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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의 노래

최현숙 교수의 문화나누기

침신대 피아노과

올해도 절반이 다 지나고 한해의 후반기를 맞으며 시간의 빠름을, 또 세월의 덧없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무엇을 성취하였는가보다 어떻게 이루어내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자세와 방법으로 그 결과를 이루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다. 나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 타인의 연약함을 드러내기를 서슴치 않고 나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타인을 향한 무례한 독설을 솔직함이라 포장하기도 한다. 그 뿐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똑 같은 상황이나 이슈에 대해 손바닥 뒤집듯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도 상황의 변화에 따른 유연성이라 정당화하기도 한다.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본향을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여행이고 이 세상은 그런 방랑자의 여정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행동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머물러 살 것 같다. 이 삶에서의 영원한 안락을 위해 기득권을 쟁취해야 하고 그렇게 얻어진 나의 것은 어떤 경우에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굳은 결의를 다지기도 한다. 우리들의 삶이 한시적이고 이 땅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태도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삶의 방식 또한 달라야한다.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탁월한 작곡가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는 그의 가곡 “방랑자”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방랑객임을 노래했다. 이 작품이 작곡된 시기가 슈베르트의 나이 불과 19세 때라고 하지만 당시에 읽은 시에서 얻은 영감과 삶의 통찰은 매우 성숙하다. 이 곡이 작곡될 당시의 슈베르트의 상황도 그리 밝고 편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삶의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 작곡가의 마음이 음악을 통해 나타나있다.


슈베르트는 고뇌에 찬 외로운 방황을 아름다운 선율로 감싸 안으며 위로하는 듯하다. 이 노래는 인생의 고단함과 불안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나는 산 저쪽에서 왔다네.
골짜기에는 안개가 끼고 바다에는 물결이 일고 있다네. (중략)
내 꿈꾸는 나라는 어디인가.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네.
나는 힘없이 걷고 있다네. 조금도 기쁨이 없다네.
탄식만이 끊임없이 ‘어디야’ 하고 묻는다네.”

 
삶은 누구에게나 버겁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은 오늘을 불안정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금 더 가지려고, 지금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쓰러울만큼 노력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버거운 오늘 속에서도 지켜야하는 상식과 인간다운 진실성을 포기하지 말아야한다. 오늘이 주는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 우리의 목적지가 여기가 아님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최종 목적지에 시선을 고정하고 순례의 여정을 계속한다면 그 어느 길목에서 나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에게도 긍휼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묵묵히 나의 길을 가노라면 오른쪽 뺨을 때린 그 누구에게 왼쪽 뺨을 내밀 수 있는 여유로운 담대함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6월의 문턱에서 슈베르트의 음악과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위해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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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