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즈음 엄청나게 빠른 성장을 이룬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대형교회 목사가 해임됐다. 미국에서도 규모로 치면 다섯 손가락에 꼽히도록 큰 교회의 성장을 주도한 목회자였다. 알코올 남용과 정신적 문제들, 그리고 가정불화가 원인이 됐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소신을 대외적으로 강하게 피력하던 또 다른 목사가 동성애자 파트너에 의해 마약 복용 및 동성애의 전력이 폭로되기도 했다. 미성년자와의 성매매가 발각되어 목을 매 자살한 목회자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이든 한국이든 잊을 만하면 교계에서 목회자의 외도나 성추행, 설교 표절 등의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오곤 한다. 주위 교회들과 사역자들의 귀감이 되고 선망이 됐던 목회자들의 불명예스러운 사임은 교회와 동역자들에겐 큰 충격과 실망이 된다. 사역하던 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폭풍이 된다. 외부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에 더욱 거센 공격과 비아냥의 빌미를 주기도 한다. 그 유혹에서 자신을 지켜내지 못했던 목회자들을 보며 돌을 던지기보다는 같은 목회자나 사모로서 안타까움과 두려움을 금할 수 없다. 그 유혹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그 연약함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분명한
1961년 대학시절에 나는 천문학적으로 큰 문제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일본 천문대에서 관측한 결과 지구의 자전에 10분의 1초의 착오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팽이의 법칙”에 의해 지구의 자전이 서서히 1초, 1분, 나아가 1시간 그리고 그 이상으로 늦어지다 보면 지구의 자전이 정지되고 공전에도 큰 변화를 준다. 그러나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재관측한 결과 10분의 1초도 틀림없이 자전하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은 안심한 것이다. 그런데 지구의 자전이 10분의 1초도 큰 문제가 된다고 한다면, 태양이 어떻게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천지창조 후의 홍해의 도하와 같은 기적도 있지만, 이것은 지구 안에서만 일어난 기적이다. 하지만 여호수아 10장 12~14절의 내용은 지구와 태양계에 미치는 내용이다. 어떻게 태양과 달이 종일토록 중천에 머물러서 있었냐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때는 6·25전쟁 중. 장소는 강원도 어느 수복지구. 결국 한국군이 인민군의 점령지역을 탈환했다. 사기등등한 한국군은 북진하고 수복지역의 치안은 소위 치안담당반이 맡았다. 무법천지, 무정부천지 전쟁 중이라 소위 치안대장이 삼권분립(?)을 다 쥐고 주어진 지역 치안을 다스리던 때. 27세 미녀가 시체 누울 만큼 판 흙구덩이에 꿇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치안대장의 명령에 의해 총살직전에 있었다. 그때 인민군에게 복역한 수많은 사람들이 치안대원에 의해 재판도 없이 즉결처분을 당했다. 이 미모의 여인도 인민군에게 복역한 전과자라는 이유로 총살을 당해야할 처지에 놓였다. 치안대장이 물었다. “그대는 왜 복역을 했나” 흙 구덩이에 꿇어앉은 여인은 입을 열었다. “복역하고 싶어 한게 아니라오. 인민군과 보안대원 등쌀에 복역하지 않고는 당장 죽게 됐으니 살자고 복역했소.” 그리고 그녀는 이어서 또 말했다. “누가 나를 치안대에 고발한 것도 알고 있소. 그 사람의 집과 우리 집은 옛날부터 사이가 나쁘게 지냈는데 이참에 나를 죽이고자 더 과장해서 고발한 것이 틀림없소.” 그리고 여인은 말이 없었다. 이제 남은 일은 치안대장의 명령에 의해 치안대원의 발사만 남았다. 갑자기 미인
어느 충청도 산골마을 아래와 윗동네에 젊은 나무꾼과 나이든 나무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명한 대장장이가 만든 도끼를 각각 하나씩 사서 젊은 나무꾼과 나이든 나무꾼이 같은 장소에서 시합이라도 하듯 나무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나무꾼은 그 젊음의 힘을 자랑하듯 쉼 없이 열정적으로 나무를 패듯이 베었고, 나이든 나무꾼은 짬짬이 쉬어가며 나무를 베었습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일을 마치고 서로가 해놓은 나무를 보던 젊은 나무꾼은 쉬지 않고 벤 자신의 나무가 훨씬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적어서 놀랐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나이든 나무꾼이 그 이유를 말해 줍니다. “자네는 오늘 하루 쉴 새 없이 도끼질을 했지만, 나는 잠시 짬을 내어 쉬면서 무뎌진 도끼날을 다시 세우며, 나무를 베었기 때문이라네” 성경에 신랑을 맞으러 나간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처녀 모두 등과 기름을 가졌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리자니 불을 밝히는 기름을 넉넉히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신랑이 오기도 전에 기름이 다 타서 등불이 꺼질 것입니다. 이때 슬기로운 처녀들은 다른 그릇에 충분하게 여분의 기름을 채워왔지만 미련한 처녀들은 등에 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1. 인정 198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미술대학(Art Institute of San Francisco)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순수 미술을 공부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학생들의 외모와 사생활과 그리고 저들이 그리는 그림들이 저에게는 대다수가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학생들 중에는 동성애자들도 있었고, 쉬는 시간에 대마초를 피우는 것은 예사로운 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그리는 그림들 대부분이 너무 잔인하고도 포학한 내용이 많았으며, 인간의 성에 대해서도 너무나 문란하고 난잡하기가 짝이 없는 마치 지옥 세계를 방불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내가 저들과 함께 공부하려고 하니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 학교에서 졸업할 때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졸업을 눈앞에 두게
진도에 내려와 4년이 안된 시간에 벌써 3번이나 이사를 했을 때 아내가 한 말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도 11년 사는 동안 대여섯 번은 이사를 한 것 같다. 계획도 없이 이사를 하며 새 집으로 거처를 옮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떠나는 날 그 많던 모든 짐들을 다 정리하고 나눠 주고 없앤 후에 가방 몇 개 들고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어렵게 그 많던 짐들을 정리하며 이제 짐 없이 살자고 다짐하며 살았지만, 십여 년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또 무엇이 그렇게도 많이 쌓였던지 이것저것 다시 버리고 나서 가방 몇 개 들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땅 끝인 진도에 오면서는 또 다짐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4년도 채 안된 시간에 다시 이사를 하며 쌓아놓은 짐들을 정리하니 그렇게 말할 만도 하다. 무슨 짐들이 이렇게 많은지 짐을 옮길 때마다 나눠줄 것과 버릴 것이 그렇게도 많은데 쌓아놓고 살았던 것이다. 이사를 하며 버리는 연습을 하는 것 같다. 아니 솔직히 지금도 아직 박스에 담겨 풀지 못한 짐도 있다. 다시 언제 또 거처가 옮겨질지 모르는 생활에서도 당장 쓰지 않는 것들은 쌓아놓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천국에 가야 할 때도 너
목회자 모임에서 부산에 있는 Y목사님이 대표기도를 하면서 “예수님은 왕이시요,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했는데 그것이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 믿기 전에는 열심으로 도를 닦아온 ‘수도자’였다. 알지 못하는 전능자를 찾아서 자신과 합일을 이루며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서 참선을 해왔다. 그것을 위해서 직장을 바꾸기도 했고, 설악산 지리산 등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련을 쌓는 경력이 아주 많았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고, 베드로처럼 주님 기뻐하시는 신앙고백을 하는가가 궁금했다. 그의 얘기로는 기도원에서 어떤 목사님을 만나 영성에 관한 대화를 나눈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 목사님은 그에게 최고의 큰 도(道)를 알려주겠으니 믿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면서 십자가의 도를 전해줬다는 것이었다. 그 후 산에다 텐트를 치고 몇 개월 함께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며 기도하는 생활을 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여러 가지를 경험했는데 이런 것도 있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한 번은 기도하는 데 하늘에서 레이저 광선 같은 빛이 자기 머릿속으로 들어오면서 지금까지 도를 닦으며 쌓아온 모든 것들을 부수며 날려버
물이 0˚에서 얼음이 되고 100˚에서 끓는 현상을 우리는 생활에서 마냥 보고 지나친다. 그야 물이니까 그런 거지라고. 이런 현상은 무슨 힘에 의해 생겨나는 것일까. 저절로 얼고 저절로 끊는다는 자연주의적 사고로 만족할 수 있을까. 대개 사람들은 현상만 받아들일 뿐 그 배후는 생각해보려 하지 않는다. 그야 전문가가 다룰 문제라고 더러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묻노니 현상이 먼저냐 현상되게 한 원리가 먼저냐? 즉 물이 늘 그러하니 그것이 원리가 되었는가? 아니면 물이 늘 그러하도록 하는 배후의 힘으로 원리가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람들은 원리보다 현상에 생각을 집중하고 여기서 더 나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현상을 추구해 원리 같은 것이 있노라고 결정하겠다는 것이 소위 귀납적(歸納的)방법이라 한다면, 현상 배후의 어떤 원리 혹은 법칙이 있어서 현상이 나오게 됐다고 생각하는 바가 소위 연역적(演繹的) 방법이다. 과학은 귀납적이고 철학은 양자수용적이고 신학은 연역적이라는 것이 학문의 성격에 의한다. 선원리(先原理) 후현상(後現象)은 성경적 교리이다. 세상만사가 있어서 창조주를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계셔서 세상만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창조론 사상이다. 현상
80고령 나의 친구들은 이미 60대에 틀니 신세를 졌다고 하는데 나는 80이 넘어서야 틀니를 넣고 다니게 됐다. 따라서 틀니와 나와의 친숙 관계는 매끄럽지 못하다. 어느 때는 틀니를 집에다가 빼어놓은 채 집을 나섰다가는 뒤돌아 와서 다시 틀니를 착용하곤 한다. 그때 틀니는 외롭게 주인을 불러도 주인은 말없이 제 가실 길 가시다가 되돌아와서 다시 그를 알아 모실 때 틀리는 외롭지 않단다. 틀니의 존재 이유는 나 아니고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밤낮 틀리는 내 생각에 자고 깬다. 내가 입에 넣어주지 않으면 틀리는 보기도 흉측스럽고 따분하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틀니를 아주 달갑게 여기지도 않는다. 아직 그것 이용에 서투른 만큼 밤에 빼어 뒀다가 아침에 착용할 때마다 이놈의 외계물이 왜 입에 틀어 와야 하느냐는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사실 착용한 지가 몇 개월밖에 안 되어서 그 틀니가 들어올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 않는다. 다른 생니들도 이질감을 느낀다. 그러나 틀니도 이런 감정들을 알지만 자기의 존재 이유가 천래(天來)의 생니 사이에 보존 역을 해야 한다는 치공 틀의 제조 목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싫어도 들어와야 되고 미워도 다시 한 번 미움 받아도 들어와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의 배를 빌려 가르치시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5:4)고 해 그들이 나가 두 배 가득하게 고기를 잡았고, 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요21:6)고 했을 때 순종했더니 153마리를 잡았다. 수가 성 우물가의 여인이 5명의 전 남편이 있었던 것과 현재 남편도 제 남편이 아닌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요4:17~18) 지적해 그녀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는 눈을 뜨게 하시어 구원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십자가에서 죽어 3일 만에 다시 살 것을 여러 번 예언하셨다. 사도행전에서 성령 충만한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교회에서 약속한 헌금을 빼돌린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베드로는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행5:3),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행5:9)고 책망했다.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가이사랴의 빌립 전도자 집에 유할 때 네 딸도 유언자로 있었는데 아가보 선지자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될 것을 허리띠로 예언했다(행21:8~12). 바울이 배 타고 로마로 가는데 행선에 하물과 배 및 생명에도 타격이 있을 것(행27:10
그 동안 모아온 글들을 엮어 ‘우리는 주님의 동산이다’이란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그리고 졸작이지만 여러 선, 후배 목회자들과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막상 누구에게 선물한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고, 우체국을 통해서 보내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책을 받았다는 연락조차 없었지만 대부분 핸드폰으로 말이나 글로써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그들 중에는 감동 있는 글이기에 몇 시간 만에 다 읽었다거나 부부가 함께 읽었거나 교인들의 모임에서 독후감을 나눠봤다고 알려줬다. 이 목사님은 신학교 교수, 병원 원목, 교회 담임 목회자 등을 역임한 선배이시다. 이 분이 카카오톡으로 나에게 글을 보내주셨다. “김 목사님, 선물해준 책을 매일 밤마다 한 편씩 읽고 있어요. 매 편에서 귀한 의미를 얻습니다. 앞으로도 매일 밤에 한 편씩 읽을 거예요” 두 달이 지난 후 그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밤 마지막 편을 읽었어요. 그동안 잠자기 전에 한 편씩 재미있게 읽어왔어요. 179페이지에 오자가 있던데 고치면 좋겠어요” 이 분은 연세가 우리 나이로 88세인데 어쩌면 후배가 쓴 책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눈의 피곤으로 책 읽기를 그만 둘 수 있을 텐데 끝까지 읽어주셨
지난 원고에는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상황에서 예수님이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자기의 죽음을 땅에 떨어져 심겨지는 밀알의 비유로 말씀하신 것에 나타난 의미를 살펴봤다. 이번에는 그 말씀의 연장선에서 예수님이 자기의 증언을 영접하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질문과 그것에 대답하신 말씀에 담긴 인자의 존재에 관하여 살펴본다.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무리의 반응을 전달한다: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말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12:34). 무리는 율법에 기초한 메시아관을 지적하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인자에 관하여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함을 언급한다. 여기서 무리가 가진 메시야관이 무엇이며 또 그들이 올리어지심에 관한 예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제시된다. 먼저 무리는 율법이 그리스도의 영원한 현존을 말한다고 간주한다. 예수님은 그의 사역에서 지금까지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율법이 무엇인지는 구체
“그 이유를 말해주마. 처음에는 나도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단다. 지금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하지만 오늘도 내가 계속 더 크게 외치고 울부짖는다면 그들이 나를 변화시키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겠니?” 엘리 위젤, 리처드 D. 헤프너 공저(共著) ‘이방인은 없다’(산해, 6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옛날 소돔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기 직전까지, 심지어 유황불이 떨어져 성이 망하는 그 날 아침까지, 성문에 서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친 이방인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그의 말을 듣고 약간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차츰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외쳤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변함없이 외치고 있는 이 이방인의 말에 감동받은 아이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불쌍한 아저씨, 아무리 아저씨가 외쳐도 사람들은 전혀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시나요?” 그 말을 들은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도 이들이 변화되지 않는 것을 알지. 하지만 오늘도 내가 계속 더 크게 외치고 울부짖는다면 그들이 나를 변화시키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겠니? 나는 그
둘째로 일관성이란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균등하게 적용됩니다.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성경의 해석과 법의 적용에 있어서 일관성(균일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특혜나 무시가 없을 때 분파가 생기지 않고, 지역감정이 생기지 않습니다. 과부나 세리 또는 죄인의 영혼이나 서기관 혹은 제사장의 영혼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이든 유다든 사마리아이든 어느 땅이든지 간에 균일하게(일관되게) 실천하신 예수님을 봅시다. 세리의 집에 유하시고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용서하지 않으셨습니까? 남의 자녀는 접시 하나만 깨도 부주의한 녀석이 되고 내 아이는 장독을 깨도 “어디 다친 데는 없니? 장독이나 된장은 또 사면 되는 것이니까”하는 식의 적용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하는 기독교의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톨스토이의 이야기 중에 “빵을 보상한 작은 악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악마 두목이 승진을 기다리는 작은 악마의 능력 시험을 위해 농부를 화나게 해주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농부는 여느 때처럼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한낮이 되어 점심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열었으나 빵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작은 악마가 먹어치워 버린 것입니다. 농부는 허기졌으나 심성이 착
비밀유지는 상담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에 하나이지만, 위급한 상황들을 고려한 예외가 있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알려줘야 하는 원칙이기도 하다. 비밀유지가 기본 원칙이지만 예외가 있음을 미리 말해주는 것이다. 첫째, 내담자나 타인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이다. 상담을 하러 와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울하거나 속상하거나 불안할 때,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 너무 화가 날 때,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살이나 타살을 암시하는 말을 할 때는 홧김에 한 말 일지라고 절대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한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진심으로 의도가 있는지, 방법을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해서 위험의 정도를 가늠해야 한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그친다면 절대로 스스로나 남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유서를 쓴다든지, 주변 정리를 한다든지, 때와 장소, 방법 등 구체적인 계획을 말하고 의도를 드러낼 때는 당장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지켜볼 수 있는 가족에게 연락한다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