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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영적 군사


우리의 신앙은 악한사단의 궤계를 이겨야만 합니다. 人生에는 세 가지 싸움이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 자연과 인간과의 싸움입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따뜻한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잔인한 적이요 라이벌이기도 합니다. 과학기술과 기계는 인간이 자연과 싸우기 위한 위대한 무기요 도구입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자연을 이용하고, 다스리고, 정복하기 위한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과 인간의 싸움입니다. 개인과 개인 간의 생존경쟁에서부터 나라와 나라와의 전쟁, 민족과 민족의 갈등, 공산 세력과 자유 세력과의 투쟁에 이르기까지 인간세계에는 수많은 싸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싸움을 원하지 않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싸우면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세상에 패배처럼 분하고 괴로운 것이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의 싸움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전락하는 것이요,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패배는 자멸을 의미합니다. 어떤 나라는 지구상에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무장이 없는 곳에 평화가 없고, 힘이 없는 곳에 자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사의 냉엄한 현실입니다.


리고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싸움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선과 악의 싸움입니다. 나의 마음속에는 항상 두 자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용감한 나와 비겁한 나” “부지런한 나와 게으른 나” “의로운 나와 불의의 나” “참된 나와 거짓된 나이러한 두 가지의 자아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항상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나와의 싸움, 이것은 인간의 자랑이요 영광인 동시에 고뇌와 비극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싸움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위대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도 악한 영과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성령으로 내안에 간직하고 활용하며 사역해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능력있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고 악한 영에게 영육간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성 목회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알고 바르게 사용하는 목회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성령의 권능을 받고 악한 사단을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면하는 문제를 잘 해결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권능을 이 땅 가운데 가감 없이 그대로 나타내고, 특별히 선교사명을 감당하는 현장에서는 담대히 이 사역을 해야 합니다. 목회현장에서, 목회자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 먼저 자신을 치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을 치유해야 합니다.


마귀와 싸우면서 자신과 가정을 치유하며 예수의 영적군사로써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었으므로 이 세상에 나가서 마귀에게 눌린 자를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임재가운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방법이 영성목회의 초점입니다.


이를 위해서 능력의 기도, 권능의 기도를 항상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시라도 허점 있는 틈을 보이지 말고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영성목회는 평생 이러한 자세가 습관이 돼야 합니다.


상어는 위험한 바다동물의 대명사이며, 강력한 포식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상어는 항상 입을 벌린 채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벌어진 입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은 본능적인 공포감을 자아냅니다. 그런데 상어가 입을 벌린 채 헤엄치는 것은 숨을 쉬기 위해서입니다. 물속의 산소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1리터의 물에는 1~8밀리리터의 산소가 녹아 있습니다.


경골어류에 속하는 대부분의 어류들은 이 희박한 산소를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모세혈관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아가미를 능동적으로 움직입니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아가미들은 펌프질하듯 물을 빨아들이며, 순간적으로 산소를 걸러냅니다.


그런데 상어는 판 모양의 격판에 아가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어의 아가미에는 운동기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입을 벌린 채 계속 움직여야만 물이 아가미를 지나갈 수 있습니다. 상어가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것은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물고기들의 몸에는 부레(bladder)라는 공기 주머니가 있습니다.


이 부레는 혈관이 풍부한 특별한 조직으로 되어 있어 필요에 따라 혈액에서 기체를 흡수하거나 혈액으로 기체를 돌려보냅니다. 이렇게 부레 속의 기체 양을 조절하면서 물에 뜨거나 가라앉거나 또는 중성부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노력 없이도 자신이 원하는 수심에서 머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어에게는 부레가 없습니다.


부레가 없는 상어는 몸이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지느러미를 흔들며 헤엄 쳐야만 합니다. 상어는 숨을 쉬며, 가라앉지 않게 하기 위해 평생 헤엄쳐야 하는 운명을 가졌기에 몸의 구조도 움직임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명에 죽고, 그 사명에 사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우리 지도자의 필수조건입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항복하고 손을 들면 하나님이 모든 환경을 깊이 열리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목회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끊임없이 영적진로를 향해 전진할 때, 나의 어선만 만선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배도 만선시키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 승리가 옵니다. 이 역설적 승리(Paradoxical Victory)를 얻음은 생애 큰 기념비가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의 마음에 들도록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지 하나님이 내 마음에 들기를 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성도를 축복되게이 구호로 오늘도 전진합시다.


고흥식 목사 / 영통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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