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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소리를 내기 위해

 

한 마을에 거울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 거울은 마을을 알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얼굴이 밝고 건강해 보일 때는 거울을 더 열심히 닦았다. 사람들은 그 거울을 보며 안심했고, 거울을 통해 비치는 마을의 모습이 곧 현실이라고 믿었다. 거울은 마을의 자랑이었고, 관리자는 그 자랑을 지키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얼굴에 상처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는 상처를 지우기 위해 거울에 금칠을 했다. 처음엔 번듯해 보였다. 빛이 더 강해진 것처럼 보였고, 사람들도 잠시 안도했다. 하지만 금칠이 두꺼워질수록 거울은 더 이상 얼굴을 비추지 못했다. 사람들은 마을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거울이 진실을 비추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차렸다. 그 순간 거울은 자랑이 아니라 불신의 대상이 됐다. 아무리 화려해도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는 거울은 더 이상 거울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단지는 교단의 홍보 매체다. 이 사실을 부정할 필요도 없고, 부정해서도 안 된다. 공동체의 사역과 방향을 알리는 일은 분명 중요한 역할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홍보라는 이름으로 무엇이든 써야 한다는 요구가 등장하는 순간,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역할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신뢰 역시 함께 무너진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메시지를 그대로 써 달라고 요구하고,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나 비판에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다. 조금만 다른 질문이 나와도 불편해하고, 맥락을 설명하려는 시도조차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마치 비판을 받아 본 적 없는 온실 속 화초처럼,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16살 소녀처럼 말이다. 그러나 공동체는 성숙해야 한다. 질문을 견디지 못하는 공동체는 결국 스스로를 설득할 언어를 잃어버린다.


침례신문은 마냥 교단을 홍보하는 기관만은 아니다. 교단에 비전을 제시하고 과거를 기록하며 미래를 제안하는 기관이다. 과거와 미래를 제안하는 것은 좋은 모습만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다. 언론이 홍보만을 시작하는 순간, 비판은 배신으로, 질문은 방해로 취급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신문은 기록이 아니라 장식이 된다. 지금 침례신문이 강요받고 있는 것은 ‘홍보’가 아니라 통제된 서술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분명히 해야 한다. 교단지는 그 누구나 마음껏 휘두르는 도구가 아니다. 공동체 전체를 위한 공적 기록이며, 신뢰를 기반으로 존재하는 공적 공간이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기사를 배치하고 불편한 문제 제기를 차단하려는 순간, 그 신문은 더 이상 신뢰의 매체가 아니라 내부 결속용 전단지가 된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일지 몰라도, 그 평온은 질문이 사라진 결과일 뿐 건강의 증거가 아니다.


결국 언론의 역할은 공동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있다. 불편한 질문은 공동체를 흔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거울이 상처를 보여준다고 해서 거울을 탓하지 않듯, 기록이 문제를 드러낸다고 해서 기록자를 탓해서는 안 된다.


이 경고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불편함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거울은 다시 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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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