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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축복으로 뒤집는 한 방

상담&치유-53
심연희 사모
미국 RTP지구촌교회
(이철 목사)

부부싸움은 곧잘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시작되는데 산으로 올라갔다가 건너지 말아야 할 강까지 이르기도 한다. 왜 싸움이 시작됐는지 기억도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싸움이 커지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됐다고 말하는 부분들은 대부분 시초의 갈등 때문이 아니다. 싸우다 중간에 던져진 말 때문에 더 열 받고, 그 반동으로 화나서 한 대꾸가 더 큰 싸움으로 이어진다. 이혼도 애초에 문제가 됐던 직접적 원인 때문이라기보다는, 싸워가는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면서 헤어져야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교회의 갈등도 시작을 따지면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별 것도 아닌 작은 불씨가 초가삼간을 다 태운다. 별 것도 아닌 시작에 뒤따라오는 반응이 갈등의 방향을 결정한다.


일하며 상사에게 스트레스를 있는 대로 받던 남편이 집에 들어와 애들 시끄럽다고 짜증을 부린다. 들어오자마자 짜증인 남편에게 서운해서 대뜸 애들한테 해주는 게 뭐 있는데 성질이냐고 되받아친다. 졸지에 나쁜 아빠가 된 남편은 너는 잘하는 게 뭐가 있냐고 한 방 날린다. 그렇지 않아도 육아에 살림에 지치고 자존감이 바닥이던 아내는 내가 너 때문에 이러고 산다고 원망을 한다. 열 받은 김에 친구 남편과 비교도 한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남편은 며느리 노릇이나 똑바로 하라고 언성을 높인다. 아내도 질세라 너네 집안이 정상이냐고 소리를 지른다. 이쯤 되면 물건이 날아다녀 깨지기도 하고 서로 밀치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기들 때문에 엄마 아빠가 싸운다고 자책하고 구석에서 훌쩍거리며 엄마, 아빠 중 누구랑 살아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한다. 싸움의 시작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피곤한 거다. 스트레스받은 거다. 그런데 싸움의 끝은 이미 산으로 갔다. 한 사람이 피곤한 데서 생긴 문제는 이미 두 사람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상처 내고, 친구네랑 배우자 집안문제까지 번졌다. 아이들에게 보이지 말았어야 할 모습까지 드러내며 온 가족이 만신창이가 된다.


작은 갈등이 번져서 큰 싸움이 되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비슷한 문제가 사이클처럼 되풀이될 때가 많다. 그래서 상담을 통해 이 패턴을 끊어내는 여러 가지 방법을 내담자와 함께 연구하기도 한다. 갈등을 푸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스트레스받고 피곤한 사람이 담백하게 자기가 지치고 힘들다고 말할 수 있다면 싸움이 시작될 확률이 줄 수 있다. 자신의 연약함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모습에 자존심이 얹어지면서 갈등의 불씨가 지펴진다. 그런데 시작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반응하는 사람의 멘트다. 갈등의 불씨를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가 두 번째 멘트에서 갈린다.


갈등이 진행되는 방향을 단박에 바꿀 수 있는 한 가지 묘약이 있다. 바로 Appreciation, 감사이다. 싸움을 걸어오는데 갑자기 생뚱맞게 감사가 나오냐고 할 수 있지만 감사만큼 산불이 될 수 있는 불씨를 한방에 끄는 방법도 없다. 남편이 들어오면서 짜증스러워하면 “기분 별로인 거 보니까 오늘 힘들었나 보다 애썼네”라고 대꾸할 수 있다.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마워하는 별것 아닌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를 끈다. 시끄러운 애들 데리고 하루 종일 정신없었겠다는 한마디가 지친 아내를 기운 나게 한다. ‘너 때문’이 아니라 ‘당신 덕에’ 이 정도 산다고 하면 남편은 으쓱해진다. ‘우리 부모님 만만치 않은 분들인데 그래도 당신은 잘하고 있는 거야’라고 해 줄 수 있다면 아내는 시부모님께 들은 핀잔도 또 한 번 넘어갈 수 있다.


인정해주고 감사를 표현하는 것만큼 대인관계의 문제를 화해와 축복으로 한방에 바꾸는 방법은 없다. 애교 없고 곰 같은 아내는 감사의 눈으로 보면 진중하고 속 깊은 사람이다. 입맛 까다로운 남편은 감사의 눈으로 보면 요리실력을 늘게 하는 선생님이다. 내가 겪는 고난은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고 의지하게 하는 영적인 축복이 된다. 말 많고 탈 많은 교회는 감사의 눈으로 보면 사랑과 용서를 연습하는 운동장이다. 코로나는 감사의 눈으로 보면 새로운 변화와 개혁의 신호탄이다. 감사의 한마디에 문제가 축복으로 뒤집힌다. 오늘의 갈등을 산으로 끌고 가서 감당 안 되는 산불이 되게 할 것인가, 작은 불씨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화롯불이 되게 할 것인가는 우리의 결정이다. 문제를 끄집어내는 독설로 성난 불씨를 키울 것인가, 문제를 뒤집는 감사로 불씨를 따뜻하게 지필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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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