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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배필과 바라는 배필

 

2012년 우리나라 이혼율은 114300여 쌍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회원국 중에서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혼 부부 중 과반수 이상이 자녀가 있는 이혼이어서 한 부모가정의 증가로 이어지게 됐다. 한 부모가정의 증가율 역시 매면 증가했는데 연도별로 보면 2009155872가구, 20101594624가구, 20111638537가구, 20121677415 가구. 해가 거듭할수록 한 부모 가구는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부란 살다보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살거나 살다보니 가엾어서 살기도 하고, 또는 등 긁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살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 살아 보지도 않은 20, 30대 이혼이 급격히 늘어나고 심지어 가엾어서 산다는 50, 고마워서 산다는 60, 등 긁어주면서 산다는 80대까지 이혼을 서슴지 않는 탓에 우리나라가 이혼율 1위가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전체 이혼 건수의 절반에 가까운 46.8%가 결혼한 지 3년 미만의 신혼부부라는 통계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쉽게 만나 쉽게 결혼하고 또 쉽게 헤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에 교회가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현대 교회는 무너져가는 가정과 함께 도태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면 교회를 떠나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닌다 해도 큰 교회에 숨어서 아주 소극적인 교회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혼가정에서 파생되어지는 자녀문제 역시 심각하다. 비행 청소년의 절대 다수가 역기능 가정이나 이혼가정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가정을 치유하고 가정을 회복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가정사역자의 한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부부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 이혼까지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혼상담을 하다보면 서로 다른 차이에 대한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된다. 대개 결혼 전의 삶을 인생의 1/3, 결혼 후의 인생을 2/3로 본다. 결혼 후의 인생이 결혼 전의 인생보다 두 배나 많다.

 

그러나 결혼 전의 삶이 부모와 학교에서의 삶이기에 실제로 성인이 된 이후의 삶을 놓고 본다면 훨씬 더 중요하다. 결혼이라는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좌지우지한다면 결혼은 인생 최대의 선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젊은이들로 하여금 성공적인 결혼을 준비하도록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결혼 전의 적절한 교육을 통한 남녀의 차이와 갈등해소는 결혼 후의 삶에 많은 축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모 원로 여가수는 자신의 딸과 함께 출연한 TV에서 자신의 딸은 남자와 얼마간 살아보고 난 뒤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그때 그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당당히 밝혔다. 공영방송에서 이 내용이 방송된 직후 참 많은 사람들이 의견이 분분했다.

 

연세드신 분들은 어떻게 공인이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분개하시기도 하셨지만 반대로 합리적인 사고와 현실적인 결혼의 문제를 안고 있는 젊은 층에서는 오히려 상당한 지지를 받기도 했다. 결혼한 뒤에 서로 상처를 주고 고통을 감당하며 우리는 잘못 만났다면서 헤어지는 이혼의 아픔을 경험하거나 마지못해 포기하고 사는 것보다는 훨씬 합리적이 아니냐는 것이 이유였다.

 

결혼에 대한 이런 혼란은 본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시고 계획하신 결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데서 왔다. 부부들에게 결혼의 사명이 무엇인가하고 물으면 많은 부부들이 의아해 한다. 결혼예비학교에 참석한 예비부부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설문 내용중에 당신은 왜 결혼하려 하십니까?”라고 묻는 문항이 있는데 그 답변을 보면 참 재미있다.

 

보통 외로워서아니면 나이가 되어서혹은 혼자 사는 것이 불편해서” “성적인 파트너가 필요해서” “함께 있고 싶어서” “밥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혼자 사는 것 보다 나을 것 같아서” “둘이 벌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심지어 홀로 나를 길러주신 어머님의 봉양을 위해서라고 당당히 쓴 어떤 예비 신랑도 있었다. 결혼의 이유가 대부분 자신의 필요나 욕구충족 내지는 자신의 행복과 편리함을 위해 결혼한다는 것이다. 많은 부부들이 결혼의 사명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

 

하나님께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계획하실 때 분명한 의도가 있으셨다. 은 창2:18절의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저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다. 이 말씀에서 보면 남자가 홀로 외롭게 있는 것이 좋지 못하게 여기신 하나님은 결혼을 계획하셨다. 그렇다면 결혼의 사명이란 배우자를 외롭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내가 외롭지 않으려고, 나의 욕구나 나의 필요를 공급받기 위하여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를 외롭지 않게 해 주기 위하여 결혼하는 것이다. 이것이 결혼의 사명이다. 다시 말하면 배우자를 행복하게 해 주기위해, 배우자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배우자를 외롭지 않게 해 주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다. 이것이 결혼의 사명이다.

 

나를 위한 결혼이 아니라 너를 위한 결혼인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결혼의 최우선 이유가 돼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많은 결혼이 그렇지 못하다. 자신의 필요나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이 이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결혼해서 배우자에게 바랐던 부분들이 자신에게 공급되지 않으면 그렇게도 억울해 한다. 그리고 자신이 결혼한 목적(자신의 행복)을 얻어내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결혼을 통해서 내가 얻으려고 했던 것을 얻기 위해 피나는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가정들이 이혼이라는 파경을 맞이하게 되고 아니면 포기하고 살든지 한다. 둘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성경적 가정의 모습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결혼은 시작부터 잘못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결혼이기 보다는 자신의 행복과 자신의 필요를 공급받기 위해 배우자를 이용하려는 마음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은 배우자를 위한 돕는 배필이 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왜 우리 부부들은 서로 갈등하고 다투며 왜 서로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가?

 

그것은 성경말씀대로 돕는 배필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고 오히려 바라는 배필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돕는 배필과 바라는 배필은 반대의 개념이다. 자신이 성경적인 돕는 배필인지 아니면 바라는 배필인지 진단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돕는 배필과 바라는 배필의 진단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바라는 배필은 배우자가 실수하거나 약점이 드러날 때 매우 불편해 하거나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이 사람은 틀림없는 바라는 배필이다. 그러나 돕는 배필은 다르다. 배우자가 실수하거나 배우자의 약점이 드러날 때 그때 돕는 배필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거기서 찾는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내가 필요하지...” 라고.

 

돕는 패필은 배우자의 실수나 연약한 부분을 도우며 기쁨을 얻는다. 도와주며 기쁨을 얻게되는 이유 또한 간단하다. 배우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결혼의 사명은 배우자를 외롭지 않게 해 주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스스로 지금 배우자를 외롭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봐야 한다. 혹 상대가 오히려 나를 외롭게 하고 있다고 강변(?)한다면 당신은 바라는 배필일 확률이 높다. 돕는 배필은 배우자의 필요를 찾아서 끝없이 공급해 주지만 바라는 배필은 자신의 필요를 채워달라고 끝없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돕는 배필인가? 바라는 배필인가? 성경적 부부상인 돕는 배필로의 회복이 있기를 바란다.

 

이희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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