질적으로는 놈들에게 빼앗김을 당한다 해도 우리의 신앙정신은 빼앗길 수 없다.”라는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신앙을 지키자고 외쳤다. 그리고 마을 사랑방에서 집안의 안방에서 신도들을 모아 주일을 지켰다. 1945년 8월 조국은 광복을 맞이했다. 해방된 조국은 자유롭게 찬송을 부르고, 자유롭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신앙의 자유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고자 흩어진 교인들을 모으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원산사건은 다음과 같다. 일제(日帝)는 1941년 12월 7일, 미국의 진주만 공격과 동시에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그들은 교회의 공식집회 때에는 국민의례를 강요하고, 교회 안에서 국기배례, 황궁요배, 출정 장병의 무운장구를 위한 묵념, 황국신민서사를 외워 제창하도록 강요했다. 또한 일제는 이러한 전시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교회의 지도자들과 신도들에 대하여 일제히 검거에 나서 불응자들은 본격적으로 투옥하였고 선교사들은 모두 추방했다. 1942년 6월 10일에 원산의 헌병대는 교단총부를 불시 수색하는 동시에 이종근 감목을 검거 구속했다. 이들은 이 감목에게 동아기독교의 교규(敎規)에 명시된 몇 가지 사항에
108차 정기총회에 교단 역사상 가장 많은 교회와 대의원이 등록했다고 한다. 총회 대의원은 1680여 교회와 기관에서 1950여명이다. 이는 교단의 대한 관심과 차기 교단을 이끌어갈 지도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만큼 경주총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총회장 선거다. 총회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김오성 목사)는 지난 8월 30일 대전 침례신학대학교 아가페 홀에서 의장단 후보 공개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 방식은 각 후보자가 기호 순으로 5분간 기조발언을 시작으로 패널 질문 및 답변 후보자 상호 질문 및 답변, 방청객 질문 및 답변 순으로 열렸다. 먼저 총회장 후보인 기호 1번 박종철 목사(새소망)는 교단의 이상과 가치를 존중하고 총회의 공동 목적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이해하고 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목사는 △개척교회와 미자립교회 세우기 △목회자 총회 연금 전원 가입 △신학교 수습위원회 구성으로 신학교 정상화 의지 등을 드러냈다. 이어 기호 2번 고명진 목사(수원중앙)는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해 희망의 내일로 나가기 위한 섬김과 희생의 본을 보이겠다고 강조했다. 고 목사는 △침례신학대학교 정상화 △총회 연금 재단 발전
우리교단 제108차 의장단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가 확정됐다. 108차 총회 의장단 본등록이 끝난 지난 8월 27일 서울 여의도 총회 빌딩 13층에서 교단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김오성 목사, 선관위)는 ‘제108차 총회 의장단 선거 출정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 감사예배에서 제비뽑기 결과 박종철 목사(새전주)는 기호 1번, 고명진 목사(수원중앙)는 기호 2번을 뽑았다. 본등록 결과 제1부총회장 후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제2부총회장에 단독 출마한 이종성 목사(상록수)는 자동으로 기호 1번을 받았다. 우리교단은 최근 몇 년 동안 총회장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간의 상호 비난 등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정작 교단발전과 협동총회를 만들기 보다는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더 많다. 해마다 9월 정기총회가 다가오면 서로 목회 동역자란 의식보다는 진영논리에 빠진 채 대의원들은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서서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했다. 따라서 후유증도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대의원들은 총회장 후보가 바뀔 때마다 어제의 동역자가 오늘의 배신자가 되어 서로를 적으로 여긴다. 침례교단은 한 집 건너면 혈연·지연·학연 등의 인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나 혼자서 그 길을 가네 나 혼자서 가야 하네 누가 대신 가 줄 수 없네 나 혼자서 가야 하네 나 혼자서 십자가 지네 나 혼자서 져야 하네 누가 대신 져 줄 수 없네 나 혼자서 져야 하네 나 혼자서 죽어야 하네 나 혼자서 죽어야 하네 누가 대신 죽어 줄 수 없네 나 혼자서 죽어야 하네 나 혼자서 심판대 서네 나 혼자서 서야 하네 누가 대신 서 줄 수 없네 나 혼자서 서야 하네 시인은 1908년 평북 박천 출생으로 평양 서문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유학을 떠나 경도여전과 동경 가정학원 연구과를 수료했다. 이후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와 선천보성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일제의 신사참배의 맞서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해방후 도미해 노스웨스턴대학과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를 수학했고 김동명 목사와 결혼 후 LA한인교회를 개척하며 왕성한 선교활동을 벌이다가 1997년 10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대화회(오늘의 총회) 풍경 매년 개최되는 대화회는 교단의 큰 행사였다. 전도인 직분을 받은 교인들은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이들은 전도활동에 대한 체험담을 듣게 되고 또한 세워진 교회들에 대해서도 서로 간증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므로 대화회는 지금의 정기총회와는 사뭇 다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대화회에 참석하는 교인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더구나 대화회 기간에는 사경회도 함께 실시함으로 인해 모든 참석자들이 교회에서 숙식을 같이하며 며칠 동안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은혜에 빠지는 시간이었다. 회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임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아름다운 친목의 시간도 됐으며, 개회 예배시 성만찬 예배를 드릴 때는 거룩하고 엄숙하며 감사함으로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이 많았다. 임원선거를 통해 새로운 임원들을 선출했는데 정말 모든 참가자들이 기도하는 심정으로 임원을 선출했다. 이때는 임원이 되는 것은 일제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목숨을 내놓아야만 감당할 수 있는 직책이었으므로 임원에 선출된 직분자들은 숙연한 자세로 받아들였다. 이덕여 목사의 인품 매년 한차례씩 개최되는 대화회(총회)에는 전도인 이상이면 모두 참석하는 교단의 큰 행사였는데 이덕
또 다시 통합에 합의하면서 한국교회가 ‘하나되기’ 위한 연합을 시도하고 있다. 보수교단의 연합기관인 (사)한국기독교연합(대표회장 이동석 목사, 한기연)과 한국교회총연합(공동대표회장 전계현, 최기학, 전명구, 이영훈 목사, 한교총)은 지난 8월 17일 한기연 회의실에서 통합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통합 관련 양 기관통합추진위원회의 합의 사항을 발표하고 오는 12월 창립총회를 개최한다고 대내외에 선포했다. 두 기관의 통합 방향은 서로의 역사를 존중해 이를 승계하고 또 회원을 모두 인정하되 교단 중심으로 운영하며 통합총회에서 대표회장은 3명을 공동대표로 추대하고 이 중 1인을 법인이사회 대표로 추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또한 한기연과 한교총 통합과 함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엄기호 목사, 한기총)와의 통합도 계속해서 추진해 가기로 했다. 그동안 교계 연합기관은 보수 성향의 한기연, 한교총, 한기총과 진보 성향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등 4개 기구 체제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양 기관의 통합에 대해 회의적인 전망이 적지 않다. 이미 1년 전에 한기연의 전신인 한교연과 한국교회교단장회의가 보수교단의 통합을 합의하고 창립총회까지 추진키로 했지만 정관 등의
제3차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안(NAP)이 지난 8월 7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한국 교계는 “순교적 각오로 저항할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국무회의 통과 전 혈서 투쟁도 벌이고 1일 시위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교계 기자를 하면서 계속 의아한 것이 있었다. 사회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어떤 교계 연합단체는 관련 성명을 발표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성명을 발표하면 정부가 두려워 할 것”이라고 자부한다. 성명서 하나가 그렇게 영향력이 있나? 대체 무슨 효력이 있길래? 물론 교계가 어떠한 입장이다라는 것을 알릴 수는 있지만 성명서 하나 가지고 정부가 두려워서 벌벌 떨 것이라면 굳이 그런 문제되는 행위들을 무리하게 했을까 싶다. 성명을 발표하든지 말든지 그들은 그저 법으로 일을 처리해 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내 기조는 동성혼 합법화 반대 운동에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항상 똑같은 얼굴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운동을 펼쳐나간다. 그런데 지금 NAP는 통과됐고 차별금지법도 시간문제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심한 말로 이들에게 동성혼 합법화를 막을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오히려 일선 운동가들이 아닌 교단장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해법들을 제시
1938년까지 예산과 당진 그리고 천안 지역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다. 그 해 9월 원산에서 열린 대화회에서 감노(監老) 직분을 받았다. 교회로 돌아온 이 감노는 구역 내의 모든 교회를 돌며 전도에 박차를 가했다. 교인들은 이 감노의 말에 순종하여 열심히 전도했다. 이러한 전도를 통해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교회로 들어왔다. 전도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갖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마을에 들어가서 전도하려고 하면 마을 주민들이 농기구를 앞세우고 달려들면 빨리 피해야만 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유대인들에게 쫓겨 데살로니가로 도망을 갔지만 그곳에서도 꿋꿋하게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이 감노가 이끄는 전도대들은 쫓겨나는 일도 많았고, 두들겨 맞을 때도 많았지만 그러한 고난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고 세운 교회들이기에 더없이 보람이 넘치고 감사가 넘쳤으며, 전도대원들의 기쁨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었다. 전도대원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국에 흩어진 교회에 다니며 간증을 함으로 다른 지역의 교회들도 전도에 힘을 얻고, 열심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됐다. 1942년 9월 4일 일제 탄압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