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음악 프로듀싱 그룹 더 웨이크(THE WAKE)는 지난 7월 22일 첫 번째 싱글 “주의 사랑으로”를 발매했다. 이번 싱글은 시편 143편 8절 말씀을 바탕으로, 상한 마음으로 새벽을 맞았던 시편 기자의 고백을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으로 옮겨와 온 땅을 채우는 주님의 인자하심을 노래한 곡이다. 첫 싱글을 선보인 더 웨이크는 오는 8월 13~15일 화성 장안대학교에서 열리는 ‘2026 여름 쉐이커스 청년 복음캠프’에 참여해 첫 공식 라이브 워십을 인도한다. 설립 20주년을 맞은 다음세대 전문 사역 단체 쉐이커스 미니스트리가 주관하는 이번 캠프는 ‘더 킹덤(THE KINGDOM)’이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천우경 대표가 이끄는 더 웨이크가 메인 예배팀으로 나서며, 이요한 목사(기쁨의)를 비롯해 신재웅 목사(Page Church), 김성경 목사(Community of near), 임형규 목사(라이트하우스서울숲), 김명규 목사(씨앗)가 강사로 나서 청년들의 영적 회복을 이끌 예정이다. 또한 코미디언 김규원 씨의 토크콘서트와 찬양사역자 브라이언 킴의 찬양 무대도 함께 마련된다. 범영수 부장
키르케고르는 1847년 ‘사랑의 실천’을 쓸 당시 다음과 같은 일기를 남긴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주관적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객관적이다. 때로는 끔찍할 정도로 객관적이기도 하다. 아, 그러나 과제는 바로 자신에게 객관적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주관적이 되는 것이다.”(NB2:57, Pap. VIII1 A 165)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키르케고르에게 이 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특히 삶에서 많은 고통을 겪을 때, 우리는 가해자에게 더욱 주관적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키르케고르는 다른 일기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리고,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음을 숙고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위안이자 절대적 해방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올바르게 이해된 객관성과 올바르게 이해된 주관성을 갖게 된다. 곧, 타인에게는 객관적이고, 자신에게는 주관적이 된다.” 일반적으로 국가나 단체에서 회의를 개최할 때에는 발언을 개별적인 사
광진교회와 사단법인 미래목회연구원은 지난 7월 17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층 그레이스홀에서 민경설 목사의 “사도행전 강해전집” 출판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번에 완간된 강해전집은 사도행전 28장 전 장과 모든 절을 철저히 분석하고, 42년간 목회자이자 전도운동가로 헌신해 온 민경설 목사의 목회 철학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고통과 이어지는 자영업자들의 힘든 일상을 바라보며, 심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부흥을 이룬 초대교회의 역사를 오늘날 한국교회 현실에 적용했다. 특히 3년 6개월에 걸쳐 교인들과 함께 나눈 설교 현장의 열정과 간증을 씨실과 날실로 짜내며 총 5권의 현대판 ‘전도행전’으로 완성해 냈다. 이날 감사예배에서는 교계 및 신학계 인사들의 격려와 서평이 이어졌다. 황세형 총장(한일장신대)과 최흥진 전 총장(호남신학대)이 서평을 맡아 책이 지닌 신학적·목회적 가치를 평가했다. 이어 김승민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서기)가 축사를 전했으며, 이종엽 목사(서울서남노회장)의 기도, 정신천 목사(한국장로교복지재단 사무총장)의 감사기도가 진행됐다. 아울러 24년간 전도동력세미나에 지속해서 참석해 온 대구 하늘샘교회 배종원
거짓 자아(1) 인간은 외모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외적 모습과 겉으로 보이는 성격 자체가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내면의 아픔을 숨긴 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기도 한다. 인간의 자아는 태아 때부터 시작해 주로 유년기 때 형성된다. 태아 때부터 보호자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였고 유년기 때 보호자와 어떤 유대감을 형성하였느냐에 따라 한 인간의 정체성은 달라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한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를 밝혀주며 한 인간의 인생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만 주체적이지 못한 나머지 타인의 삶을 의식하여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과 확연히 구분된다. 인생의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지만,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한 자아로 인해 삶의 방향을 어느 곳으로 향하여야 할지를 찾지 못한 채 절망의 세계로 빠져든다. 정체성 왜 중요한가?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불가사의하다. 엄마가 없는 아이는 구멍이 뚫린 독처럼 아무리
주전 10,000~5000년 사이를 신석기 시대(Neolithic)라고 부른다. 수렵생활을 하던 인류가 드디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던 시기이다. 그러니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당연히 정착생활, 집단생활, 또 그에 필요한 도구들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정교하게 발전했을 것이고, 집단생활을 효과적으로 영위하기 위해서 그에 따르는 사회조직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석기시대 후반부(주전 6400~5800)에 이르러 사람들은 드디어 흙을 이용해서 다양한 크기의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런 문화는 이스라엘 어느 곳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출애굽 당시 성경에 등장하는 여리고 도시가 그중에 하나였다. 여리고는 고대 근동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시대의 도시로 알려졌다. 하지만 신석기 후반부(주전 6400~5800)의 토기 문화가 가장 왕성하게 발달하고 근동지역에서 최초로 가장 혁신적인 농사 문화의 발전을 이루고 선도했던 도시는 따로 있었다. 그곳은 갈릴리 호수 남쪽에 위치한 장소였다. 신석기시대 후반부에 이 지역에서 일어난 문화를 학자들은 ‘야르묵키안 문화’(Yarmukian culture)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욕심 많은 사람에게 ‘놀부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영어권에서는 의심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도마와 같은 사람’(Doubting Thomas)이라고 합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의심했던 제자 도마’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도마는 더 이상 의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의심이 변할 수 있었을까요? 의심이 찾아올 때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요 20:24) 도마가 원래 의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자 자신도 함께 죽음으로 주님의 부활을 경험하는 자가 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의심이 많은 도마가 됐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구멍 난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며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려주셨을 때 그 자리에 도마는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니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이 닫혀 있을 때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창 22:20) 브엘세바로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삭의 결혼이었을 겁니다. 미리 정해 놓은 결혼 상대자가 없었으니 신부가 될 사람을 찾아야 했는데,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이곳저곳 떠돌며 살아온 아브라함이었기에 신붓감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웃한 부족은 문화도 다르고 종교 차이도 커서 알아보고 싶지 않았을 테고, 집안 식구 가운데 이삭의 배필을 찾으면 좋겠는데, 고향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됐고 가장 가까운 친척이었던 롯 가족이 몰락하고 나니 그마저도 불가능했습니다. 바로 그때 뜻하지 않게 동생 나홀에게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창세기 11장 족보를 살펴보면 데라에게 아브라함, 나홀, 하란의 세 아들이 있었다고 나오는데, 하란은 일찍 죽었고 데라가 갈데아 우르를 떠날 때 아브라함과 더불어 하란의 아들 롯을 데리고 나왔다는 기록이 있을 뿐 나홀의 행적은 따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난 뒤에도 나홀은 여전히 고향에 남았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제야 근황을 알게 된 것이죠. 소식을 가져온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 아브라함은
사랑해요 사랑해요 예수님 사랑해요 날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으신 예수님 십자가의 사랑이 이 죄인을 살리셨으니 온 마음을 다해 주님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예수님 사랑해요 십자가 보혈로 나의 죄 사하신 예수님 하늘나라 영광을 나를 위해 예비하시니 온 마음을 다해 주님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예수님 사랑해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막으신 예수님 영생 천국 향하여 그날까지 인도하신 온 마음을 다해 주님 사랑합니다
1884년 이후 조선에 들어온 북장로교 선교사들은 단순한 부흥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한 학자 집단도 아니었다. 그들은 성경의 권위를 확신했고, 개혁주의 교리를 소중히 여겼으며, 동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인 선교사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모펫(Samuel Austin Moffett), 윌리엄 베어드(William Martyn Baird) 등은 모두 이러한 전통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이 조선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성경을 번역하고, 학교를 세우고, 교역자를 양성하고, 신학 교육의 기초를 놓는 일이었다. 그 결과 초기 한국교회는 말씀 중심의 교회가 됐다. 성도들은 성경을 배우기 위해 먼 길을 걸어 사경회에 참석했고, 말씀을 읽기 위해 한글을 배웠다. 성경을 아는 것이 곧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모습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가지고 온 개혁주의 전통의 열매였다. 1901년에 설립된 평양신학교는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중심지였다. 이곳에서는 성경 연구와 설교, 교리 교육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신학생들은 단순히
정부 차원에서 경구용 유산 유도제, 이른바 낙태약의 허용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라는 지시가 나오면서 생명 윤리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14일 국무회의에서 모자보건법 개정 전 입법 공백기 동안 의사 재량이나 약품 판매를 허용하는 방안을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자, 태아 생명보호 운동 단체와 교계는 즉각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정부는 낙태약을 무조건 금지할 경우, 인터넷 직구 등을 통한 음성적인 유통이 판을 치고, 이는 적절한 진료 없는 약물 복용으로 이어져 여성의 건강을 더욱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국가가 제도권 안에서 관리 영역으로 끌어들여 위험성을 낮추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 같은 행정적 판단에 기반한 조치는 생명의 시작과 태아의 생명권을 엄중하게 바라보는 기독교계와 생명운동 단체들의 본질적인 반발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태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거룩한 생명이며, 어떠한 정책적 편리함이나 관리의 효율성보다 우선시해야 할 절대적 존재다. 더욱이 자궁외임신 확인이나 출혈·감염 관리 등 고도의 의료적 관리가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