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르로 분별하라 고린도전서 2:1~16
교단의 정기총회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사안은 바로 교단의 대표를 선출하는 의장단 선거라 할 수 있다. 예비 등록을 진행하며 현재 2명의 총회장 예비 후보가 등록해 115차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홍석오 목사)의 관리․감독 아래 선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후보자에게 자신의 공약사항과 정책을 알리고 홍보하는 일은 중요한 선거 운동 중의 하나이다. 후보자는 현재 자신의 정책을 SNS나 문자로 대의원들에게 전달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아직 115차 대의원 등록이 종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예비후보들은 자신과 공식 선거운동원의 인맥을 중심으로 정책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이는 선거관리위원회가 더욱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운동을 정착시키기 위해 예비 후보자와 선거운동원에 제공한 선거운동 지침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운동의 방향은 우리에게 필요한 숙제와 같다. 의장단 선거가 이뤄질 때마다 나타나는 고소․고발과 소송으로 겪었던 어려움들을 상기하면 보다 형평성에 맞는 총회 규약과 선관위 규정으로 선거공영제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잡을 필요가 있다.그런데도 대의원들의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은 분명히 있다. 후보자들은 유권자인 대의원을 만나 다양한 교단 정
이렇게 큰 나무 이인 것은 어떤 바람 불어도 스쳐 지나가 속에까지 시리지 않아서 큰 나무이었지 부는 바람에 시릴 때마다 시렸으면 이렇겠니 봄이 오고 여름 지나 가을에 옷 갈아입고 싸늘한 겨울바람에 속까지 시려 잎 다 떨어진 큰 나무 보았니 계절과 상관없이 여전히 시린 구석 없는 내 속에 시릴 즈음에 시리지 않게 하는 웃음 잎사귀 울음 잎사귀들이 시림을 다 마셔버려서 큰 나무 이어 버렸다는 것 묵묵히 묵묵히 묵상에 잠긴 큰 나무 그늘 아래 내 그늘 보이지 않는 아 이 행복이여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창 16:1) 16장으로 넘어가자마자 등장한 첫 구절이 아브람이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짚고 있습니다. 그 많은 약속과 확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녀가 없었으며, 그 이유가 사래가 아이를 낳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사래가 아브람의 아내로 남아 있는 한 아브람이 자식을 가질 수 없었는데, 믿음으로 이겨 보려 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려면 이 현실을 뛰어넘어야 했는데, 애굽 사람 하갈이 변수로 떠오릅니다. 하갈에 대해 창세기가 주는 정보는 두 가지입니다. 사래의 시녀이며 애굽 출신이라는 점이죠. 16장 이전에 하갈이라는 이름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것을 보아 하갈은 아브람이 애굽에서 선물로 받은 시녀였던 것 같습니다. 이 추측이 맞다면 하갈은 애굽 생활의 결과물 중 하나며, 아브람과 사래에게 애굽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되살려 주는 존재입니다. 아브람과 사래에게 애굽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요, 첫째는 자신에 게 유익이 되는 선택을 상징합니다. 이런 선택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이지
신성균 목사(申聖均, 1897~1985) 신성균은 1897년 10월 12일 경상북도 문경군 점촌읍 점촌1리에서 신학희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15세 때(1912. 11. 26) 같은 마을에 사는 박소암의 외동딸 박음점과 결혼하여 일찍부터 가정을 꾸렸다. 1914년 1월 5일 이만기 성도가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으로 기독교인이 됐고, 유곡교회에 출석했다. 같은 해 9월 25일 이종덕 목사로부터 침례를 받았고, 이후 성경의 진리에 빠져들기 시작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웃과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그의 기독교 개종은 가족들로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박해의 연속이었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오직 믿음과 인내로 복음전도에만 매진하여 이를 극복해냈다. 1916년 경상북도 문경의 신원(세원)에서 개최된 제11차 대화회(총회)에서 신성균은 가정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켜 전도의 직분을 받았고, 단양지역으로 파송을 받았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주민들로부터 상투가 잘리는 수모를 겪기도 했고, 상투가 잘리자 단발을 한 후 짚신 감발로 전도사역을 이어갔다. 1917년 간도의 종성동에서 개최된 제12차 대화회(총회)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담은 독처하지 않게 됐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하와를 통해 그 말을 옳게 여겨 죄를 지었다. 죄를 짓기 전의 아담과 하와가 참자기라면 죄를 지은 이후의 자기는 거짓자기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스스로 참이라고 여겼던 거짓자기를 버리는 일이 구원이다. 구원은 자기의 죄(거짓자기)를 인정하고 참자기를 찾는 것이기에 거짓자기를 버리는 것은 곧 참자기를 찾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회개라는 것은 죄 아래 있는 인생이 자신의 죄를 깨달아 원래의 에덴을 회복하는 신앙고백이다. 에덴으로 가는 길은 십자가로만 가능하다. 거짓자기는 교묘히 자기 자신도 속이는 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거짓자기)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지도 않고 달렸다고 여기고 평생을 살기도 한다. 더욱이 목사, 장로, 집사의 직분을 갖고 십자가가 빠진 율법에 매여 살며 마치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사는 것처럼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바벨탑을 쌓는다. 이들의 특징은 복음에 율법을 섞는 일이다. 복음으로 거듭났다고 여기고 율법으로 살자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이 땅에서 복 받자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신앙을 보면 복음으로 구원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