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나 혼자서

고(故) 안이숙

나 혼자서 그 길을 가네
나 혼자서 가야 하네
누가 대신 가 줄 수 없네
나 혼자서 가야 하네
나 혼자서 십자가 지네
나 혼자서 져야 하네
누가 대신 져 줄 수 없네
나 혼자서 져야 하네
나 혼자서 죽어야 하네
나 혼자서 죽어야 하네
누가 대신 죽어 줄 수 없네
나 혼자서 죽어야 하네
나 혼자서 심판대 서네
나 혼자서 서야 하네
누가 대신 서 줄 수 없네
나 혼자서 서야 하네



시인은 1908년 평북 박천 출생으로 평양 서문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유학을 떠나 경도여전과 동경 가정학원 연구과를 수료했다. 이후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와 선천보성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일제의 신사참배의 맞서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해방후 도미해 노스웨스턴대학과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를 수학했고 김동명 목사와 결혼 후 LA한인교회를 개척하며 왕성한 선교활동을 벌이다가 1997년 10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총회

더보기
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