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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몬의 침략을 막아낸 사울(삼상11:1~15)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12

 

전 국민이 코로나19로 대구가 생지옥 같았던 지난해 3, 직접 트럭에 타고 대구 시내를 돌며 마스크를 나눠준 영화배우가 있었다. 바로 김보성씨다. 한 번도 아니고 같은 달에 또 다시 대구로 달려갔던 김보성씨는 의리의 사나이로 소문난 배우다. 그로 인해 한때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의리 신드롬에 빠질 정도였다.

 

의리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 즉 인간의 기본 인성 이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이런 기본적 인성인 최소한의 의리마저 다 무너진 듯한 전쟁이 일어난다. 그 전쟁이 바로 암몬과의 전쟁이다.

 

형제국과의 전쟁

요단강 동쪽 나라 암몬은 요단강 서쪽 해안가의 블레셋과는 달리 사실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안 되는 나라였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형제국이기 때문이다. 암몬은 모압과 함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이 세웠고, 에돔은 에서의 후손들이 세웠다.

 

그래서 신명기에 보면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너의 형제니라”(23:7)고 했고,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게 말라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2:19)고 했다. 서로 미워 하거나 싸워야 할 상대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사실 형제가 어릴 때는 자라면서 싸울 수 있지만 다 커서 싸우면 그것처럼 볼썽사나운 것도 없다.

 

그런데 암몬이 이스라엘의 신정 제도에서 왕정 제도로의 전환기를 노려 형제 관계를 무시하고 침략해 왔다. 그것도 그냥 침략이 아니다. 암몬 왕 나하스(Nahash)의 공격은 매우 잔인했다. 길르앗 야베스로 침략했는데 길르앗은 곡창지대이고, 야베스는 그 지역의 한 성읍이다.

 

20세기 최고의 고고학적 발굴이라 일컬어지는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무엘서 사본에 의하면 나하스는 매우 잔인해서 대적하는 자마다 그 오른눈을 뺐다고 한다. 사람의 눈을 빼는 것은 전투력을 무력화시키고 최대한 모욕을 주는 잔인한 행위였다. 그런데 쿰란 사본은 당시 요단 동편에 거하는 이스라엘 백성 중 나하스의 이 잔인함에서 벗어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아마 이 침략은 암몬 족속에게 포로로 잡혔던 7000명이 탈출해서 길르앗 야베스로 피신했기에 이를 구실삼아 나하스가 길르앗을 공격한 것 같다. 당황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외교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1). 심지어 암몬의 봉신이 되는 계약, 식민지가 되는 계약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나아스는 단호히 거부하고, 길르앗 야베스를 식민지 삼은 것은 물론, 야베스 백성들의 오른 눈을 다 빼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다(2).

 

형제국가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잔인함이자 모욕이다. 단순한 이웃 관계여도 이건 너무 심한 협박 아닌가? 우리 속담에 팔백금(八百金)으로 집을 사고, 천금(千金)으로 이웃을 산다는 말이 있다. 이웃이 집보다도 더 필요하고 중요 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무슨 철천지원수 라고 형제에게 이렇게까지 했을까 의아할 정도로 암몬의 침략은 잔인한 침략이었다.

 

난세의 영웅이 되다

문제는 이 기막힌 상황 가운데 처한 야베스가 힘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지파가 도와줄지 확신도 없다. 얼마나 불안했던지 그들은 기브아로 전령을 보낸다(3).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의 땅, 사울이 사는 지역이다.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에 내전과 유사한 상황이 있었을 때 베냐민 지파가 거의 전멸하는데 그때 길르앗 야베 스의 딸들을 납치해서 베냐민 지파와 강제 결혼을 시킨 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아주 가까운 관계였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도 도울 힘이 없다. 그들은 소식을 듣고 그저 소리 높여 울 뿐이다(4).

 

사울을 왕으로 세우기는 했지만 아직 변변한 지도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 반대하는 자들이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순박한 시골 사람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무엘 선지가 왕으로 세우려고 방문했을 때 겁을 먹고 마당의 짐짝 뒤에 숨을 정도로 마음이 여렸던 사울, 어느 날 졸지에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기는 했어도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냥 촌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등장하는 모습도 초라하다. 땡볕이 내리쪼이는데 나이 사십에 소를 몰고 터덜터덜 걷고 있다. 의욕도 없고, 힘도 없다. 그래도 왕인데 밭에서 소를 몰고 온다(5). 백성들이 왕 만세를 외쳤지만 바로 집으로 갔던 모양이다. 그리고 소를 몰고 오다가 모든 백성이 다 우니까 무슨 일로 우느냐?” 묻는다. 이게 왕의 모습이다.

 

왜 그랬을까?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사울을 실질적인 왕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께는 이 위기가 기회였다. 보통 때 같으면 사울은 겁먹고 도망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 비극적인 소식이 74떨어져 있는 사울의 집에도 들려 이 말을 듣는 순간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다.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6),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서 일어난 즉각적 반응은 분노였다.

 

이 분노는 거룩한 분노’,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매우 큰 분노’ ‘맹렬한 분노였다.

이제는 더 이상 순박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의 영이 임했기 때문이다. 사울은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그 자리에서 소를 잡고 각을 떠서 그 고깃덩어리를 이스라엘 전역으로 보냈다. 누구든지 따르지 않으면 이 소처럼 처참한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는 경고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하나가 된다. 도처에서 분연히 일어난다.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7).

 

그 수가 무려 33만 명(8),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적도 없고 이렇게 일치단결해 본 적도 없다. 사울의 강력한 의지를 보고 사람들이 일어난 것이다. 사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난세의 영웅이 된 것이다.

 

대승(大勝)하다

위기는 기회라고 사울은 이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 하나된 이스라엘을 이끌고 새벽에 기습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11). 세 부대로 나눈 기습, 암몬의 군대 중 남은 자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큰 승리를 거두었 다.

 

이렇게 사울이 왕다운 능력을 보이자 백성들이 달라진다.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12), 사울 왕을 반대하던 자들을 제거하려는 충성심을 보인다.

 

그때 사울의 태도가 참 멋지다.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신 영광스러운 날을 욕되게 할 수 없다며 말린다(13). 사울 왕은 청산할 적폐 세력운운하지 않았다. 넓은 마음, 지도자다운 포용이고 화해다. 이미 승리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반대 세력을 치는 복수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결국 사울은 진짜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그때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사무엘이 제안한다.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14),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넌 후 최초로 할례(circumcision)를 행한 곳이고, 가나안 입성 때 요단에서 가져온 12돌을 세운 곳이다. 또 엘리야 시대에는 선지자를 양성했던 곳이기도 하다.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이 말은 암몬과의 싸움에서 거둔 대승이 나라를 새롭게 하는 발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라를 새롭게 하는 것은 제도 정비보다 좋은 리더십(Leadership)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 사람이 잘못되면 좋은 제도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나라였지만 사울이라는 리더가 제대로 서니까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정상국가로 출범한 것이다.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15), 이때가 사울 인생의 황금기(黃金期)였다. 암몬의 침략을 물리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끌어안고 진정한 왕으로 인정받은 사울의 출발은 대성공이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다.

 

이희우 목사 신기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