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영적인 성장도 침체 되어 있지만 질적인 면과 수적 성장에도 크게 둔화되고 있어 유럽의 교회들처럼 교회 건물만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고 있다. 북 유럽에서는 교회가 교회로써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 됐다. 독일에서 태어난 루터교회가 덴마크를 비롯해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여러 나라에서 국교로 인정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본인이 믿지 않아도 기독교인 된다. 이러다 보니 교회는 예배를 드리는 곳이 아니라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됐고 목사는 교회에서 예배인도나 설교를 할 수 없게 됐다. 왜냐하면 교회 성도들이 예배에 참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물만 크게 남아 있을 뿐이고 교회 자체는 죽어 있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 교회를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 이런 모든 것은 성경적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해야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러한 유럽 교회 모습을 답습해가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행정뿐만 아니라 조직과 제도는 빈틈없이 일사불란하게 교회를 움직여 간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인 복음 전파와 성도들의 영적 질적 성장을 위해 교회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고 있는 지 의심하지 않을 수
세월호 사태로 인해 주목받고 있는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 씨가 한국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의 실세임이 알려지면서 교단이 구원파로 오인 받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본 교단명인 ‘기독교한국침례회’와 유사한 명칭으로 알려지면서 일부교회에서는 정통 침례교회가 “구원파다” “이단 사이비 단체다” “유 씨 부자나 측근들이 은신해 있다”는 등 심각한 유언비어와 함께 교회의 적잖은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구원파 산하 교회로 오인해 측근이 숨어 있다고 제보를 받고 교회에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있었으며 더 큰 피해는 교회 전도사역과 영혼 구령 활동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방전도를 나가거나 교회 전도지를 나눠주면 “너희 구원파 아니냐?” “침례회라는데 같은 곳이다.” “유병언의 비호단체다” “침례교회는 이단이다”라며 강한 거부감과 경계심을 나타내며 침례교회를 피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교회에 등록한 새 신자들도 “침례”라는 말을 들으면 ‘구원파’와 연결을 짓고 담임 목회자와 상담을 받기도 하고 문의도 하거나 결국 침례교회라는 이유만으로 교회를 떠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교회 스스로가 자정능력
지금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교회뿐만 아니라, 사찰 등 대형 종교시설의 경매 건수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호황기에 무리하게 대출금을 받아 건물을 신축, 증축했다가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재정난에 빠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부동산정보업체에 따르면 올 1월부터 4월까지 경매 물건으로 나온 대형 교회 및 사찰 등 종교 시설은 13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5건)보다 45% 증가했다고 한다. 연간 기준으로도 종교시설 경매 건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8년 연간 181건에 불과하던 종교시설 경매건수는 2012년까지 계속 증가했으며 지난해에는 391건까지 껑충 뛰었다. 이와 같이 경매물건수가 증가하는 이유는 교회가 은행 빚을 지면서까지 대형교회 건축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결국 파산하거나 파산 위기에 몰려서다. 경기불황을 겪으면서 성도의 수가 감소하고 성도들이 내는 헌금이 줄어들자, 교회가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몇 일 전 100억 원 이상의 초대형 교회가 잇달아 법원 경매시장에 나오고 있다고 인터넷에 기사가 실렸었다. 12일 대법원에 따르면 경기신도시 백현동에 자리 잡은 충성교회를 비롯해서 서울종로구
불신자들이나 성도들 중에서도 교회가 예배만 드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주님은 교회를 향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칭하셨다. 이와 같이 교회의 별칭을 통해서도 우리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꾼과 사역으로서 할 일이 참으로 많은 단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교회의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는 교회가 참된 교회요 살아 역사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선포하듯 교회의 일차적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복음을 온 세상에 충만하게 전하는 것이다. 불안전한 세상은 오직 복음으로라야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상과제가 전도 사역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처럼 교회가 위임받은 1차 과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우리의 교회는 어떠한 활동에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바람난 교회가 되고 말았다. 교회를 대표하는 총회도 교단을 대표하는 한국교회의 대표라고 자처하는 연합단체들이 교회의 본질적인 복음전도 사역보다 개인 명예에 치우쳐 사분오열로 찢기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21세기의 교회가 당면한 큰 문제는 종교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종교 다원과 포스트 모던니즘의 영향은 점점 더 단 하나의 객관적 진리를 반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오직 예수” “오직 믿음”의 복음을 과연 유효하게 선언하고 선포된 복음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고, 그들의 삶과 생활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 혹은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를 고수하며 신앙을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종교 다원주의란 종교 다원 현상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다원적인 종교들을 동일한 지평선에서 바라보며 다원적 종교들의 궁극적인 것의 실제를 주장하는 종교적, 신학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 다원주의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어떤 특수하고 고유한 종교로 바라보지 않고 다양한 여러 종교들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기독교만이 유일한 종교가 아니라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의 진리가 있고 나름대로의 구원의 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는 그 여러 종교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든, 유교를 믿든, 잘만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행복한 곳을 찾으라면 분명 가정을 꼽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문제가 생겨도, 슬픔이 있어도 그 모든 것을 치유하고 풀어줄 수 있는 곳이 가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가정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가정에서 불행이 싹트는 경우가 많다.5월 달 마지막을 보내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깊이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보면 가정생활에 대한 지혜가 담겨져 있다. 특히 시편에서 보면 ‘너, 라고 일컬어지는 대상은 남자로 보인다. 또 ’네 집 안방에 있는 아내,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 네 자식의 자식이 다 등장한다.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 가정은 주님을 경외하며, 화목하게 살고 있는 가정으로 우리가 모델로 삼을 만한 모범적인 가정이다. 이 시대의 가정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자식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 자신이 없어지고,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요즈음엔 “역기능적 가정”이 너무 많아졌다. 가정은 깨어지고, 나누어지고, 미워하고 질시하는 곳으로 변했다. 이처럼 역기능적 가정이 늘어가는 이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우리나라 결혼 건수는 급격히 감소한데 비해 결혼 생활을 20년 이상한 부부의 이혼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내국인 이혼 통계를 보면 동거 지속기간별, 연령별, 자녀수 등등이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이혼율을 계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이혼자의 평균 동거기간이 2006년에는 3.3년, 2007년에는 2.7년으로 점점 줄었다. 혼인 동거기간 4년 이내에 이혼을 하는 경우가 이혼건수의 90%를 차지한다. 동거기간은 최초 결혼부터 이혼 판결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결혼 후 바로 가출할 경우, 가출신고 후 6개월이 넘어야 이혼소송을 할 수 있다. 한동안 일본에서 “나리타의 이별”이 대유행이었다. 막내의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나리타공항에서 새로 맞은 자부의 신혼여행을 떠나보낸 일본의 부부가 함께 한 평생을 뒤로 하고 남남으로 갈라서는 것이다. 자녀들을 무사히 출가시키고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일차 마무리한 일본인 아내들이 “나도 인간”임을 내세우며 억압받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훌훌 내 갈길 떠나는 것이다. 10여 년 전 일본에서 일기 시작한 황혼이혼 바람이 우리 사회에도 거세게 불고 있다. 60대 이상 노부부의 황혼이혼 건수가 급
5월은 언제나 싱그럽고 푸근하다. 신록과 젊음의 계절이다. 단언컨대 일 년 중 가장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이다. 사람이나 자연 모두 마찬가지이다. 희망의 싹과 생명이 힘이 이 대 절정을 이룬다. 때문에 사람들이 5월을 가장 아름다운 달로 여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16일 성년의 날, 등이 줄을 잇는다.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한 것도 계절의 아름다움과 상관없지 않을 것이다. 12월이라고 해서 가정의 의미를 되새기지 말라는 법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5월에 가정의 뜻을 되새긴다. 그것은 아마 자연의 생명력을 통해 성숙과 조화와 상생의 듯을 배우라는 이유에서 인듯하다. 유독 사람만이 소중한 정과 기본적인 도리를 헤아릴 줄 안다. 사람으로서의 참된 가치를 높이고 되새기게 하는 날들은 5월에 몰려있다. 아름다운 계절이 사람들의 심성에 사랑이 넘치고 너그러운 마음씨를 갖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이 잘되고 화평해야 나라가 융성하고 평화롭다. 새삼 따져볼 것도 없다. 자신의 가정을 잘 돌본 다음 큰일을 도모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오늘에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는 만고불변의 진리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앞날을 생각하기 위해서다. 몇 일전 세월호의 침몰 소식에 전 국민이 안타까워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공항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수백 명의 탑승자를 바다에 수장시켜버렸다. 솔직히 300명이 넘게 죽거나 실종됐다.하지만 유가족과 지인들을 고려한 언론과 정부는 실종으로 표기해 두었다. 문제는 이번 세월호 침몰 참사와 구원파 논란으로 엉뚱하게 기독교 전체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이다. 교회 안에서야 구원파가 기독교와 별개지만, 밖에서는 그 같은 사실 인지가 어렵고, 또 구분의 필요조차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반기독교 정서가 만연한 중에는 더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 교인들의 모습에서 ‘구원파’ 와 유사한 구원관이 나타난다는 비판도 있어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기독교한국침례회 교단은 정통교단 중에서도 성경적 보수 교단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큰 교단이 침례교단이다. 그런데 유사 사이비들이 근래에 들어 침례교 간판을 걸고 있어 적지 않은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중앙 일간지를 비롯해서, 메인 TV 방송에서도 침례교를 여가 없이 뉴스를 통해 내보내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한국침례회, 정통교단이 세월호
고등학생 300여명을 태운 세월호가 바다로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이 처음엔 분노를 느꼈다. 혼자 탈출한 선장과 엉망으로 사고 수습을 하는 공무원을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는 불안감으로 바뀌고 있다. 이 나라에서 애 키우기가 겁난다는 불안이다. 젊은 부모나 예비 부모는 물론 이미 자식 다 키워놓은 중년까지 불안에 떨고 있다. 주말에 아파트 어귀에 모인 주부들은 “이런 나라에서 외동은 절대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주부는 “며느리한테 적어도 둘은 낳아야 한다. 하나는 절대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다른 주부들도 모두 맞장구를 쳤다. 자식 한두 명 잃는 것이 예삿일로 여겨진 못 살던 시절에나 오갔을 대화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들리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이런 불안감은 진도 사태 이전부터 누적되어 왔다. 아이들이 어이없이 죽어간 사건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7월 해병대 캠프에 간 고등학생 5명이 바다에 빠져 숨졌고, 올 2월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갔던 대학생 9명이 무너진 건물에 깔려 사망했다. 모두 우리나라에 사는 아이라면 일상적으로 거쳐 가는 행사에서 당한 일이라 남의 일처
서방교회에서는 재의 수요일에 시작해 부활절 전까지 6주간 반 계속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금식한 것을 본 받아 일요일을 제외한 40일을 금식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동방교회에서는 부활절 8주 전부터 시작하며, 토요일과 일요일을 모두 금식 일에서 제외한다. 부활절 축제 전에 준비와 금식에 기간을 지킨 것은 사도시대부터였다. 이 기간은 침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준비하는 시기였고, 죄인들에게는 참회의 기간이었다. 초기의 수세기 동안 금식규율은 엄격했으며, 동방교회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서방에서는 이 규율이 점차 완화되어 엄격한 금식 규정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면제되어 재의 수요일와 성 금요일만이 사순절 금식일로 지켜졌으나, 참회예절은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영국성공회는 사순절을 금식으로 지킬 것을 규정하고 있다. 침례교를 비롯한 모든 기독교에서는 사순절을 다양한 예배와 전례로 지켜지고 있다. 3월 5일 수요일부터 사순절 기간이 시작된다. 기독교인들에게 사순절은 특별한 의미와 유래가 있다. 2014년 사순절은 좀 특별한 절기가 됐으면 한다. 그 동안 경심했던 것을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40일간(주일을 포함하면 실제적으로는 46일) 특별히 하나님의 뜻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한들,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은 인류 보편적 가치이다. 인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역겨운 짓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동성애란 말인가? 짐승들도 안하는 짓을 하물며, 인간이 해서야 되겠는가? 지금은 소수일지 모르나 점차 그 양상이 확산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동성애의 확산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다. 한 개인의 성적 취향을 넘어, 그것이 보편적 사회현상으로 대두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자연스런 조화에 역행하는 동성애는 분명 억제돼야 한다. 최근 군대 내에서 동성애를 허락한다는 법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사회가 시끄럽다. 동성애문제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이태희는 지난 28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군대내 동성애 옹호 조장하는 군형법 92조 개정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대책위는 군대 내에 비윤리적인 동성애를 조장 옹호하며, 대한민국 군대를 무너뜨리려는 새 정치민주연합, 정의당, 통진당 등 국회의원들의 정신 나간 행위를 강력 규탄하며, 군대내 동성애를 허용하는 군형법 개정을 결사반대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창당한 새 정치민주연합이 진정 새정치를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쳐야 한다.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한 일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쫓으라.”고 베드로 사도는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위로하고 용기와 힘을 주는 말을 하기보다 사기를 저하시키는 비난만 쏟아 붓는 부정적인 말을 일삼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모든 일에 올바른 사리판단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사물을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는 것이다. 인간의 판단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실 판단이고, 둘째는 가치 판단이다. ‘이 사람은 누구다’는 사실판단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다’는 가치판단이다. 사실판단은 쉽지만, 가치판단은 어렵다. 왜 가치판단이 어려운가? 판단자의 주관과 감정과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기준과 감정을 앞세워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어떤 사람은 성격상 확실한 사람이라서 바른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성격만 중요하고 남의 감정은 아무것도 아닌가? 바른 말이 꼭 좋은 말은 아니
얼마 전 A교회 장로 몇 사람의 실명으로 된 유인물이 배달됐다. 전체적인 내용은 담임 목사가 여 성도를 성폭행 및 간통을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몇일 후 장로 중 한 사람이 전화하여 보내준 유인물 내용대로 신문에 실어줄 것을 요청해 왔다. 기사화를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를 떠나서 이와 같은 사건들이 기독교 안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데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왜 이런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는가?첫째로,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을 가지는 목회자일수록 성적인 유혹에 더 취약하다는 점이다. 둘째, 어리석은 모습으로서 “만약 나에게 정말로 관심을 가져준다면 나를 붙들어줘요”라고 요청하는 교인의 접근에 서로 신체적인 접촉을 하다가 좀 더 친밀한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성적인 관계에 접어든 목회자들이다. 셋째, 잘못된 신학적 지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목회자인데, 우리는 서로 성관계를 가진 후에 둘 다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도 또 그런 삶이 반복될 수 있다. 넷째,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핑계로 삼는 목회자인데, ‘나의 결혼생활은 불행하다. 나의 아내는 성생활에 잘 응해주질 않는다’라고 합
몇 년 전에 2009년, EBS 다큐프라임에서 ‘동과 서’ 즉 ‘동양사람, 서양사람’이라는 제목의 다큐를 방영한 적이 있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 사람의 사고 구조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다큐였다. 진행자가 동양과 서양의 사고의 차이를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여러 가지 실험을 한 것이다. 그 중에 하나는 이런 것이 있었다. 네모난 나무토막과 동그란 나무토막, 그리고 동그란 나무토막과 같은 모양의 파란 색의 플라스틱이 있었다. 그리고 동그란 나무토막을 ‘닥스’라고 이름 할 때에 네모난 나무토막과 동그란 플라스틱 중 어느 것이 ‘닥스’인가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어느 것이 같은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일본, 중국, 한국인들과 같은 대부분의 동양인들은 동그란 나무토막과 네모난 나무토막이 ‘닥스’라고 말했다. 그 둘의 재질이 나무이기에 모양은 달라도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프랑스인들과 같은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둥그런 나무토막과 둥그런 플라스틱이 ‘닥스’라고 말했다. 이 둘이 재질은 달라도 모양이 같기 때문에 재질은 달라도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동양인이나 서양인이 다 같은 사람이기에 아주 세부적인 사고에 들어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