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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 속의 개구리

계인철 목사
광천중앙교회

아직도 건국일 하나 제대로 통일하지 못하고 둘로 나눠져 대립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길을 잃으며 방황과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주변국을 비롯한 세계는 급변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전쟁터 아닌 전쟁터를 만들며 나라 밖으로 진군하고 있는데 우리는 ‘정저지와’(井底之蛙), 즉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우물 안에서 ‘좌정관천’(坐井觀天)하고 있다. 좁디좁은 우물 안에 앉아 우물만큼의 하늘만을 보면서 하늘이 이러니저러니 한다. 자기 좁은 세계로 하늘을 보며 하늘을 말하는 개구리가 바다를 알리가 있겠는가? 아니 바다에 대한 생각 자체가 있겠는가?


최근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모습이 꼭 우물 안에 앉아 우물만큼의 하늘만 보고 서로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개구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청와대와 정부는 남북문제에 정권을 몰입하지만 남북문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고, 한반도와 세계를 위협한다는 북핵의 해결도 오리무중이다. 미중 무역 전쟁으로 촉발된 한국 경제는 연일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이제 국민 대다수는 서서히 다가오게 될 경제 위기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들만의 정책을 찬양하며 고수하고 있다. 어두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의 경제는 다소 긍정적인 면들이 있다. 특히 일본은 물오른 경제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이상하리만큼 서서히 퇴보하는 모양새다.


남북관계라는 대명제 아래 군대도 이상한 군대가 되어 가는 듯 하고, 언론 보도는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의심이 가고, 사법부의 저울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렇듯 저마다 축구의 자살골처럼 스스로 자기 집단의 골문을 향하여 볼을 차 넣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하고, 그나마 골을 찰 용기가 없는 집단은 그냥 주저앉아 소낙비만 지나가기를 의미 없이 기다린다. 여기에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점점 시계제로를 향하여 가는 대한민국처럼 한국교회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문제들로 자살골을 넣으며 입은 상처만으로도 부족하지 않은지 계속해서 자살골을 넣고자 몸부림이다. 최근에는 모 목사의 ‘그루밍(Grooming)’ 성범죄가 들통이 나고, 서울의 모 대형교회의 끝나지 않은 부자 세습 문제는 교단과 대사회적으로 여전히 시끌벅적한데 또 한 대형교회가 부자 세습으로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한국교회는 세상에 대한 영적 지도력을 한 단계 더 상실하게 됐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전설이 된지 오래고 이제는 세상에서 빛을 구해다가 스스로를 밝혀야 하고, 세상에서 소금을 사다 맛을 내야만 하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다. 단언적으로 세상은 기독교에서 예수를 더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도 이런 기독교에 더 이상 계시고 싶지 않으실 것이다.


네트워크 세상에서 하나가 모두가 되고 그것이 순식간에 일파만파로 번지는데도 그들은 단순히 우리교회의 문제이고, 합법적 절차에 의한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괴변을 늘어놓으며 그 추함을 더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가? 교회든 목사든 자기의 알량한 자존심과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숨 쉬듯 하고 불법을 행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으니 말이다. 성경을 들었으나 성경은 없고, 설교를 하나 성령의 감동하심도 없고, 감동하는 사람도 없다. 사데교회를 보는 듯하다. 살았다 하나 죽은 오늘의 한국교회 일부의 사람들은 여전히 한국교회의 중심에서 굳세게 그 자리를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다.


성도들도 이미 반쯤 눈이 감긴 상태로 무엇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미성숙의 영적 수준을 마음껏 발휘하며 목사의 팬이 되어 스스로 그들의 스타와 함께 침몰되어 가고 있다. 이들은 ‘부중지어(釜中之魚)’, 즉 솥 안의 물고기처럼 그들의 스타목사를 따라 함께 솥단지 안에서 같이 익어간다.

지금 대한민국이나 한국교회는 주전자 속의 개구리와 꼭 닮았다. 미국의 리서치 전문가이며 교회 성장학자인 조지 바너(George Barner)는 그의 저서 ‘주전자 속의 개구리’(The Frog in the kettle)를 통해 한 대학 실험실에서 있었던 개구리의 신경반응 실험을 이야기한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즉각적으로 점프력을 발휘하는 반응을 보이지만, 개구리를 찬물에 넣고 서서히 열을 가했을 때 개구리는 상황의 변화를 느끼거나 반응하지 못하고 즐기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아져 죽어갔다.


조지 바너는 이 실험을 통해 현실에 안주하며 쇠퇴해 가는 유럽교회와 미국 교회의 현재를 말하고 싶어했다. 복음적 가치가 아닌 세속적 가치를 진리로 위장하고 포장해 수용하는 사이, 그리고 그것을 교회 안에서 활용하는 사이 교회는 주전자 속의 개구리 신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편향된 이념들과 독선들로 허물어져 가는데도 돌아서거나 다시 하거나 새롭게 하려 하지 않으려는 진영논리만 넘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세속적 가치로 복음의 가치를 위장한 채 세상 속에서 세상으로 서서히 물들며 몸이 익혀지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주전자 속의 개구리를 닮아도 너무도 닮았다. 초로 날개를 달아 갈망하던 하늘을 날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바람에 초가 녹아 바다로 떨어져 죽었던 ‘이카루스’(Icarus)처럼, 그릇된 욕망으로 세상의 가치로 더 가까이 가다가는, 결국 스스로 태워져 죽게 되는 교회가 될지도 모른다.


절대적 하나님을 오늘 세상은 상대적 하나님으로, 절대적 진리를 상대적 진리로, 복음에 의함이 아닌 상황에 의함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오늘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의 것으로 채워져 가다보면 한국교회는 머지않아 기록된 역사만 남을 뿐 오늘 현재와 미래로 향하는 하나님의 숨이 살아 숨 쉬는 거룩한 교회가 될 수 없다. 늦었다 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처럼, 늦은 감이 분명 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복음으로의 변화를 시작한다면 한국교회는 다시 소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소생하는 한국교회 안에서 대한민국도 다시 소생할 것이다.


“변화시키지 않으면 변화 당한다.(Change or Be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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