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의 비핵화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외신들은 문대통령이 비핵화보다 남북을 연방으로 유도하는 데 더 많은 관심과 비용을 투입할 수 있다고 경계한다. 한반도의 상황과 정치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특별히 조국의 좌경화와 관련된 동성애의 확산은 막아야 한다. 오늘날 전 세계는 맘몬(Mammon)과 음란의 영에 미혹되어 있다. 세상은 주홍색 짐승 위에 올라탄 큰 음녀의 포도주에 취해 있고 이 땅의 통치자들은 음녀와 음행에 빠져있다.(계17장)서구교회와 서구사회는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무력하게 쓰러졌다. 저들은 자기 곁에 있는 음녀의 존재를 몰랐다. 하여 힘을 잃고 두 눈이 뽑힌 삼손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이천년 기독교 역사의 뿌리를 가진 서구가 무력하게 패배했다. 그 근본 이유는 신앙의 선조들이 남겨준 귀한 영적 유산을 잃었기 때문이다. 독일과 영국과 네덜란드도 심지어 미국도 이제는 더 이상 기독교 국가라고 하기가 낯 뜨겁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왜 세상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
산 높고 물 맑은 강원도의 봄은 3월 중순부터 포근한 햇살을 한가득 머금은 산바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앞으로 옆으로 위로 사방으로 꽃들은 생명으로 피어오르고 그 향기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진하게 이렇듯 자연의 봄맞이는 황홀한 풍경이다. 올해는 사순절이 2월 14일부터 3월 31일까지이다. 사순절은 부활 주일전 평일 40일을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말함이다. 사순절동안에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기도와 극기로 자신의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 나가는 경건한 삶을 믿음으로 조각해야 될 것이다. 강원도의 겨울은 길고도 긴터널의 겨울 왕국을 지나야된다. 그러나 “하나된 열정!”으로 세계와 함께 손잡고 ‘모두를 빛나게 하는 불꽃’이라는 성화봉송 표어처럼 모든 사람의 꿈과 열정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은 성공리에 마쳤다. 동계 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첫 발자국은 컬링 믹스더블였다. 컬링 믹스더블 ‘한국 1호 국가대표’ 이기정-장혜지컬링 21·23세 ‘첫 도전’ 그들이 던지는 스톤은 평창 동계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첫 발자국이 된다. 한국의 젊은 피 듀오는 통통 튀는 젊음의 에너지를 앞세워 컬링의 새 역사를 힘차게 열어 젖히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다음은 어느 일간지의 기사이다. 컬링
그냥 무심코 한마디 툭 뱉은 말도 법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데, 믿기는가? “신천지는 이단인 것 같아.” 이랬다고, “남성 동성애자(gay)들 사이에 에이즈가 유행하고 있대.” 이랬다고,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겠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게 바로 “혐오표현규제 법안”이다. 지난 2월 13일, 김부겸 국회의원(행안부 장관 겸직) 등 의원 20명이 공동 발의한 법안이다. “혐오표현규제 법안”은 2007년부터 나온 차별금지법 9개 중에서 가장 강력한 법안이다. 15일 만에 전격 철회됐지만, 여건이 갖춰지면 재추진하겠다고 한다. 이 법안은 상대방이 한 말에 ‘혐오감’을 느꼈다고 하면, 법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건데, ‘혐오’의 그 법적 범위가 모호하다. ‘혐오’는 내면의 감정을 뜻하는데, 사람 마음의 혐오감을 어떻게, 어디까지 측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정당한 비판이나 충고도 혐오감을 느꼈다고 하면, 다 처벌해야 하는가? 또 이 법안은 악의적인 경우 손해액의 2~5배의 징벌적 배상까지 물도록 하고, 입증 책임을 혐오를 느끼게 한 그 사람에게 부과하도록 한단다. 문제가 있다면 명예 훼손이나 모욕죄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는데, 왜
가족이 파괴되고 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이혼률은 세계 3위다. 이런 가정 해체가 동성애와 관련이 있다니, 믿어지는가? 가정이 해체되면 교회가 무너지고 국가가 전복된다. 전 세계적으로 성소수자(LGBTI)라 불리는 이들의 비상식적 행동은 위험수위를 넘은지 오래다. 성(性)소수자는 여자동성애자(lesbian), 남자동성애자(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 간성(intersex)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동물과 성관계를 하고 동물과 결혼을 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도대체 왜 세상이 이렇게 퇴락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의 복지정책이 극빈소외계층이나 국가유공자들은 배제시키고 비상식적인 삶을 사는 성소수자들을 최우선으로 배려하고 있다. 왜 나라가 이상한 곳으로 가는 걸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법안들이 계속해서 발의되고 있다. 동성애 에이즈 환자 1인 월 치료비(150~160만원) 전액 국가지원, 성전환 수술비 전액 국가지원, 군대 내 항문성교의 합법화, 학교에서 좌경화된 성교육 실시, 성평등을 위한 헌
공동체 정신 1. - 가치 보수(Conservative)의 철학과 가치는 “자유”와 “공동체”다. 자유의 2가지 하위 개념으로, 첫째는 개인적 자유를 지키는 “자유민주주의”와 둘째는 시장의 자유를 지키는 “시장경제주의”를 말한다. 공동체의 2가지 하위 개념으로, 첫째는 외부(外部)의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고, 둘째는 내부(內部)의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법질서”를 강조하게 된다. 즉, 보수란 ①자유민주주의 ②시장경제 ③국방과 안보 ④법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철학과 가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4가지 가치를 내재화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수의 가치를 들고 있어 국민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와 공동체는 어찌 되든 계파주의를 따라 특정 개인을 끝까지 추종한다든지, 정파의 이익이나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안보도 법질서도 등한시하는 정치꾼들이 너무 많다. 가짜보수가 판을 치고 있고 진짜보수는 죽어가고 있다. 보수의 철학과 가치를 내재화 하지 못한 가짜보수는 가라! 지금 우리는 보수의 철학과 가치가 확고한 진짜보수를 재건해야 한다. 영국 보수당의 200년 집권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진짜보수라 가능
강원도 봄내골 산등성이 나무의 빈가지마다 하얀 눈꽃이 피어 계절의 변화 속에 춥고 어두운 겨울의 터널을 지나며 2017년을 보내고 새로운 2018년을 맞이했다. 겨울 바람따라 스산한 풍경 속에 길거리에 흐르는 썰렁한 을씨년스러움은 삶의 시간 여행 속에서 우리 인생의 드라마에서 나이테의 곳곳을 이야기로 담은 생의 마디마디 속살을 명암으로, 그리고 살았던 구석구석 디테일한 사건을 돌아보고 이제는 늘 보이고 만나는 일상을 더 들어다 보는 신앙산책에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약속인 “소명(召命)”을 다시 자신에게 물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살다보면 큰일 심각한 일도 일부러 작게 보아야할 때가 있다. “걱정거리를 두고 웃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나이가 들었을 때 웃을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라는 격언도 있다. 반대로 작고 사소한 일을 크게 볼 필요도 있다는 것은 디테일의 힘이 발휘되는 경우이다. 디테일(detail)은 영어사전에는 “세부사항, 항목, 사소한 일” 등으로 풀이돼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큰 것을 작게, 작은 것을 크게 상황을 따라 자유자재로 볼 수 있다면 긍정적이고 은혜롭고 힐링적인 삶의 태도로 목자다운 생활이 전개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딪히는 고뇌 속에
‘당신은 상식적인 사람인가요? 다음 영상에서 비상식적인 점을 찾아보세요.’라는 문구가 나오면서 시작된 영상에는 회사 간부쯤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공사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고압적인 태도로 훈계를 하고,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어서 ‘찾으셨나요?’라는 자막이 뜨면서 비정상적인 것을 찾았느냐는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한 다음, ‘그것도 맞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라며 ‘현장에 안전모 미착용’이라는 자막이 뜬다. 공사 현장에서는 누구든 안전모를 쓰는 상식을 지키라는 모 회사의 공익캠페인이다. 상식이란 보통사람들이 가지는 보편적 가치를 이른다. 물론 이 말은 상대성을 가진다. 일반상식은 보편성이지만 그 일반상식 범위를 벗어나 존재하는 상식과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보편적 상식과 특별 상식 모두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를 존중한다. 이는 예수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이시지만 그의 머리 된 교회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복음의 특수성과 함께 상식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세상은 서로를 향하여 상식 내의 삶을 요구한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일부 교회들은 상식적이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는 우리의 돈키호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처럼 풍차를 향해 달려라도 가고픈 심정이다. 시대는 저물어 가는데, 때는 마지막인데,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무엇을 기다리는가? 바쁘게들 가고 있고 열심히들 하고는 있는데 목표는 잃어버린 사람들 같다.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계속해서 떠나자는 에스트라공처럼 신앙의 목표와 삶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사람은 불확실한 것을 싫어한다. 아니 두려워한다. 하여 미래에 대한 불확실은 더욱더 두려운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건만, 믿는 자들조차도 믿음보다는 확실한 것을 추구한다. 그러다보니 성경말씀도 손에 잡히는 구절을 선호한다. 주님이 남기신 마지막 성경말씀이 요한계시록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시록조차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싶어 한다. 그 속에 나오는 수많은 비유나 상징도 문자적으로 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결론부터 내리면 이렇다. 아마겟돈(Armageddon) 전쟁은 실제 전쟁이 아니다. 3차
1970년 말 미국의 행정학자 제임스 마치가 완성한 ‘쓰레기통 모형(Garbage Can Model)’이라는 의사결정 방법이 있다. 보통 적용되는 모델은 아니지만, 상황이 복잡하고 무질서할 때는 정책 결정자들에 의해 이뤄지는 의사결정 과정이 흡사 쓰레기통이 일시에 비워지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평소에는 소모적인 논쟁이 되풀이되다가도 어떤 순간에 무슨 사건이 발생한다든지, 시기적으로 꼭 해결해야 할 시점이 되면 꽉 찬 쓰레기통을 비우듯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꼭 그렇다. 조직화된 무질서(organized chaos)로 정치가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겉보기에는 출근도 하고, 학교도 가고, 연휴에 해외여행도 떠나고, 그럭저럭 굴러가는 나라처럼 보이지만, 많은 국민들 마음속에는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불볕더위보다 몇 백배 더 뜨거운 용암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학생들은 입시라는 수레바퀴 아래서, 청년들은 취업의 고통으로, 중년들은 실업의 가능성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 폐지 수집 어르신의 손수레가 보여주듯 많은 노년층이 빈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고, 어느 정도 부를 쌓은 사
가을 열매 가득한 산 숲에는 호도, 도토리, 알밤, 잣송이, 은행들의 열매가 바람에 털려 풍년을 노래한다. 들녘에 내려주신 주님의 은총이며 나의 가을이 되고 너의 가을이 된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은 고향의 산소길을 걸으며 황금연휴를 보내며 행복한 마음으로 일 년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푸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고향의 담벼락 너머 길가에 고개 내민 붉은 석류알과 대추의 둥근 열매가 빛깔 좋은 풍경을 담고 익어가는 가을 내음 속에 우리 교단도 2018년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에서의 제107차 성총회를 은혜롭게 마칠 수 있었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10월 2일 교회 새벽 기도회 참석하기 위해 가는 길에 교회의 뜨락에 신문 배달차가 던져놓은 강원일보에서 “신임 총회장에게 듣는다”라는 제목으로 우리교단 안희묵 총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많은 분량의 기사가 지면의 전개되어 있었는데 “소통과 화해, 무엇보다 변화를 통해 교단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겠다”한 기사에 눈길이 멈췄다. 온라인 홈페이지 ‘침례교 1번가’를 만들어 목회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장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에 목회자 한 사람의 변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