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인의 사명은 설교나 교회 개척이 아니라 성경을 보급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피터스는 한양에 머물기보다 항구도시, 교역로, 새로운 지역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성경을 보급시키려 했다. 인천 제물포를 시작으로 군산과 목포를 거쳐, 마침내 그의 발걸음은 제주도로 향했다.
그 시대의 제주는 본토 조선인 조차 접근이 쉽지 않은 특수한 지역이었고, 복음도 전해지지 못한 곳이었다. 피터스 선교사가 제주를 탐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영국 성서공회 한국 총무‘였던 ’켄모어‘의 후원이 큰 역할을 했다. 그의 권유와 지원에 힘입어 피터스는 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 당시 서양인들에게 ‘켈파트(Quelpart)’라 불리던 제주도를 향하게 된다.
‘켈파트’라는 이름에는 흥미로운 역사가 담겨 있다. 17세기 초 동아시아를 오가던 네덜란드 갤리선(함선의 한 종류) 가운데, 1630년 무렵 제작된 배의 이름이 ‘켈파트 드 브락’이었다. 이 배가 1642년 제주를 발견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보고했고(1648년), 그 기록을 통해 제주가 처음으로 서구에 알려졌다. 이후 유럽에서는 이 배의 이름이 섬의 이름으로 오해되었고, 특히 1668년 하멜 표류기가 출판된 뒤 서양 지도들에는 제주가 ‘켈파트’로 표기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제주가 ‘켈파트’라 불리게 된 데에는 발음의 유사성 이상의 역사적 흐름이 있었다.
피터스의 항해는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군산을 지나 목포로 향했으나 거센 풍랑에 가로막혀 되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배에 올랐고, 마침내 2월 23일 정오, 제주 해안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순간을 그는 “A Visit to Quelpart(제주 탐방기)”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이곳은 길도 없고, 항구도 없으며, 여관도 상점도 찾아보기 어렵다.”
황량한 묘사였지만, 그 말속에는 아직 복음이 닿지 않은 땅에 대한 깊은 인상이 스며 있었다.
제주에서의 체류는 전혀 새로운 문화와의 만남이었다. 마을마다 돌담 너머로 방목된 말과 소가 보였고, 사람들은 바다와 밭을 오가며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다. 불교의 흔적은 적었지만 무속과 제의적 풍습이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본토와는 다른 독특한 종교적 풍경은 피터스에게 강한 울림을 줬다.
‘복음의 공백’을 보았지만, 그는 언젠가 성경이 이 땅에도 뿌리 내릴 것이라는 확신을 품었다. 그는 주민들에게 성경을 나눠 줬고, 그 한 권 한 권이 미래를 향한 씨앗이 되리라 소망했다.
따라서 피터스의 탐방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복음이 닿지 않은 한 지역을 향한 역사적 기록이자 한 선교사의 믿음의 발걸음이었다. 제물포에서 제주까지 이어진 그의 항해는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 권의 성경이 생명을 바꾸고, 한 선교사의 항해가 역사를 움직이는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자문해 보자. “우리의 항해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또한 우리의 항해는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여호수아 24:22의 메시지와 맞닿는다.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로그인’과 ‘로그아웃’의 그 로그(log)는 ‘항해 일지’를 뜻한다. 그래서 로그는 말이 아니라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만 섬기겠습니다”라고 고백한 그 순간, 그 말은 인생 항해 일지의 첫 줄로 남는다. 하나님은 말의 무게보다 그 말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우리의 로그를 보신다.
말은 방향을 선언한다. 그러나 로그는 우리가 실제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증인은 말로 증명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기록으로 증명되는 사람이다. 이런 이유로 피터스의 제주 여정과 여호수아의 선언은 같은 원리를 보여준다. 말만으로는 증인이 될 수 없다. 삶의 발걸음이 기록될 때 비로소 증인이 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질문은 단순하다.
“지금 내 삶의 항해일지는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피터스가 제주 땅에 남긴 복음의 로그처럼, 우리의 삶과 신앙도 하나님을 향해 기록되기를 소망한다. 말은 사라지지만 삶의 로그는 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증인의 삶이다.
(다음에 계속)
백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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