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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박물관 이야기 (1)

현장! 성경을 보는 창(13)
김상목 목사
성경현장연구소 소장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 그 중에서 고고학박물관에 가신다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사람 아닌 사람이 있다. 박물관 입구에 전시된 사람 모양의 토관들이다. 이 유물은 지금부터 3300~3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용한 것이다. 그 사람들의 관이 오늘날 팔레스타인 가자에 있는 텔 테이르 엘-발라(tel Deir el-Balah)에서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유명한 군인이자 정치인이었던 모세 다얀(Moshe Dayan)이 개인적으로 무단 발굴해 소장했다가 1981년 박물관에 기증․판매된 ‘다얀 컬렉션’의 일부이다.


이 토관은 보통 사람 키보다 크고(160~195cm), 이집트 오시리스 수염과 팔 모양을 한 모습으로 마치 이집트 미라를 위한 관 모양과 유사한데 관 안에서는 고인의 유골과 함께 사후 세계에서 사용할 토기, 장신구, 청동거울, 무기 등이 함께 발견됐다.


이 토관의 주인공들에 대한 규명은 명확하지는 않다. 이집트 사람과 밀접한 교류 지역이니 이집트 사람일수도 있고, 아니면 이집트 장례문화의 영향을 받은 블레셋 사람 또는 가나안 사람일 수도 있다. 아직 DNA분석까지 했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


그런데 고고학 박물관에 갈 때마다 이들을 피할 방법이 없다. 매번 박물관에 갈 때마다 왜 입구에 이 관들을 배치해 놓았을까부터 시작해서 이 관의 주인들은 누구일까, 고고학 박물관 입구에 이렇게 배치한 의도는 무엇인가 등 이런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들과 친해지기로 했고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들의 표정, 머리 모양, 팔과 손, 또는 손가락 표현 하나하나가 참으로 묘했다. 근엄한 얼굴, 다소곳한 표정, 우락부락한 인상, 지적인 고상함, 아마 이 관주인의 생전 모습, 성격, 직업, 업적, 사회적 평판, 개인의 신체적 특징, 또 그 사람이 살아온 삶, 그리고 죽음 저편에 대한 소망까지 산자가 죽은 자의 지난 세월과 죽음 저 너머 미래의 삶에 대한 소망까지 담아내려 애쓴 흔적임이 내 눈에는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왜 고고학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들을 세워 놓은 것일까?
그래서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과 가장 먼저 만나고 인사를 하게 했을까?
가장 대표적인 유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일 것일 텐데, 그리고 유명세로 말하면 박물관에 이보다 훨씬 값지고 유명한 유물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책임 큐레이터(Dr. Haim Gitler, Tamar and Teddy Kollek Chief Curator of Archaeology)에게 왜 그랬냐, 의도가 무엇이냐 물어보지는 안았다.
이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몇 번씩 만나고, 시간을 보내면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대화하는 동안에 비로소 이렇게 디자인한 사람들(큐레이터)의 의도를 알듯 싶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게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박물관은 대화하는 곳이다. 박물관에서는 무한 장르의 이야기들이 오가는 곳이다. 박물관은 산자가 자신을 살피는 곳이다. 박물관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고 우리에게 무한한 교훈과 지혜와 그리고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말해주는 곳이다.


그래서 유물 하나하나에는 최소한의 설명만이 있다. 어떤 주관적인 해석을 최소화했다는 의미다(물론 이점에 대해서 아쉬움이 분명히 있다). 시대, 발견 장소, 유물의 성격 등, 팩트만 독자에게 전달해 준다. 그리고 독자가 유물과 무한한 시간들을 넘나들며 말할 수 있도록 광대한 이야기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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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