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여왕의 전용열차가 칠흑같이 어두운 밤, 장대비를 뚫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력한 헤드라이트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기관사는 급정거를 한 후 차장과 열차 승무원들과 함께 급히 밖에 나가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여 몇 미터 더 가보니 교량 한가운데가 급류에 휩쓸려나가고 없었습니다. 만약 그 이상한 형체가 아니었다면 여왕을 위시한 수백명의 사람들이 몰살하는 사고가 났을 것입니다. 그 이상한 형상에 대해 궁금해 하던 기관사가 기관차를 살피던 중 헤드라이트에 큰 나방 하나가 죽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른 헤드라이트를 켜보았더니 나비의 날개가 마치 깃발을 흔드는 사람의 형상처럼 보였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여왕은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방법이요”라고 감사했습니다.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에는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적 문제, 경제문제, 사회적 문제, 교육문제, 인종문제, 가정문제, 직장문제, 질병문제와 같은 골칫거리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난관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과 한계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 더 기적을 필요로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대북 활동을 크게 공개적인 부분과 비공개적 혹은 개별적인 부분으로 나눠 인도적 지원과 함께 선교에 박차를 가해 왔다. 국내 기독교의 대북 활동은 주로 공개적이며 “선교” 보다는 인도적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이 경계하거나 의심할 만한 행동은 아예 시도하지도 않은 방식이다. 북한 역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조선불교도연맹(조불련) 등을 창구로 남한 종교계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수용했다. 2005년 개성 영통사가 남한 천태종의 지원으로 2007년 금강산 신계사가 조계종의 지원으로 복원됐고, 2008년엔 평양 봉수교회가 남한 기독교의 지원으로 재건축됐다. 북한 지원에는 기독교계가 가장 적극적이어서 여러 대형교회와 단체, 교단이 식량과 의약품 등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해왔다. 또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용기 심장전문병원”을 평양에 짓고 운영하고 있다. 이 병원은 2007년 말 평양시 대동강구역 동문2동에 건축을 시작해 2010년 완공예정이었던 공사는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이후 지금까지 중단된 상태다. 반면 비공개적, 개별적 활동은 더 활발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지원 관력단체 등에 따르
사람이 한평생 살다보면 초청 받을 때가 있고 또 누군가를 초청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초청은 반가움과 기쁨이 되는가 하면 어떤 초청은 그렇지 않은 초청도 있습니다.올해로 87세인 저는 얼마 전, 노령에 아주 흐뭇한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온양교회 김병철 목사의 초청이었습니다. 제가 1954년 3월부터 1956년 6월까지 2년 3개월간 신학교를 다니면서 개척 초창기에 섬겼던 그 교회가 창립 58주년을 맞아 저를 초청해 준 것입니다.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가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온양교회 예배에 참석했고 설교도 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직접 가서 그동안 교회가 많이 성장했고 지금도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보게 됐을 때, 저는 참으로 놀라웠고 마음에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지하 1층에서 지상 4층까지 연건평 450평의 시설에서 각 연령에 따라 모이는 모임에서는 활기가 넘치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국내외 선교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며 주님의 지상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임을 알게 됐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볼 때,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많은 교회라고 느껴졌고 요즘처럼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이러한 시대
요즘 대세는 “강남스타일”이며 강남스타일을 부르면서 추는 “말춤”이 대세입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에 보면 강남스타일 말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유행하고 세계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워낙 대세다 보니까 흉내를 내라고 하면 비슷하게 흉내를 내면서 닮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런가 하면 “강남스타일”을 여러 패러디하는 것도 나오고 있으며 “오빤 강북스타일” “오빤 몽고 스타일” “오빤 경찰 스타일” “오빤 무도 스타일” 등 가사를 개사해 나름대로 웃음을 주며 사람들은 강남스타일을 닮아가고 있습니다.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해야 할 최대의 신앙적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후,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로 예정하신 것은 그 아들, 예수의 형상을 본받아 하기 위함이라고 증거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장 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데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은 하
기독교한국침례회 제68대 총회 의장단호가 출발했다. 지난 10월 15일 수원 영통영락교회에서 열린 의장단 취임예배에서 제68대 총회장 고흥식 목사 및 제 1부총회장 윤덕남 목사, 제2부총회장 정호인 호칭(장로)와 임원들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제68대 총회 의장단 취임을 통해 교단의 새로운 도약이 이뤄지길 전국 대의원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섰던 대의원들도 교단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일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단 화합을 위해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교단 발전에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취임한 고흥식 총회장은 임원들과 많은 논의를 해야겠지만 교단의 화합을 저해하는 그 어떤 임원의 독주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교단 미래의 절대적인 원인 중 하나가 몇 사람의 독주에 의한 권위주의에 매몰되어 총회장을 넘어선 월권 행위 때문에 교단화합에 악영향을 끼치게 됐던 것이다. 본인은 총회를 위한다고 하지만 대의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총회장은 임원들의 전횡을 사전에 검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총회장의 의중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 지 철저한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
중독에 대해 세부적으로 다루자면 다양한 주제가 연루될 것이다.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포르노그라피, 도박, 쇼핑, 강박증, 인터넷 게임 등 자의로 쉽게 끊을 수 없는 특정 행동이나 사고에 관한 모든 것은 중독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그러나 중독에 관한 특정 주제에 관해 깊이 살펴보는 것보다 중독의 공통 증상과 원인을 살펴봄으로 중독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함께 중독에서 해방되기 원하는 사람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일반적으로 중독은 관계성의 문제라 말할 수 있다. 정상적인 관계와는 달리 중독적 관계는 일방적이고 파괴적인 관계가 대부분이다.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의 경우 알코올 남용과 같은 습관적인 알코올 섭취(habituation)는 알코올과의 일방적 관계를 만든다. 더 나아가 내성(tolerance)이 생기고 알코올 의존 상태가 되면 파괴적 관계로 이어진다. 결국 중독이 심해지면 육체적 기능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 가정과 직장, 사회 공동체와 단절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독의 문제를 교회 또는 기독교 상담에서 어떻게 접근 할 수 있을까? 첫째로 중독은
대한민국 헌법에 의거 북한 주민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대한민국 정부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모으고 북한 주민들을 처지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인권운동가들은 말하고 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 굳히기 작전이 시작되면서 주민들의 고통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정치범 수용소를 더 많이 운영하고 국제 지원을 가로채고 탈북자들을 구타 고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한 수잔 숄티 여사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 및 인권 학살은 (한반도 문제만이 아니라) 유대인 대학살에 비등한 국제적 인권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에 있는 한인 교회들은 평양에 가짜 교회를 짓고 북한 정부를 돕는 데 돈을 지원하지 말고 탈북자 NGO나 한국의 14개 탈북자교회를 지원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진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북한이 개방됐을 때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예비하기 위해 탈북자 교회들과 북한으로 방송되는 라디오 매체 등을 지원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수백 명씩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하루에도 몇 번 씩 좌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예수님 주위에, 한 사람이 군중들 속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한 눈은 맞아서 붓고 시퍼렇게 멍들어 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눈은 벌겋지만, 크게 눈을 뜨고 그를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강철이라도 뚫을 듯한 눈빛입니다. 그는 움칫합니다. 그러나 따뜻한 눈빛입니다. 맑고도 부드러운 눈빛! 십자가에서 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찌릅니다. 그는 십자가 바로 밑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나아갑니다. 무릎을 꿇고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합니다. 겉옷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이젠 알몸입니다. 죄 짓고발가벗겨진 모습처럼, 갓난아이로 새 출발을 할 것처럼, 벌거벗은 몸에 홑이불을 두르고 있다가 알몸으로 도망쳤던 마가가 마치 다시 돌아온 것처럼! 그의 몸 위에, 십자가의 핏방울이 떨어집니다. 그의 머리에, 어깨에, 등짝에…. 머리를 쳐들어 십자가를 올려다봅니다. 얼굴에 핏방울이 떨어집니다. 끈적끈적하고 피 비린내 나는 묘한 촉감과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뚝 뚝 뚝……쉼 없이 얼굴에 떨어집니다. 머리에도 얼굴에도 핏자국 범벅입니다. 눈 위에도, 눈썹에도 핏방울이 걸려서 앞이 어른거립니다.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있습니다. 강도, 살인마
지금 우리나라는 학교 폭력(자살)·청소년 비행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대검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총 범죄에서 청소년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이 6.5%였으나 7.8%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으며 범죄의 양상도 갈수록 강력화·흉폭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음란물을 접하고 있습니다. 실제 최근의 모 기관에서는 90%가 컴퓨터를 통해 음란물을 접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이미 우리나라 20~30대 이혼부부의 사유는 부부간의 성문제가 1순위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때문에 이 타락하고 음란한 시대에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건강과 경건한 신앙을 유지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대교인들이 영성을 회복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2012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에서는 “영성”이라는 용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교계의 여러 곳에서 “영성을 회복하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으며 “영성” 회복이 이 사회의 유해한 환경 속에서 영적 정신으로 병들어가고 있는 학교 청소년 그리스도인들을 치유하는데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영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영성을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이 영성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중에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기하고 있는 말은 진실 혹은 거짓말을 해도 별로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특히 그리스도인들도 예외일 수는 없는 것 같다. 모든 말은 선한 말이든 악한 말이든 어느 쪽에서 나왔느냐, 선하신 하나님 쪽에서 나왔느냐, 아니면 악한 마귀 족에서 나왔느냐로 그 선악이 구분된다할 것이다. 그래서 신앙인들의 비리와 범죄에 대해 질책(단죄)하는 말들도 하나님 쪽에서 나온 말이냐, 사단 쪽에서 나온 말이냐에 따라 그 의도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와 교인들의 비리를 지적하는 말과 안티 기독인들이 교회와 교인들의 비리를 들추는 말은 외형적으로는 동일하나, 내면적으로 하늘과 땅 차이보다 크며, 죽음과 생명의 차이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장로들이 하나님께 저지른 실수와 비리만큼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들의 비리와 범죄는 사람들의 대해서는 그리 크지 않지만, 예수님의 언행에다 비교해 보면 낮 뜨거울 정도로 창피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에게 “예수님 보시기에 정직하여 하나님의 이름에 누
그 어느 때보다 국가를 위해 기도해야 할 이때, 나라와 민족, 경제 번영, 국민화합 그리고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제44회 국가조찬기도회가 지난 3월8일 개최됐다.국가조찬기도회는 디모데전서 2장에 근거하여 기도생활의 권면을 실천하는 각 개인의 신앙의 표현이다. 기독인들은 직분과 사명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무엇보다도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을 위해 간구와 기도와 도고(중보기도)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이다. 특히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대통령과 국가지도자 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백성들이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함이다. 권세를 갖고 있는 사람은 영향력이 있어 상황에 따라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도 하고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자신이 가진 권세와 힘과 영향력이 참으로 아름답게 행사되도록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국가지도자를 향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국가조찬기도회는 자연인에 대한 기도가 아니라 대통령직과 국가지도자에게 부여된 그 직을 위한 기도회로 그 직을 수행하는 국가지도자를 통해 국민에게 행복과 안정 평안을 주도록 그 사명을 잘 감당 할 수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얼마 전 아내가 산부인과에 다녀왔는데 병원에 대기하고 있던 부부들이 대화보다는 스마트폰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요즘은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는 장난감도 스마트폰이요 ,가장 먼저 접하는 영상매체도 TV나 DVD보다는 스마트폰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마도 생활에 빠른 편리함을 가져다주고 지친 생활을 간편하게 탈출하게 해 주는 냉수 한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으니 스마트폰이야말로 현대인의 필수품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나 편리함을 제공해 주는 순기능과는 달리 중독이라는 역기능도 있다.스마트폰이 인간의 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언론에 여러 번 보도된 바 있다.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에 의한 중독이 인터넷 중독보다 더 심각하다는 보고도 있다. 우선 TV나 게임에 매달리는 뇌는 활동하지 않는다. 영상에 몰입한 뇌는 활동이 저하 될 뿐만 아니라 심각한 경우 자폐상태가 된다.즉 마치 자폐아처럼 외부세계를 차단하고 자기 세계에 갇히게 된다는 의미다. 상대방의 마음이나 입장은 상관없이 자기 세계에 입력된 영상정보에 따라 게임이나 영상을 모방
대한민국은 과거에나 지금이나 무질서 속에 갇혀있다. 그것은 4.11 총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과거 지난날의 사회주의자들을 발본색원하지 못한 후유증이라고 볼 수 있다. 그 한 예를 보면 북한 탈북자 북송 저지 국제여론 형성을 위해 우리 국회의원들이 제네바의 유엔 인권사회를 방문한 이후 북송문제에 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이 인류애를 외치며 탈북자 북송 반대 집회를 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 제주 해군 기지와 이어도에 관해서 국내 좌파들이 손가락 걸고 약속이나 한 듯 한결같이 “중국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국 이래 남방해역에서는 그 어떤 분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한국 해군의 몸집 불리기를 위한 이런 무모한 도전은 중국을 자극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처럼 들리는 이 말은 통합진보당의 심상정 공동대표가 한 집회에서 한 것이다.중국이 ‘도련(Island Chain)’ 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제주 앞바다는 물론 동아시아 인근을 자신의 해역화 하려는 사실에도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듣지도 않으려고 한다. 중국 정부의 장관급 인사가 관영
행진하는(march) 3월(March)이다. 2월이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졸업을 하는 달이라면 3월은 본격적으로 출발선에서 한발을 내딛는 달이다.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큰아이를 둔 여집사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기도를 청한다. 집사님이 기도하면 된다고 해도 부득불 ‘안수해주십사’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한손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한손으로 머리에 얹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기도했다. 부모의 염려가 조금 적어지기를 그리고 아이의 마음에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보다 기대감이 더 많아지기를…. 오늘 새벽에는 오랜 청년실업의 시간을 보내고 그 어렵다는 은행에 들어간 아들이 마음을 잘 잡고 근무하기를 눈물겹게 기도하는 집사님의 기도소리가 들린다. 그간의 마음 저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유난히 조직생활을 적응하지 못하는 자녀가 못내 불안하신 모양이다. 3월 며칠에 퇴임식을 하게 됐노라고 말씀하시면서 눈만 뜨면 가는 것으로 알고, 집에 있는 숟가락은 몰라도 직장의 구석구석에 있는 묘목하나까지 살피면서 다녔던 일터를 꽃피는 3월에 그만두는 것이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는 남자성도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누군가는 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고 또 누군가는 마치고 이렇게 저렇게 3월은 나와
1977년 4월 14일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 본부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18-7)에 사무실을 두고 (침례회보) 명칭으로 (등록번호 라 2221호) 문화공보부에 등록했다. 1977년 5월 7일 박경배 목사를 발행인, 김용도 목사를 편집인으로 해 복간 제1호를 발행했다. 침례신문의 근간(根幹)은 1955년 8월 19일 서울시 중구 충무로5가 55번지에 사무실을 두고 ‘침례회보’ 명칭으로 제3종 우편물 인가를 얻어 기독교한국침례회 기관지로 발간하게 됐다. 시작부터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경영에 많은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 국민들의 삶이 말할 수 없이 힘들었기 때문에 당시의 교회들도 경제적인 자립할 수 있는 교회들이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위기를 맞으면서도 침례회보는 매월 발간됐다. 그러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1970년 7월1일 169호 발간을 끝으로 자진 폐간하게 됐다. 이렇게 7년간의 공백기를 끝내고 1977년 5월 7일 복간 제1호를 발행해 이번 주 발행되는 신문이 복간 1,000호를 맞이하게 됐다. 침례신문의 발전을 위해 1979년 5월 이사회를 구성하고 제1대 이사장 겸 사장에 송종호 안수 집사가 취임했다.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