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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성경이 우리에게 오기까지(26)

조선의 “새빛” 선교사들

2025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이 경주에서 열렸다. 그래서 오늘은 잠시 경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경주’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지금의 청년 세대는 황리단길(경주 황남동과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합쳐진 단어)이나 ‘드라켄’이나 ‘스콜&하티’와 같은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의 성지인 ‘경주월드’가 떠오를 것이다. 반면에 기성세대를 포함 대부분은 ‘천마총과 불국사와 첨성대, 성덕대왕 신종, 동궁과 월지 등’을 관광했던 수학여행의 장소를 떠올린다.


또한 한편으론 역사를 조금 안다는 사람은, ‘신라를 비롯하여 화랑, 골품제도, 법흥왕, 진흥왕, 선덕여왕’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해 떠오를 수도 있다. 이 외에도 경주에 대해 떠오르는 ‘사람, 장소, 추억 등’ 저마다의 추억거리가 있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로서 신라의 처음과 끝을 함께한 도시다. 고구려와 백제가 계속 수도를 옮겼음을 생각하면 참으로 이례적이다. 신라 시대에는 ‘금성 혹은 서라벌’이라 불렸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4점, 국가 지정 문화재 360점 등을 보유한 한반도 문화유산의 보고이자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동해와 접하지만, 일반인들은 경주가 ‘해안 도시’란 걸 잘 모른다. 그 이유로는 바다와 접해 있는 인근의 해안 도시들(울산, 포항, 부산)과 달리 경주는 시가지가 바다와 한참 떨어진 내륙에 있으며, 문화재들이 워낙 많아서 관광도시라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국시대 만 해도 지금의 경주 시내까지 바다가 들어왔으며, 또한 해수욕장도 나름 많은데, 문무대왕릉(대왕암)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면 답이 금방 나온다. 삼국 통일을 한 ‘문무왕’의 능은 바다의 바위섬으로, ‘봉길해수욕장’과 접해 있다. 그리고 인근에는 ‘월성 원자력 본부와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존재한다.


신라의 전성기 때, 경주 인구가 90만 이상이라고 말하는 일부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골품제의 신분을 유지하려 했던 지방 이주 인구의 중복 계산, 경주의 주변 지역 인구 포함, 면적 및 인구 계산 방법의 차이 등’으로 인해 잘못 주장하는 것이다. 당시 당나라의 수도 ‘장안’이 100만 명이었고, 경주랑 면적이 비슷한 일본의 수도인 ‘교토’가 20만 명이었는데, 경주의 인구가 90만 명이 넘는다는 주장은 너무도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러나 설사 90만 명이 안 되더라도, 통일신라가 경주 일대를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것은 사실이다.


조선 초, 경주는 경상도의 중심 도시 중 하나로 행정적으로는 경주부(慶州府)로 불렸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불교 억압 정책(숭유억불 정책)을 폈다.

 

1. 사찰을 줄이고(선종 18사, 교종 18사만 남김)
<선종(禪宗)은 마음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불교 종파>, <교종(敎宗)은 경전과 교리를 중시하는 불교 종파>.
2. 승려 출입을 제한.
3. 국가 제사에서 불교를 배제.

 

하지만 경주부의 ‘불국사 등’은 폐사 명단에 포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라의 절들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라 ‘국가 유적’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지만, 역사적 정통성을 존중하는 정치 철학을 가졌기에 신라의 도읍지나 왕릉은 예우하며, 보존한 것이다.


1956년, 불국사에서 뜻밖의 유물이 발견됐다. 바로 ‘돌로 만든 십자가’다. 당시 통일신라는 해상 실크로드와 육상 실크로드가 각각 있을 정도로, 당나라는 물론 일본, 이란, 인도 등 다양한 나라들과의 교류가 활발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당나라에서 활동하던 기독교가 신라에 전파됐다고 주장한다. 그 기독교는 ‘경교(景敎)’라고 불리는 ‘네스토리우스파’다. 당시 당나라에 경교가 유행한 증거는 781년 세워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현재 시안 비림박물관 보존)에 기록되어 있다.


네스토리우스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41대 대주교 ‘네스토리우스(386∼451)’가 주장한 신학론을 바탕으로 형성된 종파다. 예수님이 신성과 인성이 각각 존재한다는 이성설(二性說)을 주장하여, 이단으로 분류됐다. 이단으로 배척받은 신자들은 어쩔 수 없이 페르시아를 거쳐 동아시아로 이동했고, 주로 상인이나 석공으로 활동하며 타국에서 생계를 이어갔다.


이런 근거를 토대로 일부 학자들은 네스토리우스파의 신자들이 당나라를 거쳐 신라에 오거나, 교리에 영향받은 신라인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불국사 건설에 참여했다고 여긴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돌 십자가’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근거가 매우 약한 추정일 뿐이다. 항상 역사적인 주장과 이론은 그것을 뒷받침되는 충분한 역사적 사료가 있어야 한다. 뒷받침되는 역사적 사료가 없으면 주장에 신빙성과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경주에서 기독교적 유물이 나타났다고 해서, 신라 시대에 기독교가 전파됐거나, 신라인들이 기독교를 믿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상당한 무리수다.


단지 우리가 ‘돌 십자가’를 통해 깨닫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신라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른 나라들과 적극적 소통과 교류로 번영을 이루었듯이, 우리 역시 삶의 태도가 관대하고 포용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의 책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 제국의 성장 비결은 ‘포용력’이라고 했다. 칼 폴라니 교수도 ‘거대한 전환’이란 책에서 ‘관용’이 미국을 끄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세계의 전자시장을 주름잡던 일본의 소니가, 한국의 삼성과 LG에게 패배한 이유 중 하나는 ‘소통’의 부재였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놀라운 지혜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듣는 마음’과 ‘넓은 마음’인 것을 기억하자!(왕상3:9, 4:29)
그런 관점과 기조로 대한민국이 앞으로 ‘포용과 관용, 소통’이 중심이 되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 특히 이번 2025 APEC을 통해, 세계 경제 위기와 국가적 갈등 속에서 협력과 소통을 이끌어 세계에서 더 빛나는 나라가 되길 소망한다.

(다음에 계속)

백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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