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고통과 고난을 생각하면 그 트라우마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인의 손에 이끌려 예배당의 문턱을 넘고 예배를 드리며 예수님을 만나면서 이제는 상처받은 이웃을 향한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목회자로 사는 것이 더 큰 행복이며 기쁨입니다.” 농촌과 어촌이 공존하고 있는 경기도 화성시 조암리, 그곳에서 교회를 개척해 27년째 지역사회를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있다. 바로 조암중앙침례교회(제재호 목사)이다. 지난 1999년 이곳에 교회를 개척한 제재호 목사는 어린 시절 가난과 말할 수 없는 가정사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전라도 돌산에서 성장한 제재호 목사는 찢어지는 가난에 좌절했고 부친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언어폭력과 구타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삶의 희망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기에 그에게 삶은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동네 누나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나갈 수 있게 됐다. 성경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단지 몸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쉴 수 있는 예배당은 그에게 안식처이자 휴식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재호 목사는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됐다
“청소년상담복지사로 활동하면서 전문지식으로 치유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며 인간의 문제와 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해결할 방법이 없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제게 주신 사명이 바로 이런 사명에서 시작됐으며 이는 반석침례교회의 개척으로 이어졌습니다.” 교회에서 부사역자로 오랫동안 사역하다가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상담사로 근무하던 남정일 목사(반석)는 예레미야 20장 9절의 강력한 말씀에 이끌리게 됐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결국 남정일 목사는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선포하는 길이 인간의 죄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닫고 2022년 11월 29일 경북 경산에 카페교회인 반석침례교회를 개척하게 됐다. 개척부터 시련!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셨다! 교회 인근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아파트 단지가 위치해 있어 특별히 청소년들이 교회를 많이 찾아왔다. 2024년 성경공부를 함께 하던 여중생 중 한 명이 화재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며 남정일 목사의 첫 시련은 시작됐다. 겨울 내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고 교회 주변에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56년 3월, 천막교회로 시작된 선암침례교회(박승민 목사)는 지난 70년간 서천군 시초면 선암리를 지키며 복음 전파와 지역 섬김에 앞장서 왔다. 특히 2021년 7월, 코로나19 팬데믹이 정점이던 시기에 7대 담임으로 부임한 박승민 목사는 선암교회의 새로운 도전과 사역을 이끌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수십 년 된 시설, 성도들의 땀방울로 새 단장 부임 당시 선암교회는 예배당과 사택 외에 별도의 활동 공간이 부족한 상태였다. 박 목사는 가장 먼저 성도들이 함께 식사하며 교제할 수 있는 ‘교육관’ 건축에 주목했다. 홀로 식사하는 어르신이 많은 지역 특성상, 교회에서 정성껏 준비한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이 곧 섬김의 시작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 목사와 중직자들은 함께 기도하며 헌신했고, 전 성도가 마음을 모아 본당 옆 건물과 연결된 교육관을 완공했다. 또 하나의 특별한 변화는 야외 침례탕이다. 침례교회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교회 앞마당에 침례탕을 조성하기로 했을 때, 처음에는 성도들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박 목사가 직접 땅을 파고 흙을 다지며 돌을 옮기는 솔선수범을 보이자 성도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손수 잔디를
“예수님도 목수의 아들이었고 사도 바울도 텐트 메이커의 직업을 감당하며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목회의 이중직은 성도와 지역의 삶에 함께 하며 녹아들 수 있는 최고의 선교 선물이자 하나님이 주신 귀한 소명입니다.” 61년 전, 1964년 3월 20알 충남 논산에 세워진 방축교회(임종남 목사)는 원래는 장로교회로 개척됐지만 고 최보기 목사가 부임하고 침례교회로 다시 세워졌다. 이후 11명의 담임 목회자가 방축교회를 거쳐갔으며 2012년 임종남 목사가 부임해 성도들과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를 구현하고 있다. 임종남 목사는 “잦은 담임 목회자가 교체되면서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고 지역사회는 교회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교회 주변에 1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기에 제가 먼저 작은 선물을 들고 가가호호 방문해 인사하고 가정의 문턱을 낮추고 목회자에 대한 신뢰를 쌓기 시작했다”며 “이렇게 3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떠나갔던 성도들이 돌아오고 교회를 부정적으로 보던 지역주민들도 복음의 문을 열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됐다. 무엇보다 목회자가 먼저 교회 중심으로 삶을 살다보니 성도들도 신뢰하며 교회 재정을 맡겼고 저 또한 욕심부리지 않고 건강하게 교회 재정을 관리할
오송봉산교회(윤양수 목사)는 올해 70주년을 맞이했다. 1954년 창립되어 28명의 목회자가 사역을 한 곳이다. 바이오산업단지가 들어서고 KTX역이 세워진 지금과는 달리 그야말로 깡촌이었을 당시부터 지역에 자리를 잡아 복음의 빛을 발하던 오송봉산교회는 이제 지역을 대표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송봉산교회는 매주 5~15명 정도의 새신자가 찾아오며 1년에 약 70명 정도가 등록을 한다고 한다. 바이오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1만 5000여 가구가 밀집해 있기도 하고 오송 지역의 한복판, 새롭게 건축된 예배당이기에 과장을 조금 보태면 지역의 랜드마크와도 다름이 없어 홍보효과로 더할 나위가 없다. 위기의 교회, 부활의 새소망 윤양수 목사가 오송봉산교회 담임으로 부임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교회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부임해 건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동시에 무너졌던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등 그의 헌신은 역대 어느 담임 못지 않다. 오송봉산교회는 교회 건축을 하면서 어려움을 당했다. 박정환 원로목사는 후임 목사를 청빙한 후 그에게 오송봉산교회의 세 번째 예배당 건축을 맡겼으나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결국 해당 인물은 교회를
포항중앙교회(김중식 목사)는 지난 5월 20~22일 교회 3층 기준홀에서 2024년 제2회 셀콘퍼런스를 진행했다. “교회는 이렇게 세웁니다”란 주제로 진행한 이번 행사는 34개 교회 55명의 목회자, 사모, 사역자 등이 2박 3일간 포항중앙교회의 셀교회와 목장의 실체를 직접 나누고 경험했다. 지난 2023년 첫 콘퍼런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준비한 2차 콘퍼런스는 포항중앙교회의 셀교회 이전과 이후의 변화와 함께 교회의 존재 목적과 이유, 셀교회로 전환하는 실제적인 방법, 건강한 교회의 토양(기초)을 마련하는 방법, 셀교회의 시작에 대한 부분들을 다뤘다. 매시간 목장의 목자(우문희 사모, 최향순 집사, 임정화 집사, 장형우 집사)들이 셀목장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어려웠던 부분과 하나님께서 일하신 기적의 스토리를 간증했다. 참석자들은 실제 포항중앙교회 셀 목장에 참관해 목장에서 어떤 내용들을 나누고 적용하고 있는지 목장의 실제적인 모습과 관계성 등을 살펴봤다. 또한 참석자들과 포항중앙교회의 목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서 궁금한 점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도 가졌다. 마지막 시간은 참석자들이 김중식 목사와 2박 3일동안 셀교회에 대한 강의와 목장 참관 및
“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양육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을 보며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몸소 경험합니다. 아이들이 점점 사라지는 지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이라도 남을 때까지 이 사명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시골지역의 지역아동센터는 멀리 흩어져 있는 아이들에게는 방과후 좋은 놀이터이다. 학교에서의 학습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지만 방과후 다양한 활동은 아이들에게 지성과 인성을 길러주는 좋은 배움터라 할 수 있다. 충북 영동 묵정에 위치한 묵정교회(양성모 목사)는 20여년 전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며 아이들과 동거동락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방과후 교실로 방학 중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거리가 부족한 지역에 놀이배움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양성모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에서 헌신하는 와중에 지역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과외를 하며 신대원에 들어가 목회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2004년 묵정교회 부활절 예배를 집례하며 담임 목회자의 사역을 시작했다. 담임목회를 시작했지만 당시 양성모 전도사는 학원 선생님, 과외교사, 방과후 영어 특활교사의 직함이 더 어울렸다. 묵정 지역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제법
모태신앙인 조영일 목사는 음악을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어릴 때 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시작해 지점장의 자리까지 올라가기도 할 정도로 공과 사 모든 일에 열심이었던 그는 30대 중반 건강상의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고 치킨 배달에서 음악 과외까지 정말 한시도 쉬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목사로서 비전을 품고 나아간 것은 40대 이후부터이다. 30대 중후반부터 오산에 거주했던 조영일 목사는 오산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 조영일 목사는 당시 오산교회 담임이었던 고명진 목사(현 수원중앙)를 만나 신앙상담을 풀어놓았다. “목사님, 내가 한번 사는 인생 이렇게 살아가라고 주님께서 저를 이 땅에 보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조영일 목사의 고백에 고명진 목사는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할 것을 권유했다.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 조 목사는 40대 중후반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파트타임으로 주말에는 사역을 하고 평일에는 일을 하는 자비량으로 사역의 방향을 잡았다. 본격적인 사역을 위해 아무 연고도 없던 천안에 내려
“도동리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 같아요. 강권적인 하나님의 이끌리심이 이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더 나누고 싶어 음료수를 따 건네며 붙잡으니 어떤 부녀회원 ‘찐득이’라고 홀겨도 또 포기할 수 없는 아버지 마음이네요. 아직도 복음을 전해야 할 60여 가구의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이 생명을 주님께 드립니다.” 이혜원 목사(영동대흥)는 대전대흥교회(정인택 목사)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해 평신도로 10년, 사역자로 10년을 교회에서 헌신해 왔다. 사역자에게 자신이 필요로 할 곳이 어디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강권적인 부르심의 역사로 교회 사역을 정리하고 2017년 영동대흥교회를 개척했다. 그렇게 이혜원 목사는 “오직 복음으로만 살리라”는 심정으로 산골 오지 구석구석에도 복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도록 불철주야로 달려왔다. 대전대흥교회에서 이혜원 목사는 여러 사역을 감당해 왔지만 그중 가장 행복한 사역은 어르신을 위한 사역이었다. 삶의 숱한 고생을 뒤로하고 교회로 나오신 어르신들을 환영하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 교회 노인대학을 섬기면서 어르신에 대한 특별한 사랑과 관심은 충
교회의 다음세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교회의 젊은층은 더 줄어들었다. 점점 교회의 문턱을 넘는 청년들을 볼 수 없는 시대에 유독 청년들이 차고 넘치는 교회가 있다. 바로 대전 자성교회(임헌규 목사)이다. 자성교회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교회는 아니다. 한적한 주택가에 60여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예배당에는 300여 명 가까운 청년들이 예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 이들을 자성교회로 이끌고 있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과연 청년들은 자성교회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 복음이었다. 다음세대를 생각하며 헌신과 섬김의 시작 임헌규 목사는 전도사 시절, 유병문 목사가 담임하고 있던 대전중앙교회에서 고등부 사역을 맡으며 목회의 문을 열었다. 당시만에도 10여 명의 고등부 학생들이 임헌규 목사의 가르침과 지도에 의해 100여 명으로 성장하며 대전중앙교회 교회학교는 부흥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2002한일월드컵을 맞이한 2002년 1월 26일 자성교회를 세웠다. 당시 교회를 돕겠다고 온 2~3명의 청년들과 가족이 함께 교회를 시작하며 제일 먼저 품은 사역은 대학 캠퍼스 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