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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교수의 문화나누기>비의 기적: 멘델스존 오라토리오 “엘리야”가 주는 단상

최현숙 교수 / 침신대 교회음악과

사람의 몸에서 열이 나면 건강 상태가 안 좋다는 첫 번째 신호라는 것은 보편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인다.

몸에서 일어나는 생존을 위한 씨름으로 인한 열감이라는 의미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뜻이고 이에 대한 환경연구가들의 경고는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6월이면 늘 장마로 많은 비가 내렸던 한반도에 언제부터인가 마른장마라는 말이 생기더니 올해는 아예 극심한 가뭄으로 급수를 제한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과학이 발전하고 인공지능으로 많은 것들이 자동화되면서 이제 제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비한방울도 마음대로 오게 할 수 없음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를 제대로 깨닫게 해 주는 여름이다.


피조물의 한계와 약함을 가진 존재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루는 공동체마다 아집과 사욕으로 가득함을 바라볼 때마다 그 모습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오죽하시겠나 하는 생각에 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하지만 속내는 철저히 진영논리에 의한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 있다. 진실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편법과 참으로 위장된 거짓이 더 믿음직해 보이기도 한다. 평등과 공정을 외치지면 속으로는 사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세술이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옹졸하고 비겁함을 평화와 화합을 위한 것이라고 변명하기도 하는 모습은 일상 속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우리들의 민낯이다.


비가 오지 않는 뜨거운 대지 때문에 한층 더 덥게 느껴지는 여름에 이런 주변의 행태들로 더 답답해지기도 한다. 그런 갑갑함 가운데에서 들었던 멘델스존(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의 오라토리오 “엘리야”는 또 다른 관점으로 삶을 보게 한다. 19세기 독일의 작곡가로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멘델스존은 분명한 신앙과 그에 따른 음악철학을 가지고 서양음악 역사 전체를 통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작곡가이다. 그의 생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인 오라토리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의 사제들과 대결하는 선지자 엘리야의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19세기 교회음악의 보석 같은 작품이다.


42곡의 음악이 전체 2부로 나누어 전개되는 이 작품은 1부에서는 엘리야의 가뭄예언과 경고, 그리고 갈멜산에서의 극적 대립을 이야기한다. 그토록 가물었던 대지에 비를 내리게 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이끌어 내는 대단한 역사를 경험한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쫒겨 산으로 도망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2부는 1부의 드라마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큰 사역을 했던 엘리야가 비참한 상황으로 인해 낙심하고 부르는 노래가 매우 인상적이다. 바로 “Es ist genug", 번역하면 “이것으로 족합니다”, 혹은 “이만하면 됐습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위대한 사역을 감당했던 선지자가 부르는 절망의 노래이기에 더 절절하고 안타까운 울림을 만들어 낸다.


음악으로 표현되는 엘리야의 모습에서 한없이 약한 인간의 본모습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처지를 비참하고 비극적이라고 단정한 엘리야와는 달리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하느님이 진실된 즐거움을 주실 것이다”라고 응답한다. 결국 하나님은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후계자를 세운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우시는 놀라운 역사를 완성하신다. 멘델스존은 장엄하고 드라마틱한 음악적 대서사시를 통해 고난과 역경을 겪은 뒤 영광스러운 결말을 맞게 된다는 대칭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지금의 답답함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이제 그만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갑갑한 현실이라 하더라도 멘델스존이 확신한 역경 후의 영광의 결말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 믿음이 단련되는 여름이기를 멘델스존의 음악과 더불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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