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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교수의 문화 나누기>12월의 선물: “우리를 위해 한 아기 나셨다”

성탄절이 있는 12월은 언제나 설렘과 기쁨의 계절이었다. 어릴적 성탄절의 기억은 아주 따뜻하고 행복한 것이었다. 트리에서 빛나는 불빛과 예쁜 장식들,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어 갖던 성탄카드와 선물, 그리고 조용히 새벽을 깨웠던 새벽 캐롤 등 춥지만 마음은 훈훈해 지는 계절이었다.


 어릴 때는 성탄의 의미를 잘 모른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받는 날이라고 좋아했다. 철이 들고 예수님을 만난후, 성탄절은 감격과 감사의 계절이 되었고 그 감사를 담아 성탄 카드를 쓰고 선물을 나누었었다. 적어도 예전의 성탄절은 그랬다. 거리마다 곳곳에 성탄 추리와 성탄 캐롤이 울려 퍼지며 평화와 기쁨의 인사를 나누는 정겨운 순간들이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성탄의 의미는 희미해져가고 그저 놀고 즐기는 하루 쯤으로 변해가는 현실을 보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올해 대한민국의 성탄절은 유난히 힘들고 허전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촛불의 물결 속에 성탄 트리의 불빛이 바래고 성탄의 기쁨조차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빛이고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의 소식이 상처난 우리들에게 위로의 선물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어 여전히 성탄절은 복된 시간이 될 것이다. 인간의 죄악됨과 추함으로 인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크고 엄청난 희생의 선물이 현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은혜의 성탄절이 되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그래서 올 해 성탄절에는 특별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의 오라토리오, ‘메시아’가 그 어느때보다 적절한 성탄 음악일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 그리고 부활까지를 3부로 나누고 그 안에 53곡의 음악으로 이루어진 교회음악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메시아’는 성탄시즌에 자주 연주되는 설명이 필요없는 유명한 곡이다. 워낙 장엄하고 확신에 찬 명곡이다보니 우리는 이 음악이 고뇌와 절망의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이 작품은 헨델이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어 제작한 오페라의 연이은 실패로 명성과 재물을 모두 잃게 된 시기에 작곡된 곡이다. 그간의 명성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충격으로 건강마저 나빠진 50대 중반의 헨델은 아마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에 매달렸을 것이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니 조급함도 욕심도 없었을 것이고 오로지 성경 말씀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에만 몰두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말씀 앞에 다시 낮아진 헨델, 그 말씀을 음악이라는 또 다른 언어로 표현하려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는 노장의 눈물에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그 결과로 서양음악 전체를 통해 가장 위대한 작품을 단 24일만에 완성하는 기적을 선물하셨다. 이런 시각으로 다시 듣는 ‘메시아’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메시아’는 헨델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갱신의 선물이었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복음의 선물이 되었다.


헨델의 음악을 통해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은 위대한 사랑의 선포이고 그 사랑을 위한 그분의 희생은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전달된다. 인간의 죄악과 어리석음이 가져온 그리스도의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음악이 바로 ‘메시아’이다. 헨델은 음악을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그 음악을 통해 선포되는 복음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래서 메시아는 다른 어떤 음악보다 변하지 않는 큰 감동으로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는 것 같다.


53곡 모두 주옥같은 음악들이지만 그 중에서 12번째 곡인 “우리를 위해 한 아기 나셨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알려 줄 뿐 아니라 그 분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선물로 우리에게 오셨음을 말해준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과 그것으로 인해 선포되어지는 사랑의 복음이 답답하고 힘든 우리들의 마음을 밝혀주는 소망의 선물이 되는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가 회복되는 12월이 되기를 기도한다.
한 아기가 태어났고 정사가 그의 어깨에 메어있고
그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화의 왕자라

/최현숙 교수 침신대 피아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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