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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반대

포괄적 차별금지법과의 싸움이 21대 국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했다. 이번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상의 차별금지사유를 기본으로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으로 구체화해 차별의 의미와 판단기준을 명확히 하고자 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동안 교계가 거듭해서 문제를 제기했던 ‘성적지향’이 이번에도 포함된 것으로 많은 이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법안의 이름이 ‘차별금지법’이기에 이를 반대한다는 기독교계를 반기독교적 입장을 지닌 이들은 앞뒤 문맥을 싹 자른 채 “교회가 차별을 옹호한다”는 낭설을 퍼뜨리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과 여론 형성으로 인해 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하면서부터 시작된 교계와 차별금지법 간의 전쟁은 언제나 그렇듯 외로운 싸움으로 지속되고 있다.


교회는 지금 이런 상황이 불편하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은 동성애를 ‘죄악’이라고 일관되게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매 주일 강단에서 하는 설교가 세상 법의 제약을 받고 기독교인이라고 탄압을 받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종교행위는 제외된다고도 이야기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은 채 졸속으로 처리된 법안은 언제나 문제를 야기시킬 수밖에 없다. 자칫 이 법안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돼 기독교의 근간은 물론 대한민국의 기본질서마저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지 의아하다.


왜 이토록 그들은 ‘성적지향’을 법에 명문화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둘째 치더라도 우리나라가 과연 동성애를 위법으로 간주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판단조차 없이 무작정 ‘성적지향’ 문구를 삽입한 것은 대체 어떤 의도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만약 동성애가 위법한 일이었다면 지난 이태원 코로나19 감염사태로 부각된 게이클럽이 지금까지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동성애자라고 취업에 불이익을 받는 것일까? 사실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히지 않는 이상 회사가 그런 것에 관심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가정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부모 자식간에 갈등이 있을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어떠한 문제가 발생한다 할지라도 폭행죄나 명예훼손, 모욕죄 등의 형법이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 아닌데 왜 법을 또 만드는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온 사회가 ‘인권’이란 미명 아래 마치 제동장치가 고장난 폭주 기관차처럼 이성은 도외시한 채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의 홍위병을 떠올리게끔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러한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에 기인한 사회 물결에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과 교회라는 고장난 제동장치를 고칠 수리공이 아직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정말 외롭고 지치는 싸움이다. 하지만 우리가 건강하고 거룩한 사회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굳건히 나아가 이 나라를 멸망의 길에서 되돌리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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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