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한알의 밀알이 장애인에게 꿈과 희망으로 기독교공동체를 실현합니다.

한밀복지재단 대구밀알공동체, 대구지역 장애인 요양 및 재활, 재가 복지 선교의 새 지평 열어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시설 평가 최우수 수상김광식 목사 지금까지 인도하심에 감사


사회복지법인 한밀복지재단(이사장 김광식 목사, 대구밀알교회 담임)은 장애인복지법 규정에 의한 장애인복지시설 설치운영사업에 의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전인적 재활을 추구하며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인 밀알공동체를 비롯해, 밀알장애인주간보호센터, 꿈사라케익제과점, 한밀장애인직업재활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개인신고시설로 시작된 밀알공동체는 이렇게 복지재단으로 성장하고 대구 및 경북지역에서 장애인 복지 사역에 새로운 장을 마련했으며 전국적으로도 인정을 받아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3년마다 진행하는 사회복지시설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을 안기도 했다.

경북 칠곡에 위치한 대구밀알공동체는 2002년 장애인거주시설을 위한 부지매입을 시작으로 태동했으며 2005년에 준공, 중증장애인거주시설로 시작된다. 그 후 사회복지법인 한밀복지재단을 설립 복지재단을 통해 보다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장애인 복지 사역을 감당하며 주간보호센터와 꿈사랑케익과자점, 직업재활센터까지 단순히 장애인을 돌보는 단순사역에서 일반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현재 밀알공동체에는 지적장애를 비롯해,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정신장애, 시각장애 등 중증 장애인 30명이 입소,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생활능력향상과 여가시간활용 사회적응활동을 통해 잠재적인 자립성을 길러주는 생활자활과 개별욕구에 맞는 학습을 지원하는 교육재활, 사회적응 프로그램 및 신체적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회심리재활, 건강증진 프로그램, 시설 개방에 따른 시설 홍보 및 장애인 복지에 대한 인식개선 사업 등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밀알공동체는 지난 625일 지역주민과 장애인 1500여 명이 함께 한 제2회 밀알 꿈 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지역사회에서는 대구밀알공동체가 섬김과 나눔문화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공동체에는 함께 하는 화합과 사랑을 실천하는 계기가 됐다.

이같은 결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겸손함을 나타낸 김광식 목사는 그 스스로가 바로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누구에게는 인생의 불행으로 삶의 좌절과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장애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깨달음이 김광식 목사를 오늘까지 이끈 원동력이었다.

 

 

세상을 보며 꿈을 키울 시기에 닥쳐온 갑작스런 실명

김광식 목사는 태어날 때의 시력은 정상이었다. 7세때까지. 학교를 가야 할 나이인 그 당시 세상을 보며 부푼 꿈을 꾼 김 목사는 결국 한 쪽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으며 다른 한 쪽 눈의 시력은 -0.04로 안경이나 확대경이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닥친 이 시련이 자신에게만 있지 않았다. 김광식 목사의 모친도 29세때 남동생은 11세 여동생은 17세에 역시 김광식 목사와 마찬가지 증상으로 시력을 잃게 됐다.

또한 여동생의 아들인 조카 윤종배 군은 27세에 시력을 잃고 새로운 삶을 살던 중,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패밀리 합창단에 출연,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희망을 노래해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 가족에게 온 실명의 원인은 바로 시신경염으로 인구 1만명당 1명 꼴로 나타나는 희귀질환이었다. 그 희귀질환이 한 가족에게 닥쳐오면서 끊임없는 좌절과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자신의 약점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강점으로 바꿔주셨다.

웃음도 없어지고 내 삶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극도의 패배감과 좌절의식,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면 내 병을 내 아픔을 치유해 주실거란 마음으로 교회를 찾게 됐다. 하지만 열심을 다해 기도하고 부르짖고 누구보다 교회에 열정을 다바쳤지만 결국 원망만 더 늘어갔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예수님을 원망했다. 그런 원망의 기도도 귀 기울여주셨는지 내 마음에 점차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세상 모든 고통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그리고 사흘만에 살아나셔서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이, 그리고 다시 오시겠다면서 성령님을 보내주신 이가 내 마음에 새겨졌다. 그 마음이 나를 하나님께만 매달리고 붙들고 살게 만드는 첫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나를 인도하고 지키시며 도우시고 계신다

실명의 좌절과 고통이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새겨지면서 포기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 8개월 만에 중학교 졸업 자격 검정고시를 패통과하고 그해 9월 김순희 사모와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몇 번의 위기와 시험이 왔지만 그 때 당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은 바로 대학 진학이었다.

당시 아내와 함께 목원대학교를 지원했던 김 목사는 아내만 합격하고 자신은 떨어지는 좌절을 겪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침례신학대학교. 평소 아내와 함께 학원을 다니고 공부하면서 아내의 전적인 도움으로 이뤄냈지만 학교가 달라 서로 떨어지면 김광식 목사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수업 출석부터 학과 공부, 리포트 준비, 시험공부 등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던 그에게는 대학생활이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도전으로 깨닫는 삶의 기쁨 사회복지 그리고 대구밀알선교단

27세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33세에 대학에 입학 37세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온 김광식 목사는 첫 직업을 가짐이 기대감보다 두려움과 떨림이었다.

직장생활 경험도 전혀 없는 그에게 사회는 언제나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였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 목사는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편입을 준비한다. 당시 생소했던 사회복지사업이 자신에게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과 공부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지혜는 바로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이 세워지면서 나는 누구인가? 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던 와중에 고전15:10의 말씀을 음성으로 듣게 됐다. 이 말씀 때문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나같은 죄인을 나같이 세상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그토록 원망했던 나를 그토록 사랑하셨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아내를 떠나 침신대에 입학한 것도 혼자 학교를 등교하고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홀로 공부하며 외로웠던것이 다 내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이 은혜의 감격은 바로 사역으로 이어졌다. 대전에서 사역하던 밀알선교단을 통해 대구지부가 없다는 소식을 들은 김광식 목사는 곧바로 서울 본부를 찾아가 대구지부 창립을 위해 자신이 나서게 된다.

김 목사는 선교가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수 분야에서 선한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선교라 생각한다. 해외 선교사처럼 나도 복지 선교사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그런 마음이 전해져 신촌중앙교회에서 1994년 장애인 선교사로 고용남 목사님에게 목사 안수를 받고 파송받았다면서 대구에 내려와 대구 지역에 복지 선교 사역을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런 와중 19981월 대구밀알교회를 개척했다. 그곳이 바로 우리 밀알공동체가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나의 약점이 바로 하나님의 강점이다!

김광식 목사의 선교 대상자는 바로 장애인이었다. 그들에게 삶의 편의와 도움을 주는 것 이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도 쉬지 않고 병행했다. 처음에는 누구 하나도 그에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더욱이 교회는 장애인에겐 도움만 주고 이용하는 것이라는 오해아닌 오해를 사기도 했다. 안해 본 것이 없었다.

마지막에 결국 자신의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기적을 맛보게 된다.

드디어 자신의 약점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강력한 도구였던 것이다. 그에게 전도를 받은 첫 영접자는 33세의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었던 청년이었다. 사지가 굳어가는 와중에 김광식 목사를 만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그 청년은 함께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세워주셨다.

대구밀알선교단의 그룹홈 첫 입주자였던 그는 김광식 목사와 함께 대구제일장로교회에서 간증집회를 인도하고 2층 선교단 사무실에서 식사를 하고 집을 나서던 중, 계단에서 낙상을 해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된다. 수많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품에 안긴 것이다.

그 청년의 죽음은 나에게 엄청난 도전이었고 시험이었다. 하나님께 ’ ‘’ ‘라며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아마 그 일을 통해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고 새로운 장애인 복지 사역에 대한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됐다.”

장애인거주시설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후원금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대구밀알선교단 이사회서 뜻밖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장애인집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던 김 목사에게 부딪힌 이 벽은 결국 이사회가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하나 하나 이뤄내며 오늘의 밀알공동체를 마련하게 된다.

밀알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김광식 목사가 하나님 말씀 다음으로 사명으로 여기고 지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직투명성이다. 이는 기독교 복음에 입각한 밀알공동체가 장애인을 돌보고 섬기는 일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한 스스로의 몸부림이었다.

김광식 목사는 장애인 복지 사역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자 인도하심이라며 예수님께서는 전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고 아끼셨으며 결국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셨다. 그리고 죽음까지 이기시며 부활하셨다는 것은 우리 장애인에게 벅찬 감동이자 희망으로 심어주셨다고 힘주어 말했다.



돌봄과 섬김을 넘어 재활과 희망을 품으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김광식 목사와 한밀복지재단의 사역은 지역 교육기관에도 인정을 받으며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필수 탐방 코스로 알려져 있으며 김광식 목사를 비롯해, 각 기관 센터장들이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김광식 목사는 최근 침례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와도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후배들에게도 길을 열어주고 있으며 침신대 총동창회(회장 이욥 목사, 사무총장 서광선 목사) 상임부회장으로도 활동하며 동문들에게 복지 선교에 대한 올바른 개념 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복지 선교 분야의 인재를 신학교에서도 발굴해 특수 목회 분야에 대한 교단의 관심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약점이 있다. 그 약점을 새롭게 바라보지 못한다면 결국 약점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 그 은혜를 체험한다면 나의 약점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강점임을 깨달으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그 기적이 멀리 있지 않음을 우리 모두가 기대했으면 한다

www.milcomm.org

/ 칠곡=이송우 차장



배너

총회

더보기
온 땅에 평화의 주님이 오셨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1) 주님의 은혜가 우리 모든 침례교 가족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이뤄진 놀라운 역사입니다. 특히 영원한 심판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그 분은 희망의 메시지, 회복의 메시지,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감격의 순간을, 복됨의 순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한 이 땅의 왕으로 오신 분은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지만 온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2023년 바쁘고 어려운 한 해를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보내고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모두가 참으로 많이 수고하셨고 애쓰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이고 감사임을 고백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침례교 총회는 교단의 미래를 생각하며 준비된 사업들을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단 전체 교회들의 생각과 의중을 다 담아내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이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