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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 기독론 : 요한의 기독론 (7)

로고스 기독론(7)

김광수 교수
전 침신대 신학과 (신약학)

요한은 그의 복음서 서두에서 로고스 찬미가를 통해 신성과 인성의 신비한 연합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근원적 존재성을 제시했다. 그는 성육신하신 로고스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동고동락한 경험을 토대로 그 분의 존재의 나타남을 선언한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b).


요한은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았다”라고 말한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자기의 견해를 말할 때, ‘내가’라는 단수형 주어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가’라는 복수형 주어를 즐겨 사용했다. 이것을 통해 저자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 견해보다는 공동체가 전체적으로 동의하고 고백하는 견해를 제시하려고 노력했다(요 3:11; 6:69).
요한은 바로 앞에서도 로고스가 화육해 “우리 가운데 거했다”라고 말함으로써 로고스의 성육신을 공동체의 고백의 형태로 제시하기도 했다.


‘영광’은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활동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핵심 단어이다. 구약에서 영광은 하나님의 현현(나타나심)을 표현하는 시각적 모습(때때로 불과 구름의 모습)을 가리킨다(출 33:22; 신 5:21; 왕상 8:11). 영광은 곧 피조 세계에 강림하시어 권능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을 가리킨다. 구약의 예언 전승에서 영광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활동과 관련되는데(사 60:1; 합 2:14), 그 단어에 포함된 그러한 종말론적 중요성이 신약에서도 유지된다(막 8:38; 13:26; 롬 8:18; 벧전 4:13). 이렇게 ‘영광’이란 단어는 하나님의 임재와 종말론적 구원 활동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됐다.


요한복음에서 영광은 예수의 공생애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현존과 권능의 활동을 가리킨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번째 표적을 행했을 때, “그가 표적을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라고 표현한다(요 2:11). 예수는 십자가 사건을 가리켜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라고 말씀하셨다(요 12:2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날 최종적인 영광은 그가 창세전에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영광으로 복귀하는 것이다(17:5).


요한을 포함해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목격자들은 그의 활동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권능의 활동을 보고 듣고 만져본 경험을 토대로 복음으로 선포한 것이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통해 나타난 영광을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독생자’로 번역된 단어는 본래 “오직 하나의” 혹은 ‘유일무이한’이라는 의미의 형용사이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의 특별한 성격 곧 하나님과 유일한 관계에 있는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 이 단어를 4회 사용한다(1:14, 18; 3:16, 18). “아버지의 독생자” 혹은 “하나님의 독생자”란 칭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세상의 어느 누구도 혹은 세상의 어떤 존재도 가질 수 없는 특별하고 유일무이한 관계의 존재를 나타낸다. 이 칭호들은 창세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의 존재이셨으며, 성육신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다시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복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존재를 가리킨다.


그런데 ‘독생자’라는 한글 용어에서 중간에 위치한 ‘생’은 육신을 지진 인간으로의 출생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출생한 것은 동정녀 출생의 신학에서 부각된 것이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언급됐듯이, 요한은 동정녀 출생의 신학과는 다른 성육신의 신학을 부각시킨다. 성육신의 신학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이 되신 것이다. 그래서 영어권의 학자들 사이에 이 단어의 번역을 놓고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와 ‘독자’(the only Son)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예를 들면, 영어권의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고 오랫동안 사용해온 ‘흠정역’(KJV)에서는 ‘독생자’로 번역한 반면, 흠정역(1611년 번역)을 시대에 맞게 개정한 ‘개정표준역’(RSV; NRSV)에서는 ‘독자’로 번역했다. ‘독자’라는 단어가 하나님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관계를 강조하는 점에서 요한의 신학을 더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성육신의 신학도 결과적으로는 로고스가 육신(헬라어, 사르크스) 곧 “살과 피를 가진 인간 존재”가 된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독생자’라는 단어가 신성과 인성의 결합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존재의 모습을 설명하는데 더 적절한 면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독생자’와 ‘독자’ 중에서 어느 것을 취하든지, 그 단어가 각각 강조하는 면을 이해하면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한은 아버지의 독생자가 보여준 공생애의 모습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라고 표현한다.
은혜는 요한복음에서 네 번만 나오는데, 그것도 로고스 찬미가에만 나온다(1:14, 162, 17). 진리는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을 나타내기 위해 즐겨 사용한 단어이다. 구약에서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계약과 그 계약의 백성에 대해 가지는 충성과 신실하심을 가리키는 점에서 밀접하게 연결된다.


은혜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가리키는 반면, 진리는 계약을 반드시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일관되심을 가리킨다. 그래서 은혜와 진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다루시는 두 가지 중심적인 통치(행동) 원리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을 베푸시지만, 자기 백성과 맺은 계약을 이행하는 일에 있어서 신실하시며 일관되신 분이시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활동의 이러한 두 가지 중심적 행동원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충만하게 나타난 것을 언급한다.


요한은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진리와 관계시킨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를 가리킨다(1:17; 8:32; 16:13; 17:17, 19). 예수는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며 또 그 진리는 사람들에게 참된 자유를 제공한다(8:32). 나아가 예수 자신이 진리로 언급되는데, 이것은 예수의 사역이 하나님의 목적의 최종적 성취이며 완성이기 때문이다(14:6).


요한은 성육신하신 로고스의 핵심적인 사역을 언급하면서 로고스 찬미가를 마친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존재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보는 것은 부적절하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구약의 일반적인 전제이다(신 4:12; 시 97:2). 그래서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 구약에서 빈번하게 제시된다.

심지어 회막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모세조차도 하나님을 얼굴로는 보지 못하고 그의 등만을 보게 될 것으로 예고된다(출 33:20-2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품속에 있던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묘사된다.


“아버지의 품속에 있다”는 말은 아버지가 어린아이를 품에 앉고 있는 영상을 통하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친밀하고 직접적인 연합의 관계를 묘사한다. 이러한 관계는 요한복음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관련하여 특별히 강조되는 주제이다.
“독생하신 하나님”이란 어구 대신 “독생하신 아들”이란 어구로 된 사본들도 존재한다. 전자가 화육하신 로고스의 근원적인 신성을 부각시키는 반면, 후자는 독생하신 아들의 근본적인 인성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독생하신 하나님”이든지 혹은 “독생하신 아들”이든지 두 어구 모두 신성과 인성의 불가분리적 연합의 존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존재성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공생애를 통해 행한 사역의 핵심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타내다’는 단어는 “시 혹은 이야기를 해설하다” 혹은 “신령한 비밀들을 설명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로고스 찬미가가 헬라주의 문화에 익숙한 이 단어로 끝맺은 것은 헬라인들에게 다가가려는 저자의 입장을 반영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 곧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사역을 통하여 나타나고 설명되기 시작했다.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을 나타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 활동 곧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나타내심을 통해 어둠 속에서 멸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서 ‘영생’이란 “유일하신 참된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요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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