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약1:25)“율법은 멍에”다 사람으로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닌 억압과 속박과 굴레다. 율법이 제공하는 자유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율법인 자유의 법과 비교할 때 그러하고 율법의 끝을 볼 때 심판과 저주와 형벌뿐인 결과를 생각 할 때 그러하다.(골2:14~15, 갈3:13)율법에는 용서와 자비와 긍휼이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러므로 속죄와 희생의 피가 필요하다.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자유는 듣고 잊어버림이 아니라 실행 하게하는 법이다.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정결하고 깨끗한 경건이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대속의 피와 생명을 희생시키셨음을 자신의 은혜(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된 새 계명이요 자유의 율법인 것이다(히8:10, 10:16, 렘31:33). 옛 계명이 돌과 양피지에 기록되었다면 몰랐었다고 회피 할 수 있었겠으나 새 계명은 심비에 기록됐으니 핑계할 수 없다. 즉 어떤 면으로는 더욱 엄격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웃 사랑의 최고한 법“은 긍휼(사랑)을 행하는 법이다.(약2:8) 긍휼은 심판을 이기
3. 확대된 교사 네트워크주일학교 교사들의 네트워크를 넘어서는 확대된 교사 네트워크는 교사의 네트워크에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확대된 교사 네트워크란 교회학교 교사들의 범위를 확대한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확대된 교사란 교회학교 교사와 함께 사역할 수 있는 사람들로 학생과 부모 그리고 담당 사역자를 포함한다. 확대된 교사 네트워크의 구조를 블랙(Black)은 청소년부의 예를 들어 아래의 그림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청소년부서가 아닌 경우는 각 부서에 맞게 변형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 학교의 교사와도 네트워클 제안하고 싶다.이런 모델의 사역이 필요한 이유는 첫째로 교사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학생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만나는 교사와 학생은 만나는 시간이 매우 한정되어 있다. 교회에서 교사와 학생이 만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매주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만나고 특별행사나 수련회 기간 동안 며칠 마날 수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닌가? 그렇게 만나서는 학생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학생의 신앙을 지도하는 책임을 맡은 자로서 서로 피상적인 이야기만 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은 복지부동형으로 일이나 문제가 생기면 덮어두고 , 또 어떤 사람은 정면으로 도전하고 문제의 해결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복지부동형의 사람들은 일이나 문제를 덮어두고 쉽게,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이다. 본인에게 어떤 변화와 문제가 닥쳤을 때 변화하고 개선하려는 모습보다는 그냥 덮고 지금처럼 편하게 가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시키는 일 외에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부러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도 없고, 일거리를 만들어서 골치 아플 필요도 없고, 대충 편하게 살자는 생각이다. 바로 이런 생각들이 자신과 사회를 발전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나 사회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하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유형은 자기 위치만을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자신만을 생각한다. 자신의 위치만을 생각하다보니 동료나 이웃을 위해 배려하는 여유나 아량이 부족하다. 때로는 편법을 쓰기도 하고, 속여서라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만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단점과 허물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해 주변의 사람과 사회를 병들게 한다. 자신의 모습을 냉정히
남을 배려하고 언행을 조심하는 사람이라면 상대에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치졸한 잘못이나 철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좋은 사람도 화를 낸다. 상사가 실적을 가로채거나 룸메이트가 설거지를 전부 떠맡기거나, 파티에 간 남편이 한 눈을 파는 등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좋은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허나 이웃에게 화를 내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사생활을 위협하는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대인관계는 물론이고, 직장생활과 건강까지도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화는 꾹 참아야 한다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속을 긁는 이웃에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데, 우선 화를 내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점부터 이해해야 한다.화를 내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착해야 한다는 선입견으로 분노를 보는 탓에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 그렇다고 분노를 억누르면 안 되는 것일까? 그건 위선자로 몰릴수도 있고, 증오가 싹트며, 복수심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답게 화를
죽어도 좋을 만큼 가슴 뛰게 하는 그 곳, 오랜만에 가도 시간의 거리를 금새 뛰어넘는 곳, 그 곳에서의 일들이 생생히 기억나서 빙그레 미소 짓게 하고,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며 다시 돌아가 보고 싶은 그 곳, 또는 가 볼 수 없어 꿈속에서만 상상의 나래에서만 들여다보는 그 곳, 사랑하는 사람하고는 꼭 가보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그 곳, 생애 마지막 순간에도 가보고 싶은 곳 그곳을 일컫는 말이 ‘soul place(영혼의 안식처)’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한 단어이고, 두렵기도 하고, 가장 기대가 되는, 설렘이 동반되는 단어이다. 나에게 ‘soul place’는 27년을 살던 나의 고향집과, 아내와 같이 갔고 지금도 가곤 하는 그 은밀한 곳 그리고 은혜로 들어갈 담대함을 얻은 아버지의 집이 생각난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지난해와는 다르게 살아보리라고 마음먹고 야심차게 하는 새해액션 중의 하나가 다이어리 정리였다. 가족의 생일은 안 적어도 친구들의 생일을 옮겨 적으면서 동그라미 해놓기도 하고, 하루에 할 일을 나름 알차게 적어놓고 보기만 해도 흐뭇해 하다가 작심삼일로 끝났던, 그러면서도 꼭 옮겨 적은 것 중에 ‘어른이 되면 가보고 싶은 곳’의 목록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교회의 기초요 머리되심을 교훈하셨다. 또한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고 말할 것을 주시리라 (마1:19~20)하셨다. 그 나타난 증거를 보자.1)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사도 베드로의 설교는 선지자 요엘서를 시작으로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역사와 선지자, 예수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원의 일관된 그의 외침은 성령의 역사도 역사이지만 “주께로부터 사사”받은 성경을 관통하는 실력과 그의 성령 충만 한 현란한 설교는 대적 자들의 입을 막고 회개시키고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2) 사도행전3장에 베드로의 앉은뱅이 치료 후에 행한 설교는 아브라함을 필두로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것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다고 말하며 모세의 글과 말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너희 형제 가운데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그 말을 듣지 않으면 백성 중에 멸망 받으리라”(신18:15)하고 사무엘과 모든 선지자를 거론하는 예수께 사사 받은 성경적 지식을 담대히 선포 하였으며 대적자들로 반론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강력한 설교였
프로야구선수 출신 유명인 조성민(40)씨의 자살을 계기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거리낌 없이 ‘자살 스토리’를 활용하는 방송 문화의 폐해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지난 달 23일 MBC주말 드라마 ‘메이퀸’은 악행을 일삼던 인물 장도현(이덕화)의 자살로 드라마를 끝냈다.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오랜 기간 악행을 저지르던 장도현은 자기 삶을 뉘우치며 바다로 투신자살한다. 프로야구 출신 조씨는 올해 마흔 살이다. 1990년대 고교 야구 명투수로 이름을 날리다 일본 프로야구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전 선수로 활약했었다.그러나 조씨는 일반 사람들에겐 2008년 자살한 연예계 톱스타 최진실씨의 전 남편으로 더 익숙한 인물이다. 최씨의 동생으로 누나와 같이 연예계에서 활동하던 최진영씨도 2010년 자살했다. 불과 4년 사이에 한때 한 가족으로 기대고 살던 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이다. 조씨와 조씨를 둘러싼 인물들의 비극은 자살 문제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 모두의 곁으로 다가서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우리나라의 자살 관련 통계를 보면 등골이 서늘할 정도다. 하루 평균42.6명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한 해 자살자가 1만5566명(
저는 포항지방회 소속 신평교회 이종훈 원로목사입니다. 지난 2년전 자전거 운동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지금까지 어려움의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자녀들 외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늘 외롭고 눈물 겨울 때가 많습니다.성탄절을 맞아도 우리 내외는 눈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날마다 가정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런데 성탄절 다음날인 12월 26일 “택배요”하고 크고 묵직한 박스가 온 것입니다. 주소를 확인하고 뜯어보니 10가지가 넘는 선물들이 꽉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낸 사람의 주소가 적힌대로 전화를 했습니다. 강동지방회 반석제일교회 이유진 목사님이었습니다.반석제일교회 이유진 목사님과 성도들이 원로목사들을 위해 성탄 선물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 많은 선물들을 위해 물질과 정성이 많이 들었을텐데 너무 감사합니다.정말로 우리 사랑하는 침례교 가족들에게 반석제일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들의 따뜻한 사랑을 알리고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침례교 가족들!새로운 해에는 주님 은혜가 넘치고 넘치기를 기도합니다.이종훈 원로목사 / 포항지방 신평교회
2012년 한해가 지나고 2013년 새로운 한해를 맞이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난해에 대하여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반성과 새해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는 “창조”가 있고 “종말”이 있는 직선적인 역사관 같으나 구원이라는 부활의 새 생명을 가질 수 있는 드라마틱한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관은 우주에서 변화무쌍하게 일어나는 다양성과 융통성 속에서 대전제가 있다. 대전제 앞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성경의 진리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표준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신의 신앙 고백과는 상이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가? 깊이 분석하고 관찰해보면 그것은 비성경적인 현대 사상과 불 신앙적이고 세속화된 인본주의 운동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한하고 인격적인 하나님께 나의 삶을 의탁해 매우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검증된 삶으로 나를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정신적이고 지식적인 우리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다. 우리에게 부여된 2013년의 모든 영역에서 최선
겨울로 들어서자 연일 하얀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져 온 세상이 은빛설원으로 변하여 어디에서든지 아름다운 아기 예수님 기다리는 12월의 무대가 됐다. 올해도 거리와 지하철 역사 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에 아름다운 기부자들의 따뜻한 소식들이 연일 보도 되고 자선냄비를 뜨겁게 하는 ‘이름없는 천사’의 선행들은 우리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느끼게 했다. 또한 무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대한민국의 ‘여성 리더’는 첫눈이 그대로 잔설로 남아있는 겨울산 푸르른 소나무의 기상의 오롯함처럼 ‘제18대 대통령 선거’라는 큰일을 치려낸 대한민국은 새로운 활기로 넘쳐나고 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세계와 우리나라는 또 한 번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에 북한의 눈덮힌 평양시내 대극장 앞에서 젊은이들이 춤을 췄다는 자축 보도와 북한 핵무장 진전 우려에 대한 ‘상응 대가 경고’와 심각한 불쾌감을 표시하는 각국의 표정들이 추운 겨울을 더욱 꽁꽁 얼어붙게 만들기도 했다.첫 여성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많은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각가지의 염원도 포함되어 희망을 갖고 기대하는 바도 클것이라 본다. 선거일정이 발표된 후에 새벽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경외(레19
경청기도는 하나님께 주목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예수님 발아래 앉은 마리아는 경청기도의 산 그림이다. 그녀는 “꼭 필요한 것 한 가지에 전심을 바쳤다” 하나님 앞에 잠잠해지는 법을 배우기란 어려운 일이므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연습하면 풍성해 지고 충만해진다. ‘경청기도’란 짜릿한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임재를 누리는 데 주안점이 있다. 경청기도 중에 우리 하나님의 너그러운 성품, 즉 우리를 절대 포기하시지 않는 사랑, 억울한 상황을 뒤집으시는 능력, 능력을 자비로 조절하시는 온유하심을 묵상할 수 있다.하나님의 후하심을 오래 묵상할 경우, 우리도 그 성품을 지니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하나님을 흠모할수록 우리도 욕심을 버리고 후해지고 싶고, 기회가 닥치면 움켜쥐기보다 베풀 가능성이 높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란 바로 그런 의미이다. 나는 내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음과 그분이 나를 사랑하심을 안다. 하나님이 나를 말할 수 없이 귀히 여기심을 나는 안다. 이보다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이런 기도로 하나님을 맛보아 알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하나님께 그런 갈급함이 있으면 그
2012년도 몇 일 안 남기고 있다. 한 해가 지나가는 마지막 날에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시작할 때 가졌던 아름다운 희망과 꿈, 기대가 성취된 것보다는 미완성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게 된다.그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희망과 꿈, 기대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회개를 통해 대청소를 해야만 한다. 한해를 살아오면서 부정적인 생각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 왔었다. 언제나 삶의 모자라는 것과 어두운 면을 찾아서 강조하며 살아온 그리스도인들이 아닌가?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꼬투리를 잡는다.진실로 밝고 맑고 환하고 긍정적인 마음이 되지 못하고 무언지 모르게 언제나 어두운 점을 찾고 모자라는 점을 찾고 못된 점을 찾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은 인격이 모두다 부정적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 해 동안 너무나 소극적으로 살아왔다. 발전과 향상을 저항하는 삶이 소극적이다. 적극적인 사람은 모험적이고, 발전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소극적인 사람은 언제나 나 홀로 전통주의적이며 안정적이고 보수적으로 살아간다. 그러기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 그리고 하나
3) 초실절(레23:11)안식일 이튿날에 시작되는 초실절은 “제 팔일”로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첫 열매되심을 정확히 “안식 후 첫날” 부활해 일어나실 것을 예시하심이다(레23:11). 이 날은 안식일이 아니다 “안식 후 첫날”이다(고전15:20). 예언되고 성취된 날 이날이 “주 예수의 날”이다. “주일”, “주의 날”(계1:10) 부활의 날이다.4) 오순절(레23:15~16)초실절의 날부터 칠 안식일의 수효를 세어서(7x7=49) “이튿날”(제 팔일)까지 합해 “오십일”을 채운 날이다. 즉 “하루“를 더한 이 “주의 날”을 합해야 오순절이 되게 하심은(안식일이 아님) 예수 그리스도로 또 다른 보혜사를 이 땅에 보내심의 언약이 완수 되게 하신 “더하여짐”으로 완성되는 “하루“가 “주의 날“이다(레23:15-16, 요14:16~21, 행1:4~5, 2:1~4). 5) 초막절(레23:34~38)칠일동안 화제를 드리고 “제 팔일“에도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헌물 (외)에 낙헌 예물 (외)에 드리는 것이라(안식일이 절대 아님을 밝힘). 왜 이날을 “대회” “성회”라 했는가?(레23:34~38) 초막절은 한해 모든 절기와 행
“고르반”의 예(막7:1~23)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라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을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하면 그만이라 하니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하느니라(막7:1~14)고 기록되어 있다.이혼증서를 주어 아내를 내어버릴 수 있다던 당시 바리새인들의 가르침(막10:1~11)도 사람의 교훈으로 예수께 질타를 받았다.그들은 열심이 있어서 “두루 다니며 교인을 삼아 자기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고 천국 문 앞에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하는 자도 못 들어가게 한다”고 책망하셨다.(마23:13~15)복음의 광채를 가리는 수건과 사탄의 책략(고후3:6~17)사도바울의 율법관을 한마디로 축약한 말은 “의문(율법)”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 하면서 돌에 써서 죽게 하는 율법도 영광이 있어 모세의 얼굴에 빛이 났으나 장차 없어질 것의 영광에 주목치 않게 하려 하여 수건을 그 얼굴에 씀 같으나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 하냐 그러나 저
▶본 기고는 본사의 편집방향과 다를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 관한 모든 법적책임은 기고자에게 있음을 알립니다.율법과 복음의 관계 옛 법과 새 법의 관계하나님 말씀과 사람의 교훈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사탄의 전략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것인가? 엘렌 화이트를 따를 것인가?율법주의를 이용한 사탄의 계략1) 사탄도 성경을 이용한다.(마4:1~11)과거 사탄의 전략은 공포와 위협과 폭력과 파괴로 일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했으나 그 전략이 이제는 많이 변화되고 세련되게 발전하여 예수님을 속이고 넘어지게 하고자 사용했던 변조된 성경 말씀의 방법들로 바뀌었다.(마4:1~11)2) 율법을 준수하라는 사탄의 계략갈라디아교회를 유린한 방법 (갈1:7~9)바울은 “우리가 전한 복음 외에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다시 말하노니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고 거듭 못을 박으며 다른 복음은 없다고 말하면서 다만 어떤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너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너희에게 율법의 굴레를 씌워 종을 삼고자 하는데 이 같은 자들은 너희를 이익의 재료로 삼으려 한다고 했다.(갈1:7~9, 2:4 벧후 2:1~3)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은 구약의 율법을 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