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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테라피-20

크리스천의 성(性)


교회에서 부부의 삶에 대한 성경공부를 할 때 가장 마지막으로 다루어지는 부분이 바로 이 성()에 관련된 단원이다. 부부의 성에 대해서 톡 까놓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성도님들이 더 부끄러워하신다. 웬 사모가 저렇게 남사스러운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지 의아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은 하나님께서 부부에게 누리게 하신 가장 깊이 있는 친밀감의 상징이기도 하다.


에덴에서 부부가 함께 누리도록 설계된 기쁨과 친밀감이 반영되는 것도 바로 부부의 성을 통해서이다. 그런데 부부의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부부의 문제가 가장 빨리 영향을 미치는 것도 바로 부부의 성이라는 영역이다. 그래서 가정과 부부의 관계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과정에서 성에 대한 고찰은 반드시 다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성격차이 때문에 상담소를 찾는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꽤 많은 부분이 바로 성()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상담을 하러 오는 많은 부부가 성관계에서 자신들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거나 성적 기능에 대한 걱정, 성에 대한 관점의 차이 등 여러 가지 이슈들을 제시한다. 그런데 부부의 성에 관련된 상담에서 많이 제기되는 문제는 성적 욕구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에 있다.


배우자와 성적 욕구가 거의 비슷한 경우는 찾아보기 드물다. 부부중 꼭 한 쪽은 자신의 성적 욕구가 만족되지 않은 채 계속 거부당한다고 느낀다. 배우자가 자신을 거부하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배우자는 상대방이 자신을 너무 이해하지 못하고 강요한다고 느낀다. 여기서 시작된 갈등이 다른 사소한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있는 경우 여성의 몸과 마음은 대부분 육아에 맞추어진다. 온종일 아이와 씨름을 하고, 밤에 몇 번씩 일어나 기저귀를 간다든가 젖을 먹이다 보면, 남편이 원하는 성관계는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그냥 하나 더 해야 하는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남편은 자신의 우선순위가 자녀의 뒤로 밀리고 있다고 느끼고 아내가 거절하는 성관계가 자신을 거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아내는 육아에 지칠 대로 지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러울 수 있다. 강요당한다는 생각이 들면 화가 날 때도 있고,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남편이 짐승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한 청년이 세미나 중에 질문하기를 살아보고 결혼하라고 조언하는 선배들이 있다는 것이다. 소위 말해 속궁합을 맞춰보고 괜찮으면 결혼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평생 살아야하는데 결혼해 보고 안 맞으면 무를 수도 없고 어쩌냐는 것이다. 참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 조언에는 큰 오류가 있다. 부부는 모든 것이 딱 맞아서 결혼하고 그 결혼을 유지해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서로 안 맞는 부분들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 결혼이기 때문이다. 성관계도 마찬가지의 원리이다. 어떻게 해야 서로를 기쁘게 하고 만족한 성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부부는 서로 다른 것이 너무나 많고, 성적인 욕구나 취향도 서로 다르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속궁합이 딱 맞아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해서 배워나가고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최근에 필자가 상담소에서 Relationship Focused Group을 인도하면서 남성들과 여성들에게 질문했다. 이성 관계 혹은 부부관계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남성과 여성 그룹은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들은 단 한마디로 ‘Sex’라고 대답했고, 여성들은 대화,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꼽았다.


성적 욕구의 차이는 부부의 연합에 있어 큰 이슈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남성이나 여성이 부부 관계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성관계든 대화를 통해서든 정말 원하는 것은 서로를 향한 진정하고 깊은 친밀감에 있다. 그 친밀감에 이르는 방법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이전의 칼럼에서 다루었던 남녀의 차이는 심리적 정서적 성향에만 그치지 않는다. 성적인 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부부의 성, 크리스천의 결혼생활을 다루는 책들도 남녀가 성적으로 육체적으로 얼마나 다른지를 설명한다. 다른 두 사람이 만났기 때문에 반드시 생겨나는 차이인 것이다.


흔히 성에서의 남녀차이를 말할 때 몇 가지 측면을 말한다. 성적인 욕구가 어떻게 시작되는가, 얼마나 강한가, 그리고 어떻게 성적으로 만족하는가의 문제로 나누어진다. 많이 알려진 남녀의 차이 중 하나는 남자가 시각에 약하다면 여자는 청각에 약하다는 것이다.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는 농담도 이러한 남녀 차이를 설명한다. 수영복을 입은 모델의 달력이나 Playboy 등의 잡지는 여자들에게는 그다지 흥미로운 소품이 아니다. ‘사랑해라는 속삭임이 훨씬 더 자극적이다. 자신에게 보이는 작은 관심이 훨씬 더 가슴을 뛰게 한다. 그런데 많은 남자들은 시각적인 자극을 통해서 성적인 흥분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래서 찢어진 팬티나 남편이 입다버린 낡은 면티나 속옷을 잠옷으로 입는 아내가 알뜰하게 생각되기 보다는 눈이 안가는 낡은 가구 처럼 보이는 것이다. 식구들을 챙기느라 자신을 가꾸기를 잊고 포기한 아내가 고마울 때도 있겠지만, 내가 호강시켜 줄 능력이 없다고 시위하나 싶어 자존심 상할 때도 있다.


남편은 성관계라는 활동(activity)을 통해서 사랑을 확인하지만, 아내는 마음에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몸이 열린다. 남편은 직접적인 자극에 잘 반응하지만, 아내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내에게 성관계는 마음을 만져주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간접적 자극에서 직접적인 자극으로 서서히 진행되어야 한다. 남편이 성적으로 흥분되어 갑자기 달려들면 아내는 함께 흥분이 된다기보다는 위협을 느낀다. 이러한 작은 차이가 부부의 성관계에서의 큰 갈등을 만들어낸다. 하나님께서 대체 왜 부부를 다르게 만드셔서 이런 혼란을 일으키실까 원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자신과 똑같으면 몇십 년을 함께 사는 부부가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달라서 골칫거리지만, 달라서 재미도 있는 것이다.


성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다른 갈등을 어떻게 푸는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바로 의사소통,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다. 우리는 성을 금기시하는 문화에서 자라났고, 그 때문에 정확하고 올바른 통로가 아니라, 친구들, 인터넷, 야동 등으로 성을 접한다.


부부의 성이나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해 너무나 잘못된 정보를 가진 채 배우자의 성을 접한다. 잘못된 지도를 가지고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자신이 성에 대해 잘못된 기대와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도 인식을 못 할 때가 있다. 성의 문제를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배우고 표현하는 문화와는 거리가 먼 탓도 적지 않다.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성관계에서 배우자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도 모르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줄도 모른다. 그런데 착각한다. 배우자가 당연히 알리라고.


하나님께서는 남편들에게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벧전 3:7)고 말씀하셨다. 남편뿐이 아니라 아내에게도 동일한 말씀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 결혼할 때 내 맘대로 기대했던 모습과 다르다고 변했다거나 속았다고 분해하지 말자.


우리가 처음부터 착각했을 수도 있고,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해가는 것 또한 사람인 걸 부인했을 수도 있다. 부부의 성()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가 잘못 알았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배우자의 모습에 무지할 수도 있다. 성관계도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라 변해간다. 어찌 보면 아직도 배우자에 대해 발견하고 배워야 할 점이 있다는 것은 신 나는 일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결혼은, 부부의 성은 몇십 년이 지나도록 흥미진진한 여정인 것이다.


심연희 사모

RTP 지구촌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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