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다시 은혜를 구하며

새해의 문턱에 서면 우리는 언제나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정말이지 지난 한 해는 유독 되돌아보기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무거운 시간이었다. 사회는 갈라졌고, 정치는 거칠어졌으며, 공동체 전반에는 피로와 냉소가 깊게 스며들었다. 교회 역시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분쟁과 갈등, 불신과 상처가 곳곳에 쌓이며 ‘회복’이라는 단어조차 쉽게 꺼내기 어려운 한 해였다.


교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제도와 사람, 구조와 관계 사이에서 생겨난 긴장들은 공동체의 얼굴을 흐리게 했다. 무엇이 옳은지보다 누가 옳은지가 앞서고, 대화보다 판단이 먼저 나왔던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교회의 언어가 세상의 언어와 다르지 않게 들렸던 순간들, 복음의 이름이 갈등의 도구로 소비됐던 시간들은 우리 모두에게 무거운 질문을 남겼다.


그러나 성경은 무너진 자리에서 끝을 말하지 않는다. 주님은 언제나 무너진 자리에 새 길을 내셨고, 상처 난 땅에 다시 씨를 뿌리셨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이 그러했고, 십자가 이후의 제자 공동체가 그러했다. 실패와 좌절은 하나님의 역사를 멈추지 못했다. 하나님은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시는 분이며, 끝처럼 보이는 시간 위에 다시 출발선을 그으시는 분이다.


새해는 단지 달력이 바뀌는 시간이 아니다. 다시 묻고, 다시 선택하고, 다시 걷기 시작하는 은혜의 기회다. 우리는 이제 “누가 옳았는가”를 묻기보다 “주님 앞에서 무엇이 옳았는가”를 다시 물어야 한다. 승패의 언어가 아니라 회개의 언어로, 주장보다 순종의 자리로 돌아갈 때 교회는 다시 교회다워진다. 말의 승리가 아니라 삶의 순종이 공동체를 살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무릎이다. 더 빠른 결정보다 더 진실한 기도이며, 더 날카로운 비판보다 더 오래 견디는 사랑이다. 정의는 사랑 안에서 완성되고, 진리는 겸손 위에 세워진다. 회복은 구조의 개편만으로 오지 않는다. 관계의 회복, 마음의 회복,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한 회개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먼저 낮아질 때 공동체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침례교회는 개혁의 전통 위에 세워진 공동체다. 개혁은 언제나 ‘다시 성경으로,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는 운동이었다. 사람을 바꾸기보다 자신을 먼저 바꾸는 용기,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겸손이 우리를 다시 살릴 것이다. 제도를 고치는 일보다 먼저 영혼을 돌보는 일이, 구조를 바꾸기보다 먼저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며, 이 땅의 교회와 교단, 그리고 이 사회가 다시 은혜의 질서 안으로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상처는 치유로, 갈등은 성찰로, 혼란은 믿음의 성숙으로 바뀌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분열의 언어가 아니라 화해의 언어가 회자되고, 경쟁의 논리가 아니라 섬김의 질서가 회복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새해를 다시 빚어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회복의 첫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먼저 서기를 소망한다. 회복은 언제나 ‘먼저 돌아오는 자’에게서 시작됐다. 2026년, 이 땅의 교회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는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