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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교수의 문화나누기>빗방울에 담은 기도

최현숙 교수 침신대 피아노과

요즘 들어 예전에는 없었거나 거론되지 않았던 많은 단어들이 자주 세간의 관심으로 대두된다. 미세먼지, 힐링, 아날로그 감성 등 불과 20년 전에는 흔히 들어볼 수 없었던 단어들이 회자되면서 새삼 세상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단어들이 예전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거나 이런 단어들이 표현하는 현상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처럼 문제가 될 만큼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미세먼지만 해도 현시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제여서 우리나라에서는 애꿎은 고등어만 구박을 받고 있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 수년간 치유, 즉 힐링이라는 영어 단어는 마치 마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묘약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문제들이 하늘을 보고 별을 헤며 시를 노래하던 아날로그 세대에서는 흔치 않았던 현상들인지라 우리는 새삼 아날로그적 감성의 추억을 그리워하곤 한다.


장맛비로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대기가 맑아지긴 하지만 날씨 탓에 자칫 가라앉을 수 있는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며 우리 가슴 깊이 가라앉아 있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깨워주는 음악이 있다. 바로 폴란드의 작곡가 프레데릭 쇼팽(Frederic Francois Chopin, 1810~1849)빗방울 전주곡이다. 피아노의 선율로 표현하는 비의 소리가 아름다운 이 작품은 쇼팽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시기에 작곡된 작품이다.


쇼팽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를 존경하고 그의 작품을 공부했고 바흐의 평균율을 모델로 피아노를 위한 24개의 전주곡을 작곡하게 된다. 24개의 전주곡의 15번인 빗방울 전주곡은 사랑하는 여인이 외출을 한 사이 비가 왔던 날 작곡되었다고 전해진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연상케하는 왼손의 연속되는 음형이 애닮픈 멜로디의 반주 형식으로 나타나는 이 작품은 쇼팽의 뛰어난 서정성이 극대화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물론 빗방울이라는 제목은 쇼팽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연인이었던 조르쥬 상드(George Sand, 18041876)의 에세이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수도원의 기왓장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요란했는데 그 빗방울이 그의 상상과 음악 속에서는 하늘에서 그의 가슴 속에 떨어지는 눈물로 변했던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가슴 속에 떨어지는 눈물을 얼마나 경험하며 살고 있을까? 눈물을 담아낼 만한 가슴을 가지고 있기는 하는 걸까? 자신의 주장만이 절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심, 지나친 경쟁심에 갇혀 무차별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무자비함 등으로 관계와 공동체를 헤치는 이상 징후는 정서적 미세먼지처럼 우리의 삶을 답답하게 한다. 이런 현실에서 오염된 대기를 청소해 주는 장맛비처럼 우리들의 삶을 정화시켜 줄 수 있는 영혼의 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기도할 수밖에 없다. 굴절되고 혼탁한 정신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일은 결코 인간의 힘으로는 되는 일이 아님을 인정하고 주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이 메마른 영혼에 단비가 되어 주기를,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님 되심을 믿는 능력이 우리 삶의 유일한 치유가 되기를 기도해야겠다.

올여름 장마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들으며 우리 영혼의 정화와 해갈을 위한 기도와 함께 건강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빗방울에 맺히는 기도가 어느 새 우리들의 마음에 넘치고 흘러 장마가 지날 때 쯤이면 좀 더 깨끗하고 청명한 영혼으로 새로워 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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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