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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의 문학적 특성을 고려한 설교실제 - 4

문상기 교수
침신대 신학과 (설교학)

III.  복음서 설교 실제

1. 본문 선택
일반적으로 성서의 모든 문학 장르를 설교할 때와 같이 복음서의 설교를 위한 본문은 ‘pericope’를 기준으로 설정돼야 한다. 본문의 내용은 주어진 콘텍스트를 고려해 해석돼야 하지만 때때로 복음서의 내용은 중심 구절들을 중점으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
또한 어떤 특정 사건이나 장면을 묘사하는 이야기(narrative)는 몇 개의 페리코피에 걸쳐 본문이 설정될 필요가 있으며 비록 본문은 핵심절들로 선택이 됐다 하더라도 이야기 전체를 고려해 설교해야 한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설교에서 본문 선정은 단일 페리코피를 고집하거나 본문의 범위가 길고 짧은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그 본문이 하나의 설교를 위한 한 단위로서(unit) 동일한 콘텍스트 안에 있느냐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아가 본문의 콘텍스트의 일관성이 요청되기 때문에 본문을 정함에 있어 다른 복음서의 페리코피나 병행구절들을 결합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특정한 페리코피를 다른 문학적 상황이나 역사적 콘텍스트와 혼합시킴으로써 저자의 의도를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가상 칠언”을 중심으로 성금요일(Good Friday) 설교하기 위해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발췌한 구절들을 결합하는 것은 일곱 가지 해당 말씀들에 대한 각각의 콘텍스트를 정당하게 드러냄에 있어 실패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2. 설교의 형식
설교의 형식을 선택하는 관점은 본문의 메시지가 가장 의미 있는 방식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신약성서 나레이티브 설교를 위한 가장 적절한 설교 형식은 구약의 히브리 나레이티브의 경우와 동일하게 이야기형식이다. 나레이티브의 경우, 어느 한 주제를 중심으로 설교가 구성되는 분석적 방식으로 설교한다면 이야기는 앞을 향해 진행해 나가는 고유의 탄력성을 잃게 된다. 복음서 기자들이 나레이티브 방식을 선택해 그들의 메시지를 기록했다는 것은 설교자에게도 매우 중요한 관점이 돼야 할 것이다. 그레이브스는, 설교는 내용은 물론 그 형식에서도 성서 문학 형식을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 바가 있다.


그러나 설교자가 반드시 그 틀에 묶여서 자신의 설교 형식을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레이브스도 이 점에 대해 언급하면서, 본문이 나레이티브라 해서 반드시 이야기로 전해야 하고 본문이 시문학에 속하기 때문에 반드시 시적으로 설교해야 한다고 하는 개념은 설교자에게 너무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조언한다. 브라이언 채플(Bryan Chapell)은 이야기설교 방식이 성서의 나레이티브 본문들을 위한 좋은 설교형식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나레이티브 본문이 반드시 이야기설교 형식을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복음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레이티브 본문을 설교하면서 이야기 형식과 명제 형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이야기 형식을 도입해 설교에 역동적인 변화를 주는 것이 필요하며, 명제적 설교방식의 경우에서도 연역적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는 때로는 귀납적 방식을 시도해 청중의 보다 높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설교 형식을 고려하면서 설교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본문에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청중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증거하는 것이 무엇인가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3. 설교 구성의 실례  
1) 나레이티브 플랫 방식 이야기설교
본문: 마 20:1~16
제목: 누가 더 달라고 할 수 있습니까?
명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 부르신다.

첫째 단계, 평형을 뒤집음: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을 찾으러 인력시장에 나갔다. 주인은 아침 일찍 일꾼들을 찾아 농장에 보내며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다. 주인은 9시, 12시, 그리고 오후 5시에 역시 일꾼들을 찾아 농장에서 일하게 했다.


오후 6시에 일이 끝나고 임금을 지급하기 시작할 때 주인은 가장 늦게 와서 한 시간 일한 일꾼에게 한 데나리온을 줬고, 늦게 온 순서에 따라 모든 일꾼에게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다. 그러자 아침 일찍, 가장 먼저 온 일꾼들이 주인에게 불평했다. 이때,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주인은 “내가 당신들에게 약속한 임금을 줬는데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는가?” 하고 되묻는다.


둘째 단계, 모순 분석: 왜 주인은 이렇게 불공평했고, 왜 예수님은 이 농장 주인이 지극히 정당한 것처럼 말씀하고 계시는가? ‘만일 나 자신이(청중을 향해)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가장 먼저 온 일꾼과 같은)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셋째 단계, 해결의 실마리를 밝힘: 이 이야기의 첫 번째 실마리는 가장 늦게 온 사람에게 먼저 임금이 지불되는 장면 가운데 나타난다. 예수님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오후 다섯 시에 일하러 온 일꾼과 아침 이른 시간부터 일한 일꾼에게 동일한 임금을 지급했고 이 장면을 모든 일꾼이 보게 했다.


넷째 단계, 복음 경험 및 결과 예견: 이제 여러분이 세 살, 여섯 살, 아홉 살 먹은 세 자녀를 둔 부모라고 상상해보자. 여러분은 세 살 먹은 아이보다 아홉 살 먹은 아이를 세배나 더 사랑하는가? 혹시 당신은 세 살이었을 때보다 서른 살인 지금 부모를 10배 더 사랑하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족 관계이니까. 이것은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지금 (천국)가족의 개념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포도원 주인은 지금 이 시간 어디에 있는 줄 아는가? 그분은 지금도 아직 포도원에 청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아직 그 부름에 응답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시장터로 나가고 있다. 그 청함이 아침 7시에 주어졌든, 9시에 주어졌든, 정오에 주어졌든, 혹은 오후 3시나 5시에 주어졌든 상관하지 않고 부르기를 원한다. 포도원에 초청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본향에 청함을 받은 것이다.


설교구성과 착안사항
위의 설교는 유진 로우리(Eugene Lowry)에 의해 소개된 나레이티브 플랫 방식의 이야기 설교이다. 그리고 이 설교는 로우리가 미국 듀크대학 채플에서 직접 설교한 것을 그의 책에 수록한 것이다. 본문이 비유 나레이티브이기 때문에 로우리는 이야기의 특징을 살린 구성방식을 도입했다. 특히 포도원 농장 주인과 이른 아침 가장 먼저 농장에 들어와 일했던 일꾼들의 기대치 사이에 형성된 반전 포인트를 역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나레이티브 플랫 설교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나레이티브 플랫 설교는 설교자가 준비한 메시지 안으로 청중을 초대해 함께 말씀을 경험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새로운 설교학’(New Homiletics) 방식이 그렇듯이 결론이 ‘열린 결론’(open-ended) 방식이기 때문에 설교의 주제와 적용점이 충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이 점을 고려하여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본문의 중심 사상과(설교 주제) 청중을 향한 적용점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


한편 이야기설교는 로우리의 방식이 유일하거나 표준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로우리의 방식이 문학적 재구성을 통한 플랫 방식의 설교라면, 주어진 성서적 스토리를 설교자의 상상력과 표현력을 통해 다시 말하는 방식, 즉 리텔링(re-telling) 방식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리텔링 방식은 본문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을 3인칭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1인칭으로 전개할 수도 있다. 물론 본문에서 행간을 읽는 치밀함 이라든가 상상력의 발휘는 설교자에게 필수적이다. 예를 든다면, “탕자의 비유”를 아버지의 관점에서, 아니면 큰아들, 혹은 탕자로 묘사되는 작은 아들을 1인칭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다.


2) 리텔링 방식 이야기설교
본문: 눅 15:11~3
주제: 예수님은 죄인을 어떻게 대하시는가?
배경: 본문의 즉시적 상황을 고려하면, 예수님은 세리들 및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사실로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지금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잃어버린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기를 원하셨다(15:1~2). 예수님은 누가복음 15장에서, 그들에게 세 개의 이야기를 말씀하셨다.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동전,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 이야기 등이다.

서론: F-16 전투기가 적지에 떨어졌다. 비행기 조종사는 적국의 병사들에게 쫒기는 신세가 됐다. 그에게 탈출의 소망은 없었다. 그는 완전히 잃어버린 자가 됐다. 아군이 자신을 발견하게 하려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예수님은 지금 그 무언가 잃어버린바 되면 다시는 자기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장면 1: 작은아들이 떠나다(12~20).
이 이야기는 작은아들의 반역 이야기다(본문의 내용 설명). 현대적 번역을 여기서 제시한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반적으로 그 반역의 깊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의 반역을 현대적 정황으로 묘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장면 2: 아버지가 돌아오는 아들을 찾아 나선다(20~24).
이 아들은 기꺼이 모든 사회적 통념을 깨고 달려와 안아주는 아버지에 의해 회복된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아들의 죄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이 아버지처럼 죄인들을 찾으러 오신 분이다. 죄인들을 찾으시는 예수님에 대한 개념이 중요한 요지이다. 사실 이 내용은 다음 장면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풍성한지에 대해 더 많이 설명해야 한다.


장면 3: 큰아들이 항의하다(25~32).
이 장면은, 아버지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지 못하는 큰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집 밖으로 나가 그를 찾는다. 아버지가 집 밖으로 나가 작은 아들을 찾아가는 모습과 마지막에 큰아들을 찾아가는 모습에 주목하라. 이 점은 이 설교의 중심 사상을 잘 드러내기 때문에 설교자는 청중으로 하여금 이 상황을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예수님은 불의한 자를 찾으실 뿐 아니라,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자도 찾으신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핵심 아이디어가 제시된 다음에는 그것을 풀이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적용을 위한 최적의 위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