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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여의도의 창

어느 교회가 어떤 교회성장프로그램 관련 세미나를 한다고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교회 담임목사는 “우리교회는 80%가 청년”이라며 자랑삼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 또한 서울에 처음 입성했을 당시 고향교회 누님을 통해 그 교회를 잠깐이나마 다녔기에 청년들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비율이 과반수를 훌쩍 넘는다는 이야기는 좀 놀라웠다. 청년이 80%라는 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이는 굉장히 부러운 일이다. 여기에 더해 수평이동에 의한 부흥이 아닌 새신자들의 비율이 높다면 그만큼 축복된 일이 없을 것이다.


아쉽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은 새신자보다는 모태신앙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인 듯 하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신앙의식조사 발표에 따르면 전도에 의한 최초 교회 출석 비율은 2012년 74.9%에서 2017년 59.4%로 급감한데 반해, 모태신앙은 2012년 15%에서 2017년 30.1%로 상승했다.

모태신앙도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 성취를 위해서는 불신자 전도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모태신앙만으로 구성된 교회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교회에 새신자가 오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특히나 교회의 동력이 될 청년층의 유입을 위해서 한국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로 교회가 안식처가 되길 희망한다. 요즘 청년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하면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라고 반문한다. 어설픈 충고나 조언보다 그저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는 교회, 끌어안아주는 그런 교회가 필요하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어릴 때 교회는 친구들과 만나는 놀이터였다. 언제나 그곳에서 친구들과 만났고 함께 어울렸다.  


두 번째는 불신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교회가 필요하다. 나는 교계언론 종사자다 보니 대부분 만나는 사람이 믿는 사람들 뿐이다. 유일하게 불신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는 프로축구 서포터즈 모임이다.

하루는 그 모임 회장 형이 교회에 대한 자신의 궁금증을 내게 물어왔다. 대부분 교회에 대한 악평들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교회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잘못됐다고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한편, 오해로 인해 비롯된 문제는 사실은 이렇다며 조근조근 설명해 나아갔다. 그러자 회장 형은 내게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조금은 해소됐다고 말했다.


축구가 주일에 경기가 많기에 교회에 가는 것은 사양하는 눈치지만 이렇게 한사람 한사람 불신자들과 대화하며 교회와의 거리를 좁혀나가면 자연스레 전도의 장이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제발 복음전도 외에 정치색을 끼워 넣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내 휴대폰으로 자꾸만 ‘문재인 빨갱이’라는 문자가 누구누구 목사라는 이름으로 날아온다.


박근혜 탄핵반대 집회에 십자가와 미국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인다. ‘빨갱이 때려잡자’가 아니라 오직 성경, 오직 복음을 외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덧붙여서 교회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제발 좀 깔끔하게 ‘죄송합니다’하고 끝내라. 진짜 억울하면 하나님이 아시고 풀어주실텐데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나.
부디 교회가 본질을 회복하길 바란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아가지 않더라도 청년들이 자연스레 교회 예배당으로 발길을 옮길 것이다.


범영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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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