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필리핀 한인 선교의 새로운 과제 필리핀 한인 선교는 글로벌적 21세기 선교틀에 걸맞게 새로운 역할을 인식하고 새 옷을 입을 필요를 느끼고 있다. 필리핀은 눈총 받던 레드오션에서 미래 선교의 전략 요충지와 탁월한 세계 선교 자원 보유국으로 재인식되어 블루오션이 됐다. 더불어 다음과 같은 선교적 과제들을 가지고 있다. 1) 하드웨어적, 물질적 시혜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적인 본질에 주력해야 한다. 본질은 복음 전파와 제자 훈련을 통해 사람 세우는 일이다. - 건물보다 사람을 세우는 제자 양육 및 센딩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 본질적 목회의 건강한 시스템을 통해 예배, 교육, 전도, 선교, 치유 및 봉사를 강화하고 우수한 신앙 및 신학 교재와 커리큘럼 개발에 힘써야 한다. - 차세대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 선교에 무게 중심이 이동하며 이들을 제자와 지도자로 육성해야 한다. - 현지 교회 지도자들인 목회자 교사 리더 등의 교육 및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 2) 서민 빈민층 선교를 넘어서 필리핀 정재계 및 사회 주도층인 상류 엘리트 계층과 중산층 가문들의 복음전도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3) 단기 선교의 의미와 효율성이 깊이 연구돼야 한다. - 단기선교의 패러다임의
10. 세계 선교의 허브 필리핀 필리핀복음주의교회협의회(PCEC)는 2011년 필리핀 기독교인을 1100만명이라고 발표했다. 2014년 필리핀 통계청은 로마가톨릭 83%, 개신교 9%, 이슬람 5% 및 기타로 수치를 제공하고 있다. 개신교단 중에서 순복음교회 계통의 교회들이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활동적인 필리피노들의 정서에 부합해 더 많이 성장하고 있다. 미래 세계 선교가 필리핀으로 통하기 위해서 아래의 부분들이 고려돼야 한다. · 사람을 키우는 제자 양육 사역 집중함이 요청된다. · 평균 연령이 30대인 필리핀의 다음 세대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을 기독 지도자로 집중적, 지속적인 육성해야 한다. 인재양성 프로그램이나 장학생 제도 등을 통해 국내와 해외 선교사로 육성한다. · 목회자와 평신도 교육 및 훈련에 집중하고 특히 목회자 재교육 및 연장 교육을 통해 그들이 갖는 신학 부재를 해결한다. 더 나아가 필리핀 민족 복음화를 감당하도록 비전 제시와 훈련 및 코칭을 한다. 평신도가 재생산이 가능하도록 QT나 성경공부 교리 공부반 등을 통해 훈련한다. V. 필리핀·한국선교연합회(필·한선협) 역사와 역할, 새로운 과제 1. 필·한선협의 역사 필·한선협은 1974년 4
3. 필리핀 한선협 50년 주년 역사 편찬, (은퇴)선교사 후생복지 연구, 선교사 묘지 1) 필리핀 한선협 50주년 역사 편찬 필리핀 한선협 선교 50주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간의 선교에 대한 평가와 피드백을 통해 필리핀 한선협의 미래 선교에 대한 방향성과 전망을 제시할 필요를 위해 50년간의 선교 역사 편찬이 필요하다. 2) (은퇴 및 시니어) 선교사의 후생 복지 선교사의 후생 복지에 대한 준비와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은퇴 및 시니어 선교사의 후생복지와 예우는 시급한 필요를 갖는다. 현재 늘어나고 있는 선교 1세대의 은퇴와 더불어 은퇴 선교사의 후생복지와 정체성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케어가 필요하다. 시니어 선교사에 대한 의료 서비스 및 예우 서비스와 더불어 인간이자 선교사로의 존엄성을 유지하도록 주니어 선교사들의 도울 필요가 있다. 3) 선교사 묘지 한국의 양화진, 광주 양림동, 전주 선교사 묘원같은 선교사 묘지터의 조성은 현재 한인 선교사의 지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후대에 물려줄 유산이 될 것이다. 4. MK 선교 자원화 MK들의 교육 및 신앙적 케어와 이들의 연대를 통한 선교, 창업 및 취업을 통해 전문인 선교사로서 훈련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III. 필리핀 한인 선교 1. 한인 선교와 형태 초기 한국 선교사들이 필리핀에 들어왔을 때는 DAWN이란 선교 운동이 개척교회를 필리핀 전역에 펼치기 시작한 때이다. 이에 맞춰 한인 선교사들은 개척교회 및 신학교 세우기에 열심을 다했다. 이러한 개척 교회 설립 운동은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필리핀 현지 목회자들의 요청에 의해 새로운 사역으로 전환을 하게 된다. 이후 한인 선교사들은 NGO, 유치원 초중고학교 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그 외에도 음악사역, 문화사역, 체육선교, 군경 선교 사역 등으로 확대됐다. 현재 필리핀 한인 선교사의 사역 형태와 범위는 교회 건축, 신학교, 현지 학교 교사, 초중고대학교, 현지 주일 학교 교사 훈련, 현지 교회 협력, 피딩(급식), 고아원, 각종 구제, 장학생, 기관(경찰, 교도소, 군등) 제자 훈련, 캠퍼스, 어린이 선교, 기도원, 미디어, 컴퓨터, 각종 문화 사역(한글 교육, 작은 도서관, 방과후 교실 등), 직업 훈련원, 부족 선교, 문서 사역, 의료 사역, 무슬림 및 제3세계 권 생활 훈련 사역, 고아원, 농장, 한인 디아스포라, 코피노, 한센병 사역 등으로 아주 다양하다. 필리핀 한인 선교사들은 한국인 특유의 기질과
필리핀의 한인 선교 역사는 마닐라 한인연합교회가 시작된 1974년 4월 10일 부활절을 기점으로 본다면 5년 후 2,024년에는 50년의 역사에 이른다. 필리핀 선교는 이제 중장년의 시기에 접어 들었고 필리핀 복음화율도 이제 거의 10%선에 육박해 자생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필리핀은 위험하고 못사는 나라로, 그동안 일부 필리핀 한인 선교사들의 부적절한 문제로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필리핀과 필리피노에 대한 선교는 세계 선교의 영적인 측면에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런 부정적인 인식 속에서도 연간 120만명의 관광객, 타국에 비해 월등히 많은 단기 선교팀, 그리고 10만의 교민들은 한국(교회)의 필리핀에 대한 애증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리핀 선교는 여전히 중요하고 미래 선교의 허브적 역할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 본 글은 50년 가까운 필리핀 한인 선교의 역사를 세세히 다룰 수 없는 한계 속에서도 5장에 걸쳐 필리핀 선교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룬다. 1장은 필리핀 개요: 지정학적인 위치 및 경제, 2장은 필리핀 초기 선교 역사, 3장은 주 필리핀 한인 선교, 4장은 필리핀 선교의 미래, 5장은 필리핀한국선교
가나중앙지방회 글로벌비전교회(김홍빈 목사)는 지난 8월 9~15일 말레이시아로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이 글은 말레이시아 단기선교에 동참한 서은선 자매의 간증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말레이시아 선교를 다녀온 서은선입니다. 처음에는 선교에 대한 기대감이 잘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선교여행의 메인 사역 중 하나였던 이란여성모임 사역을 준비하면서 기대감도 생기고 그 분들께 진짜 위로를 전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날짜가 다가올수록 팀원들의 마음과 저의 마음에도 불안한 마음보다는 하나님께서 일해주실 것에 대한 마음으로 가게 해주셨습니다.그 결과 말레이시아의 선교여행은 저에게 여태까지 갔던 많은 해외 선교여행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선교여행이 됐습니다. 하나님은 저희의 첫 사역이었던 이란 여성 모임에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실 저희가 준비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란 여성분들에게 마스크팩을 해드리는 것이었는데 현지인들 특성상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와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처음시간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빈틈없이 잘 채워주셨습니다. 마스크팩을 해드리는 대신 어깨를 주물러드리고 손마사지를…
다윗의 씻을 수 없는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나타났고, 뒤이어 베냐민 출신 세바도 반기를 들었다. 다윗에게는 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온갖 수치와 모욕, 조롱이 뒤따랐다. 그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인고의 날들이었을 것이다. 사무엘하 21장을 보면, 그러한 혼란정국이 수습되고 다윗의 이스라엘 왕국이 다시금 안정을 되찾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었고 3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다윗은 다시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고, 백성들은 다윗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끝나지 않았다고 여기며 그를 향한 비난과 원성이 되살아났을 것이다. 비통한 심정으로 다윗이 주님께 나아가 기근의 원인을 구할 때, 3년이 지나서야 하나님은 사울이 흘린 피로 인한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다윗은 사울에게 죽임을 당한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그들의 요구대로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을 내어주고 기브온인들은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에서 그 일곱 명을 목매달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 바로 비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근의 원인을 알고 그 문제를 수습했음에도 여전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때 등장하는 한 여인이 있다. 바로
“스포츠 정신과 기사도에 입각한 경기는 인간의 자질을 최고로 향상시킵니다. 그 이해와 존중 안에서, 선수들을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단합됩니다. 그것은 또한 평화의 정신 안에서 국가들을 결속시키는 것을 돕습니다. 그것이 올림픽 성화가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이 연설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개회사 중에 한 내용입니다. 평화와 스포츠 정신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녹아져 있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이 연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는 아직까지도 전 세계인들을 소름 돋게 만드는 세기의 독재자 히틀러였습니다. 연설문의 작성자는 나치의 선전부장 괴벨스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때 히틀러는 ‘평화의 사자’로서 한껏 쇼맨십을 발휘하며 우리민족의 자랑인 손기정 선수와도 악수를 했습니다. 히틀러의 거짓평화공세에 많은 이들이 “우리가 히틀러를 오해했다”라고 안심을 했지만 결국 3년 후에 저 끔찍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철저하게 나치의 기만술에 이용됐던 ‘베를린 올림픽’, 세계올림픽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베를린 올림픽’은 거짓평화공세의 장으로 스포츠가 이용될 수 있다는 교훈을 전 세계인들에게 뚜렷이 남겨줬던 것입니다.
마식령스키장은 평창올림픽과 관련해서 가장 큰 핫 이슈이다. 남북 스키선수들의 공동훈련(1.31~2.1)장소이자, 북한에서 김정은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체육관광명승지’이다. 북한 노동신문에서도 마식령에 대해 계속해서 선전하고 있고 심지어는 영상홍보(1월 26일)까지 올려놓고 있다. 27일자는 “사랑넘치는 마식령”이란 제목으로 마식령 스키장에 대해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물론, 방점은 김정은 우상화이고 인민애가 남다른 ‘온정의 지도자’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 인민에게 무엇을 한 가지 주어도 세상에서 제일 좋고 훌륭한 것을 마련해 주시려는 것이 우리 원수님의 뜻이다. 인민들에게 문명하고 행복한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기 위해 마음 쓰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께서는 눈이 많이 내리고 스키주로를 형성하는데 적합한 지대인 마식령에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스키장을 건설할 것을 직접 발기하시고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었다.” “마식령스키장건설의 나날 공사장을 여러 차례 찾으시어 건설자들에게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시고 공사를 최단 기간 내에 다그쳐 끝낼 수 있는 대책들을 세워주시면서 인민들에게 흠 잡을데 없는 훌륭한 스키장을 안겨주시려 우리 원수님께서 바치신
평창동계올림픽 북한선수단 및 응원단 참여문제로 한국교회 안에서는 두 가지 주장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주 북한을 위해 중보하는 대표적인 단체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들렀을 때, 그 단체와 동역하는 한 선교사와 개인적으로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됐다. 그는 “주님이 큰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저에게만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 큰 위기가 닥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지금 금식기도하고 있습니다.”라면서 평창올림픽에 대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반면, 평화의 슬로건을 내세운 단체 리더는 “평창 땅을 통해 평화의 대로가 열리는 환상을 주님이 2010년대에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끊임없이 기도했고, 그 응답의 결과가 평창올림픽입니다. 평창은 ‘평화’가 ‘창성한다’라는 의미입니다.”라고 평창올림픽 북한참여에 대해 환영을 넘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주님의 뜻, 성령의 감동(영감), 예언들을 앞세운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은 우리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물론, 어느 한 쪽을 취한 이들은 바라보는 시선이 분명하기에 마음을 쏟을 수 있어 한결 홀가분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성도들은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를 되내이며 마
이번 주에 케네스 배 선교사가 이끄는 북한관련 국제NGO단체 창립식에 다녀왔다. 캐네스 배 선교사는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로 2012년 11월 종교활동을 통한 정부 전복혐의로 북한에 체포되어 2013년 4월 국가전복음모죄로 노동교화형 15년형을 선고받은 이후, 735일간 형을 살다가 2014년 11월 9일에 풀려나 현재 국내에서 북한인권과 통일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얼마 전, 배 선교사에 대한 영상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은 터라, 조금 흥분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동이 밀려왔고 필자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 것들이 있었다. 첫째는, 외국인 동역자들이 참여했는데, 어떤 선교사 가정은 배 선교사가 체포되기 전부터 중국에서 함께 했던 이들로 그가 체포되고 난 후에 다른 동역자들은 다 떠났으나 그 선교사 가정은 그곳을 지켰다는 것이다. 둘째는, 배 선교사의 멘토인 듯싶은 노년의 어느 한 목사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 축도할 때 잠깐 모습을 비췄지만 그 기도 속에 주님을 향한, 북한영혼들을 향한, 배 선교사에 대한 애절함이 절절히 묻어나왔다. 이미 고인이 됐지만, 필자의 멘토였던 임 선교사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셋째는, 평창 동계올
며칠 전 우연히, 책 한권을 만나게 됐다.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보고였다. 원산지역에서 박해를 당한 32인의 침례교 지도자들에 대한 정보가 담긴 책이다. 책의 저자가 32인에는 속하지 않지만 함께 구속되었던 강주수(교사)의 아들이었다. 책 제목이 ‘아버지의 기도’인 만큼 저자(강대건)는 서두에서 그의 아버지를 소개하는데 32인은 그 안에 포함된 내용들이다. 강주수는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였다. 뿐만 아니라, 32인중 이종근 목사(감목)와 더불어 그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전치규 목사(3대 감목)와는 사돈지간이었다. 전치규 목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아버지는 동아 기독교 목사 전치규 외에 32인의 교역자들과 함께 구속됐는데, 아버지와 전치규 목사와는 서로 사돈 간이었다.(전목사의 맏딸과 나의 사촌 형- 큰아버지 강병수의 아들-이 결혼한 것이다) 결국, 전 목사는 1944년에 순교했지만(2월13일) 아버지는 동아 기독교에 직접 속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석방됐다(31페이지 내용). 당시, 33인이 구속됐던 헌병대에 오장(일본군 하사관 계급)으로 있으면서 이들을 고문한 인물이 노덕술임도 밝히고 있다. 이종근 감목이 1945년 만주에서 공산당에 의해…
김정은이 12월 8일 백두산 정산에 올랐다. 이것을 기사화한 남한 매체들은 대부분 장성택 처형 전에 삼지연회합을 거론하면서 이번 등반도 그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미 김정은에게 찍힌 핵심 엘리트인 황병서(전 총정치국장, 상좌로 강등)와 김원홍(전 국가보위성 제1부국장, 정치범수용소 수감)은 당원에서 박탈되고 이미 숙청됐다. 복귀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이 엄동설한에 왜 백두산 정상에 오른 것일까. 크게 두 가지로 추정해볼 수 있다. 첫째, ‘백두산 3대장군’ 등극의 당위성 확보이다. 아직, 북한은 공식적으로 김정은을 ‘백두산 3대장군’이라 공표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제시한 바 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선언해야 할 것이다. 이번 12월 백두산 등정은 그 수순을 밟는 행보이다. 9일자 노동신문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 오르시였다” 제목의 기사에서는 김정은과 백두산을 다음과 같이 연결시키고 있다. “나라의 일만산악을 거느린 조종의 산 백두산은 그 웅건장중한 뫼부리에 백설을 흩날리며 자기의 위대한 주인을 또다시 맞이한 기쁨으로 령묘한 정기를 내뿜고 있었다.” ‘자기의 위대한 주인을 또다시…
북한은 12월 17일에 김정일 사망 6주기를 맞이한다. 북한매체들은 며칠 전부터 김정일 띄우기가 한창이다. 재미있는 것은 김정일 선전의 초점이 ‘인민애’, ‘애민관’에 맞쳐졌다는 것이다. ‘자애로운 어버이’, ‘다감하신 어버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사실, 이 컨셉은 김일성과 그의 화신을 자처하는 김정은을 띄우는 방식이다. 선군사상을 내세웠던 김정일을 향해서는 ‘효도’가 아닌 ‘충성’의 구호를 드높였던 북한으로서는 김정일 사망 6주기를 맞이해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성공을 김정일 유훈에 맞추면 제격이었다. 그런데, 이쪽으로 연결시키는 북한매체는 거의 없다. 오롯이 김정은에게만 집중적으로 연결시킨다. 어떤 북한연구자는 북한의 추가도발시기를 김정일의 사망 6주기인 이달 17일 전후로 전망했었다. 만일, 그랬다면 북한은 핵미사일 발사 성공을 김정일 유훈에 맞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정은은 이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11월 말에 감행한 이유가 이것과 전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핵무력 강화는 오직 자신의 치적으로만 돌리려는 김정은의 계산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북한매체들이 이것을 증명해준다. 북한이 11월 29일 북한식 표현으로 새형의 대륙간탄도로케
김정은은 정권을 승계하자마자 바로, 어머니의 날(2012년 5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제정했다. 이후, 북한은 매년 11월 16일을 ‘어머니의 날’로 지켜오고 있다. 특이한 것은 여기서의 ‘어머니’는 김정숙(김정일 생모), 고용희(김정은 생모)를 가리키지 않는다. 김일성의 ‘태양절’, 김정일의 ‘광명절’처럼, ‘어머니의 날’은 왠지 김정숙이나 고용희를 기념하는 날일 것 같은데 아니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처, 이설주와 관련된 날인가. 2014년부터 김정은이 전체인민들로부터 ‘인민의 어버이’라고 불리는 만큼, 하지만 이것은 더더욱 아니다. 특이하게도 ‘어머니의 날’은 여성동맹(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에 속한 북한 가정 전체 어머니들을 기념하는 남한의 ‘어버이의 날’과 같은 성격이다. 그런데 올해 창립 72주년을 맞는 여성동맹 창립일은 11월 18일이다. 상식적으로 여성동맹 창립일을 ‘어머니의 날’로 제정할 법도 한데, 김정은은 그러지 않았다. 여성동맹으로의 쏠림방지용 같지만, 그보다는 아직도 북한이 영원한 수령으로의 김일성에 맞춰진 만큼, 바로 이날은 김일성이 1961년 제1차 어머니대회에서 ‘자녀교양에서 어머니들의 임무’라는 제목으로 연설한 날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교회는 대면예배의 제한과 기타 모임 금지라는 철퇴를 맞았다. 다수가 모이는 시설이라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교회는 철저한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어느 기관 못지 않는 철저한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 옮겼다. 실제 신천지를 제외하고 종교시설 감염자 비율은 8.2%라는 최근 통계도 나오면서 정부는 “교회의 대면 예배를 통한 감염은 거의 없었다. 방역수칙을 준수한다면 대면예배 자체가 감염위험도가 높은 행위가 아니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지만 교회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감독은 여전하다. 매주일 시도공무원들의 교회 방문은 이제 일상적인 상황이다. 방역지침 점검을 내세우며 교회를 방문해 인원을 파악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점검하는 것에 대해 교회를 철저하게 이 지침을 준수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대면모임 비율은 수도권은 20%, 비수도권은 30%이며 예배 이외의 모든 모임은 일체 금지된 채로 1년의 시간이 지나왔다. 그동안 정부의 방역지침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소상공인과 주요 업종별 관계자들은 헌법소원과 소송, 시위, 공청회를 거치면서 해결책을 찾았다. 집단감염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이면 어김없이 정부 측의 대
교단발전협의회는 총회 회기 중점 사업을 함께 논의하고 현안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이다. 특별히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오는 2월 23일 열린다. 이날 교단의 발전과 코로나 극복을 위한 개교회와 지방회의 목소리를 청취할 수 있는 자리이기에 이번 모임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10차 회기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역은 바로 다음세대 부흥과 총회 규약 준수, 시대적 변화에 따른 기관의 혁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미 다음세대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안 제시는 미흡한 것이 현실이었다. 이번 회기도 다음세대육성위원회를 구성해 교단을 대표하고 다음세대 사역 중심의 기관, 단체들이 연합하고 있다. 이 위원회가 추구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다음세대를 이끌어갈 사역자를 양성하고 교회에서 다음세대가 정착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총회는 개교회의 교세보고서를 바탕으로 다음세대의 주역인 교회학교의 현황을 파악해 현 침례교회의 교회학교 상황을 분석하고 연구해서 대안을 찾고 이를 중점사업에 담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총회는 다음세대육성위원회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관련 기관과 단체, 교회
최근 들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감소하던 와중에 터진 IM선교회 대규모 감염 사태는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한국교회의 실책이라 말할 수 있다. 혹자는 교회가 아닌 비인가 국제학교의 일을 왜 한국교회에 뒤집어씌우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IM선교회 대표가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교회를 대상으로 교회와 함께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대표 선교사가 코로나19 시국에서 교회들을 대상으로 했던 간증들이 알려지면서 비판의 화살은 더욱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본인이 이렇게 돌아다니고 아이들에 2000명씩 모이는데도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과학적으로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이라는 발언은 마치 음주운전자가 “내가 술을 마시고 여러 번 운전을 했지만 한 번도 사고가 난 적 없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격이나 다름없는 발언이었다. 그동안 본지는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어떻게든 힘이 되고자 했다. 교회를 상대로 한 방역지침의 형평성 문제 등에 동의하며 이러한 입장을 대변하고자 힘썼다. 또한 방역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교회들의 소식과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섬김의 본이 되는 교회들의 이야기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19 국내 최초확진자가 나온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코로나 위기는 진형행이다. 바이러스 사태가 이렇게 길어지는 이유는 급속한 전파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의 어려움도 있지만 정부의 방역지침을 무시하고 위반하면서 집단감염 등의 확진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코로나 방역지침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은 코로나 경제 침체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으며 최근 코로나 이후 일자 리를 잃고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200만명을 돌파한 상황이라고 한다. 교회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 본연의 대면 사역은 거의 중단 되고 비대면 사역 중심으로 교회사역과 목회사역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계속 연장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으로 개척교회와 미자립교회는 교회 폐쇄까지 고민할 정도로 목회의 위기 속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교단도 이러한 코로나19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새로운 목회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재정적 지원 보다 보다 실질적으로 비대면 사역을 돕고 실질적이며 장기적인 재정적 지원책도 마련하고 있다. 이에 교단을 대표하는 교회들이 함께 모여 지난해 각 교회별 성탄헌금을 모아 도움이
지난 한 주간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설상가상 갑작스런 폭설로 인해 퇴근길 발이 묶여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이러한 혹한은 비단 날씨 뿐만이 아니었다. 새해 벽두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와 희망과 기대가 가득하기도 했지만 안 좋은 소식들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했다. 확진자 수가 좀처럼 감소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와 관련된 확진 소식이 어김없이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정부가 교회를 말살하려 한다며 방역지침을 무시한 채 항의집회를 열겠다는 어느 교회의 목회자를 비롯해 모 선교단체는 대규모 감염사태를 일으킨 후 앞에서는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시설 폐쇄 명령서를 부착하기 위해 센터를 방문한 방역당국 사람들과 몸싸움까지 하고 저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이 선교단체는 대표의 입을 통해 코로나19 관련 음모론이 자주 언급됐다는 제보까지 더해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한 입양아가 양부모의 학대 끝에 죽음에 이른 사건도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필이면 현재 용의자로 지목된 양부모 모두 한국교회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어서 가뜩이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갈수록 악화되던 교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