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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그리는 법

비전 묵상-37

한재욱 목사
강남비전교회

“서양화에서 달을 그린다고 하면 붓으로 달의 모양을 확연하게 표현하겠지만, 동양화에서는 붓으로 직접 그리지 않는다. 달을 감싸고 있는 구름을 그림으로써 거기 달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달이 있는 자리만 보여줄 뿐! 주변의 구름만 부지런히 그려내면 어느 순간,거기 달이 떠 있다. 이런 기법을 동양화에서는 ‘홍운탁월(烘雲托月)’이라고 한다.”


김미라 저(著) ‘김미라의 감성사전’(책 읽는 수요일, 3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달을 그릴 때만이 아니라, 구름이나 안개를 그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붓으로 구름이나 안개를 직접 그리기보다는 산과 산, 산과 나무 사이에 여백을 둠으로써, 그것이 곧 구름이 되고 안개가 되도록 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내가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아무리 자랑을 해도 마음에 와 닿지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옆 그림 즉 그가 살아왔던 삶, 지금 살고 있는 삶을 보면 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문열의 ‘시인’은 우리가 잘 아는 설화 김삿갓 김병연의 이야기입니다. 가족의 애타는 바람을 뒤로 한 채 시인이 되어 일탈의 세계로 들어선 김삿갓을 둘째 아들 익균이 찾아 나섭니다. 이미 두 번이나 아버지를 놓친지라 단단히 벼르고, 드디어 아버지를 찾아 귀갓길에 오릅니다. 길을 걷다가 아버지가 안 보여 화들짝 돌아보면 바위 곁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모습은 사람이 아니라 바위였고, 소나무였습니다.


아버지가 “저기 저 꽃이 아름답다”고 하면 이끼 낀 바위에 천년의 꽃이 피었고, “저 구름이 참 유유하구나”하면 전설 같은 구름이 하늘에서 유영했습니다. 익균은 닷새를 같이 다니며 아버지가 시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새벽에 아버지가 삿갓을 챙겨 나가려 했습니다. 나가기 전 아들을 한참이나 바라봅니다. 익균은 아버지를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속으로 말합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당신의 시 속에서 내내 고요하고 넉넉하십시오.”
직접 달을 그리지 않아도 달을 볼 수 있고,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낮고 헐한 사람들이 수없이 모여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시지 않아도, 이미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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