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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고 엄격한 삶의 통찰 : 멘델스존의 엄격변주곡이 주는 단상

최현숙 교수의 문화나누기

침신대 피아노과

현 시대를 나타내는 많은 현상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 중 하나가 스피드, 즉 빠름이다.
삶의 많은 부분들이 자동화되면서 일상이 빨라짐에 따라 변화의 속도 또한 빠르다. 시대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현재를 표현하는 유행이나 성향의 변화도 정신없이 빨라졌다. 그러다보니 삶의 편리함은 향상 됐을찌라도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일상에서의 진지함이 답답함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원칙을 위한 엄격함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은 빠른 변화와 신속한 적응으로만 충족될 수 없는 것이기에 현대인들은 공해해지고 외로워지는 것 같다. 진지함이나 엄격함과 같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어 했던 가치들은 역설적으로는 삶을 살만하게 하는 소중한 가치요 기준일 수 있다. 아마도 낭만시대의 기독교 작곡가였던 멘델스존(1809~1847)은 이런 삶의 가치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피아노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 바로 엄격 변주곡인데 이 작품의 제목만 보더라도 멘델스존이 추구했던 가치의 본질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주제와 17개의 변주로 이뤄져 있는데 1841년에 작곡된 것으로 멘델스존이 가장 열정을 가지고 창작에 임했던 시기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17개의 변주곡을 구성하고 있는 틀이 매우 인상적인데 전반부는 고전시대의 특징을 연상할 수 있는 규격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정적인 낭만주의 음악어법이 화려한 피아노 기교와 함께 나타나 드라마틱한 표현으로 일관하다. 화려하고 강렬한 코다의 끝은 의외의 조용한 화성으로 마무리하고 있다는 것도 이 작품이 가진 독특함이다.


작곡자인 멘델스존이 기독교인임을 감안할 때 이런 형식의 구성을 신앙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인정되는데 필자는 멘델스존의 구성을 신·구약 성서의 암시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규칙과 규격, 그것을 이루는 틀의 균형이 중요하게 강조되는 전반부는 구약과 같다.
율법과 규례가 삶의 기준이 되는 구약의 교훈들을 유대인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이었던 멘델스존이 모를리 없었고 이것은 그의 음악표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감성과 호소력 짙은 선율의 다양한 표현은 신약성서의 드라마틱한 전개와 많이 닮아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가질 수 있는 기쁨과 감사는 물론 인생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모양의 고뇌와 씨름, 그것을 넘어서는 환희와 감사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후반부는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화려함 후에 한숨 같은 고요함으로 울리는 단순한 화음은 삶속에 이어지는 기도의 울림이며 고백의 화음이다.


가벼움과 편리함이 당연시되는 현대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엄격하고 진지한 기도가 절실하다. 멘델스존은 그리스도인들의 진지함과 하나님 나라의 엄중함을 알았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었던 그리스도인이었고 이것은 그의 음악을 통해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깊은 교훈을 주고 있다.


멘델스존의 음악처럼 우리들의 삶도 구약과 신약의 규범 안에서 진지한 삶의 통찰을 이어갈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들의 세상이 조금 덜 혼돈되고 조금 덜 부패하기를 멘델스존의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소망해 본다. 경쟁보다는 상생을, 속도보다는 내용이 더 높은 가치로 평가하며 하나님 안에서의 진지함과 자유에 대한 감사함으로 우리의 오늘이 채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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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