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말해요미워하며 살기엔 너무 짧지요두어 번의 실패와 포기그래,궤도 수정은 없어 광야생활 40년느보산 마루에 서면들어갈 수 없는 가나안빛나는 땅이 보인다 거기영원으로 가는 순간멈춰선 시계물은 늘 바다로 흐르지 않는다 달이 차오르는 밤이면역류하는 강아하스의 해시계가 물러날 때도있었다 하지만 내 삶의 이정표시간이 없어빙벽을 깬다 정명진 전도사는 파주 자유교회 담임목회자로 섬긴다.『한맥문학』으로 등단, 목산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 10월 31일 낮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주제별 전체회의는 3,000여명의 성직자와 신도들이 참여한 가운데 치러졌다. 그러나 이번 WCC에 대한 논쟁의 핵심은 종교다원주의에 있다할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WCC 부산총회를 반대하는 이유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WCC는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 개신교회와 정교회를 대표하는 340여개 교단이 소속돼 있어 다양한 신학노선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들은 협력과 화합을 위한 목적으로 타 종교와의 대화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 교단들은 WCC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 다양함을 인정하는 종교단원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교회 정체성과 맞지 않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삼환(명성) WCC유치위원장과 박종화(경동) 부위원장은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1975년 제4차 나이로비 총회에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부르짖으며 종교혼합주의 경향을 나타내더니 1983년 밴쿠버 총회는 힌두교, 불교, 유태교, 이슬람교, 시크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공석에서 연설을 들었으며, 이 총회지도자들은 인디언 토템주상을 세우고
‘꼴통’이란 말이 있다. 물론 비속어다. 그래서 국어사전적 의미를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용되는 경우를 살펴보면 대략적으로 그 의미를 산정할 수는 있다. 이 말은 원래 주로 아이들끼리 사용하던 비속어로 머리 나쁜 혹은 멍청한 말썽꾸러기라는 의미로 사용됐는데 일반적으로는 그런 경우 바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나중에 ‘극우 꼴통’이나 ‘극좌꼴통’과 같은 사회적 의미를 가진 말로 사용되면서 비합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막무가내라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말썽꾸러기라는 의미가 더해졌다고 생각한다. 그 의미를 통해 꼴통이라 취급되는 사람들의 문제를 세 가지로 생각해보았다.첫째는 비합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매우 치열하게 전개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주장의 근거가 박약하거나 엉터리거나 일방적이며 억지스러운 경우가 많고 주장의 전개도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점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합리적 보수’ 라는 호칭도 ‘극우꼴통’이 보편타당한 합리성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차별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자신들의 주장만이 옳다는 자기중심적 전
조국교회는 여러 가지 복잡한 현안문제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던 차에 세계교회협의회(WCC) 제 10차 부산총회로 인해 보수와 진보교단이 갈라져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에 모 기독교 단체에서 말한 것처럼 WCC의 신학과 이론은 비판하되 보수와 진보가 하나 되는 길은 버리지 말아야 하겠다. 조국교회가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니까......조국교회가 나뉘어져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이다. 예배할 때 사도신경을 고백 하는가 아닌가로 나뉜다. 지나간 시론에서 사도신경 고백문제를 다루었기에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다. 오늘은 사도신경 안에 복음과 교리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사도신경은 참 성도들의 믿음을 충분히 담고 있는가? 과연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믿고 있는 중요한 모든 교리들이 사도신경 안에 요약되어 담겨져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사도신경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어야 할 보편적이고 확실한 교리들이 너무나 많이 빠져 있다. 먼저, 사도신경에는 “성경”이 어떤 책인지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
현인과 구도자가 묵묵히 길을 걷고 있었는데, 이들이 조그마한 강가에 도착했을 때, 아리따운 여인 하나가 비 때문에 물이 불어난 강을 힘겹게 건너려 하다가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져버리고 말았다.다행히 강이 깊지 않아 재빨리 몸을 일으켰지만 이미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난 다음이라 물에 젖어 맨살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여인의 모습에 구도자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여인은 강을 건너지도 되돌아오지도 못한 채 덜덜 떨고 있었지만 구도자는 연신 헛기침을 해대면서 먼 산만 바라볼 뿐이었다.그때였다. 묵묵히 그 광경을 바라보던 현인이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등에 여인을 업고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닌가. 현인의 등에 엎혀 무사히 건넌 여인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여 감사의 말을 전한 뒤 총총히 사라졌다.그렇게 여인을 보내고 마침내 참을 수 없다는 듯 구도자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다지만 스승님 같은 분이 맨살이 훤히 드러난 여인을 업고 다니다니요. 혹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생각만 해도 망측해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몹시도 흥분한 구도자는 얼굴을 붉히며 현인을 힐난했다. 잠자코 구도자의 말을
며칠 전, 뜨거운 북한선교의 한 불꽃이 꺼졌습니다. 주님은 스데반처럼 이분의 영혼을 감격으로 영접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교단 소속 북한 사역자 고 임 애란 선교사님, 저는 이분을 중국에서 처음 만났습니다.이분은 사랑의 사도였습니다.수년 동안 한 번도 이분이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북한사람들에게, 중국인들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을 한 번도 못 보았습니다.설교 중에도 그들을 정죄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늘 웃어주고, 감싸주고, 품어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이분을 해코지 하려고 많은 특무, 보위부원이 신분을 숨기고 접근했지만 이분의 사랑에 맘이 녹아내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며 이분의 안위를 걱정해주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분은 그들의 신분을 성령을 통해 미리 알았지만 두려하지 않고 사랑으로 뜨겁게 품었던 것입니다.한국에 온 탈북민들은 이분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그중 공무원으로 일하는 한 형제는 양아들로 이번에 상주역할을 했습니다. 이 분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의 반사체로 수많은 사람들을 환희 비추었습니다.이분은 기도의 사도였습니다. 기도할 때는 정말 불꽃 그 자체였습니다. 그 은혜의 열기가 함께 하는 이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 기도는
몇 주 전에 TV방송 뉴스와 언론을 통해서 한국 사회를 경악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계에 큰 충격을 안겼던 사건이 있었다. 경기도 수원의 한 여성 목사가 신도들을 상대로 거액을 사기 쳐 여왕 같은 호화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져 많은 국민들과 신자들에게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1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불꽃목사의 수상한 축복’편이 방송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1990년 경기도 수원에 불꽃교회를 세우고 ‘빈민의 어머니’ 행세를 한 강 모(여) 목사의 수상한 행적에 대해 파헤쳤다. 방송에 따르면 강 목사는 교회 지하에 세상에 설 곳 없는 불쌍한 이들을 위한 거처를 만들고 노숙인들과 장애인들을 보살펴왔다고 한다. 신자들은 ‘주의 종’이라는 강 목사의 말을 성경처럼 받들었고 “참된 은혜도 많이 입었다”며 입을 모으고 그녀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여자 목사에겐 다소 보수적이라는 교계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강 목사의 명성은 높아져갔고, 지하 월세 방에서 시작한 교회는 10여년 만에 3개의 예배당을 가진 큰 교회로 성장했다. 하지만 강 목사를 믿고 함께 지낸 수많은 신도들은 날이 갈수록 가난해졌고 심지어 강 목사가
내 조국. 내 나라를 사랑합니다. 지난 월요일(14일)에 연세중앙교회(윤석전 목사)에서 초교파적으로 수천여명이 교회 본당에 입추의 여지가 없이 모여서 조국을 위해 울며, 부르짖으며, 통성으로 3시간 이상 기도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였습니다. 전국에서 온 대형버스가 주차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월요일 마다 흰돌산에서 모이는 초교파 목회자 모임인 ‘실천목회 연구원과 사모 목회대학’의 주의 종들이 중심하여 모였습니다. 내 조국이 없이는 국민도 교회도 없습니다. 애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조국을 사랑합니다. 전국에서 교파를 초월해서 벅찬 가슴으로 모였습니다. 그 동안 조국을 위해 늘 기도하지 못한 것을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1시부터 시작된 강의는 김성국 자유연합대표가 했습니다. 강사의 첫마디는 엡6:12절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현재 싸우는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님을 분명히 했으며 김대표의 강의의 핵심은 우리의 신앙의 핵심을 관통했습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곧 신격화를 전재하며 그들은 그것을 목숨의 가치와 동일하게 하고 있으며, 이에 반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제거한다는 것이다(북한에 김일성 부자 동상-38
제69대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 김대현 목사와 제1부총회장 곽도희 목사, 제103차 총회 임원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제69대 총회 의장단 취임을 통해 교단의 새로운 도약이 이뤄지기를 전국 3천교회와 대의원들은 기대하고 있다. 화합총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섰던 대의원들도 후보를 지지했던 대의원들을 정치적으로 안고 가야할 것이다. 교단 화합을 위해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교단 발전에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취임한 김대현 총회장은 임명된 임원들과 많은 논의가 있어야겠지만 교단화합을 저해하는 어떤 임원의 독주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지난 회기동안 실패의 원인 중 하나가 몇 사람의 독주에 의한 권위주의에 매몰되어 총회장을 넘어선 월권행위 때문에 화합총회에 악영향을 끼치게 됐던 것이다. 자신은 총회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겠지만 대의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총회장은 임원들의 전횡을 사전에 검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총회장의 의중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철저한 관리감독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몇 년간에 반목이 재발할 우려가 있다. 과거의 모든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과감한
안식년으로 귀국한 선교사님이 퀴즈를 내면서 말했다.“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왔던 동방박사들은 한국 사람이래요!”“예? 동방박사들이 한국 사람이라고요?” 평소에 우스갯소리를 잘 하지 않는 분이라, 웃어넘기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 무슨 엉뚱한 학설이 제기됐나? 아니면, 우리나라가 동방이라고 자칭 재림주 하나님이 몇 십 명이라더니 또 어떤 이단이 생겼나?’4가지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동방에서 왔다는 것이고, 둘째는 무리지어 다닌다는 것이고, 셋째는 선물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고, 넷째는 박사들이라는 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어디서 누가 지어냈는지는 모르지만, 한참을 웃었는데, 마음 한 편으로는 씁쓸함이 가시지 않았다. 특히 한국이 엉터리 박사 천국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임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교육과학기술부, 우리나라 박사학위 등록 등을 관리하는 곳에 의하면, 목사님들이 받은 목회학박사(D.Min) 중에 가장 엉터리가 많다고 한다. (‘가짜 박사’라는 명칭까지 써가면서 가짜박사를 남발한 학교 이름들까지 발표한 적도 있다). 물론 제대로 과정을 거쳐서 수여하는 곳이 더 많을 텐데, 억울하게 오해를 받는 곳
가을의 쪽빛 하늘아래 산등성이의 새하얀 억새들이 은빛 물결이 되어 춤을 추고 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억새는 화려한 단풍빛깔 보다는 화사하지는 않지만 문득 가을 여행을 하고 싶은 ‘가을의 유혹’이다.이러한 10월의 멋스런 날에 제12차 아시아 침례교 여성대회(The 12th ABWUassembly)가 연세중앙교회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 매5년마다 개최되는데 한국에서는 1978년에 개최된 후 35년만에 아시아 18개국의 1,000여명의 아시아 여성 대표들이 등록했고 한국에서는 300여명의 여선교회원들과 사모들이 참여했다.“주님의 순결한 신부로 준비되자”란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는 다채롭고 화려한 침례교단의 멋진 아이콘이 아닐수 없었다. 모든 순서는 영어로 진행됐지만 지식의 전달보다는 믿음의 아이콘으로 모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회의 목적이 다양한 훈련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제자로 아시아의 침례교 여성들의 연합을 위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사역과 선교를 위한 네트워크와 참석자들에게 함께 예배하고 친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에 큰 의의가 있었다.기도, 세미나 간증 설교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발견했고 영적으
흔히 좋은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일벌레가 되었다”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자신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설령 중단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거나 그럴 수 없을거라고 지레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경우 평생 피로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해결책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위안을 삼자.먼저 일벌레가 되려는 목적을 생각해봐야 한다.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일벌레가 되어야 한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정작 자신의 역량 이상을 쏟아 붓는 이유를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생존에 국한되지 않는다. 개인을 넘어선 위대한 대의 때문이라고나 할까? 자존감을 끌어올리자.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믿음은 개인의 가치를 인정하는 현실을 바르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만약 스스로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우주의 중심을 지탱하는 사람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생각과 같은 의미다. 그렇지만 조건을 따지지 않고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다면 그들은 당신의 참 자아상을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이처럼 현실을 제대로 보는 시선은 낮은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자신을 바르게 보는 안목
어느 날 부터인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동등시 되어 왔다고 생각된다. 한 교회를 개척하고 평생을 목회에 전념하면서 교회는 급성장하게 됐고 한국교회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반면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어두운 과거와 더불어 사회에 빛이 되지 못하고 소금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한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은퇴 후 교회를 대물림 해주고 그 뒤에서 섭정하는 행위, 은퇴 후에도 버젓이 담임목사처럼 매주 강단에 올라 설교하는 행위, 자신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목회자의 말에 절대적 순종을 요구하는 행위, 총회장이나 감독이 되기 위한 혼탁한 선거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태들과 문제점들이 이곳저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사회와 국가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반해 교회와 교단은 권력화 되고 정치세력화 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 땅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양반과 평민의 높은 벽이 허물어지고 주인과 종의 차별이 없어지게 된 혁명적 사건이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1980년대 까지만 해도 교회와 목회자들이 어두운 사회를 이끌어왔고 비 그리스도인들도 교회는 사회적 약자들의 위로와 안식
일반적으로 잡초는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또 아무데서나 볼 수 있어서 귀하게 느껴지지 않고 함부로 대해도 될 것같은 마음이 든다. 질긴 생명력 하나만이 잡초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부각되어서 잡초에게는 자존심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읽어 주는 남자」에는 자신의 문맹을 드러내는 것보다 수감생활을 택함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여자이야기가 나온다. 누가 봐도 어리석은 선택이지만 그녀는 그렇게 한다. 그런 그녀에게 한 남자는 책을 읽어서 녹음한 테이프를 감옥에 보내줌으로 그녀만의 방식으로 자존심을 지키도록 도와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그 남자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글을 배운다. 녹음테이프와 책을 대조해 가면서 글을 배우는 과정은 진정한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녀는 삐뚤빼뚤하는 글씨로 편지를 써서 자신이 더 이상 문맹이 아님을 보여주는데도 그 남자는 여전히 테이프를 배달한다. 남자의 일방적인 방식은 그녀가 평생을 걸고서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무너졌고 무너진 자존심은 절망으로 이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자발적인 감옥행은 어리석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자발적인
중국은 지금 그 이름답게 세계의 중심이 되어 있다. 최근에는 세계의 금을 한 손에 쥐더니 이제는 다이아몬드를 또 한 손에 움켜쥐려고 유대인과 인도인이 휘어잡던 앤트워프 다이아몬드 시장에 진출, 2년 만에 다이아몬드의 최대 수입국이 되며 미국을 2등으로 밀어냈다. 이렇게 지금 중국은 세계 경제의 한 축을 확고히 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강대국들과 대등한 위치를 확보함으로 중국은 이제 세계가 공부하고 싶은 나라가 됐다. 하지만 빛 뒤에 어둠이 있듯이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도덕적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코뿔소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사이 빠른 경제성장은 했으나 이로 인하여 배금주의를 낳으면서 사회의 도덕성 상실과 각종 부정부패들로 정신적 빈곤이라는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급기야 중국 정부는 중병에 처한 중국의 도덕성 치유를 위해 종교와 전통적 이데올로기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그동안 핍박하며 박해하였던 종교에 관용을 베풀면서 적극 활용하려 하고 있다. 그 대안 속에는 2300만 명의 신자를 가진 중국 내 기독교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중국에서의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함께 중국의 병을 치유하는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비해 지금 한국에서는 중국과 같은 도덕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