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렵고 각박한 시대에 살고 있다. 가장 가까웠던 친구를 성폭행하고 죽이고 시체유기까지 하고 있다.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고 이곳저곳에서 비틀거리며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공공질서를 파괴하며 가정에서 폭력이 빈발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 동원된 경찰에까지 도전하고 있으며, 국가 재산을 파괴하는 도전 또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단체, 모든 조직, 모든 기관의 지도자들마다 곪고 썩어 터지고 있는 각종 부조리의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다.같은 교단 안에서도 편당을 짓고 내편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도 무조건 반대부터 한다. 한 사람의 인격과 한 단체를 리드 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다고 해도 나와 사상이 다르고 내가 속한 파당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면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좁은 안목에 매여 있다면 교단의 미래를 열어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무엇인가?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 해결의 어떤 희망이 보이는가? 정말 이 어려운 시대, 병든 기관과 단체를 치료하고 구원할 신기한 명약이라도 갖고 있는가? 객관적으로 볼 때 분명
태국에 갔을 때 호랑이 쇼를 본 적이 있다. 조련사가 호랑이에게 명령을 하고, 때로는 채찍질을 했다. 혹시나 야성이 발동하여 갑자기 ‘어흥’ 하고 확 덤벼들지는 않을까 마음 졸이기도 했다. 그러나 던져주는 고깃덩어리에 머리를 조아리며 덥석덥석 받아먹고,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복종하고 있는 것이었다. 신기하면서도, 맹수가 이렇게 고분고분해지도록 훈련된 과정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짠한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쇼를 하고 있는 호랑이와, 목회자의 모습이 겹쳐지는 듯해서, 쇼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이 혹시 오늘날 우리 목회자의 모습은 아닐까, 아니 내 모습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바울은 로마서 첫 머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라고 선포하면서 시작한다. ‘벤허’ 영화에서도 보듯이, 로마시대는 영웅이 활개 치던 시대다. 모두가 출세가도를 달리며 영웅이 되고자 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메살라’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죽마고우인 ‘유다 벤허’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만다. 그리하여 ‘유다 벤허’는 발에 쇠고랑을 차고 전투함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도
강원도 정선군 태백시 소재의 함백산은 해발 1,574M이다. 함백산 주름은 동쪽의 태백시와 서쪽의 영월 정선군의 경계를 이루며 뻗혀있다. 2013년 침레교 총회에서 여는 목회자부부 영적성장대회가 열리는 오투리조트를 찾아가는 길은 하늘을 오르는 고원지대의 산행길이었다.“웃음” “회복” “도전”의 주제로 열린 102차의 침례교 한마당의 잔치는 행복했고 즐겁게 함께 웃는 전국 목회자부부 친교의 날이었다. 모두가 느끼는 것은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런 고원의 도시, 산소의 도시, 바람의 언덕, 안개의 도시를 와 보겠는가’는 것이다. 새벽부터 달려온 동청주지방 사모님들의 선발팀과 임원 목사님들의 사모님들이 여러 가지 준비 작업을 도울 수 있었으며 화합의 차원에서 가슴에 달린 노란 ‘스마일배지’는 연신 미소를 머금게 했다.5월은 행사가 많은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등 가정적이며 은혜를 보답하는 가정의 달이라고도 말한다. 그래서 인지 교회나 모든 기관들에서도 바쁘게 지내는 일상들로 동선이 넓혀져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교단에도 중요한 행사들이 영적 성장대회 책자에 광고로 나와 있었다. 5월30일-6월1일의 제23회 침례교 원로목사부부 초청 위로
집에서 기르는 같은 동물인데도 고양이는 따뜻한 방에서 주인과 함께 자고, 개는 추운 마루 밑에서 잔다. 왜 그럴까? 과학적이거나 실제적인 대답은 아니지만, 우리 조상들에게서 내려오는 대답이 있다.먼 옛날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개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고 있었는데 그 정성이 남달라서 비록 자기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개와 고양이를 굶기는 법은 없었다. 주인의 이 지극한 정성에 보답하기 위하여 개와 고양이는 하나님이 가지고 있다는 귀한 보물을 훔쳐다가 주인을 부자로 만들자고 합의를 보았다.그리하여 둘은 천신만고 끝에 보물을 구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도중에 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래서 개는 헤엄을 치고 고양이는 보물을 입에 물고 개의 등에 업혀 강을 건너고 있는데 무심코 개가 고양이에게 말을 걸자 고양이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 바람에 그만 입에 문 보물이 강물 속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 아닌가! 그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여기서도 재난이 되어서 만사를 그르치게 된 것이다. 개와 고양이는 안타까워서 떨어진 강물 속을 들여다보며 발을 동동굴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개는 추운 강바람을 쏘이며 서성거려봐야 헛일이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고양이
5월 마지막 주일이 지났다. 가정의 달이라서 그런지 행사들이 교회 안에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행사가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이다. 가정이야말로 우리의 삶의 보금자리요 행복의 안식처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가정이 행복하도록 복을 주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의 자료가 없어서 1990년대 자료를 보니 미국에서는 하루에 9077명이 태어나는데 그 중 1282명은 사생아이고, 하루에 5962쌍이 결혼하는데 그 중 1986쌍이 이혼을 한다고 한다. 또 하루에 2740명의 아이들이 가출하고, 성폭력은 8분마다, 살인은 27분마다, 강도는 78초마다 일어나고 있으며 33초마다 자동차가 분실된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의 피티릿 소로킨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결혼 5건 중 1건이 이혼으로 끝나고 있는데 부부가 모두 그리스도인으로 매일 가정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경우 1015건의 결혼 중 단 1건의 이혼이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더라도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경교육과 가정예배 및 기도를 생활화해야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될
오월이 다 돼가는 오늘 대전에서는 눈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이른바 ‘꽃샘추위’일진데 벚꽃위에 무심하게 내리는 눈이 가관이라 한컷을 남겼다. 파르르 떨다 못해 코 빠진 벚꽃잎이 봄바람에 흩날려보지도 못하고 때 모르는 진눈깨비에 애처롭게 부대끼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한라산의 때 아닌 눈꽃모습이 보인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아침마다 옷장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 코트를 입을까, 봄 재킷을 입을까? 뭐, 마음이야 무겁고 두꺼운, 무엇보다 너무 입어서 지겨운 코트 대신에 가볍고 화사한 봄 재킷을 입고 싶지만, 섣부른 선택은 감기를 자초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꽃샘 때문이다. 예쁜 이름에 속으면 곤란해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 이런 무시무시한 속담까지 있을 정도니까. 어쩌다가 거를 법도 한데 꽃샘추위는 꾸어다 해도 한다고 할 정도로 꽃이 필 무렵에는 꽃샘이, 잎이 필 무렵에는 잎샘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특히나 춘분 즈음에 꽃샘은 겨울 못지않게 매섭고 차기로 유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꽃샘바람의 실체는 소소리바람이다. ‘소소리’가 본래 ‘회오리’를 뜻하는 말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어떤 시인이 ‘성깔 남은 바람’이라고 표현했던 시구가 절묘하게 느껴진다
부부도 서로 이해 못하는 시대이다.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그대 있음에 / 내 맘에 자라거늘. / 오,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 나를 불러 손잡게 해(김남조의 시, ‘그대 있음에’)우리는 얼마나 남의 근심을 위로하고 남의 고독과 아픔에 동참하고 있는가? 에리히 프롬은 남을 이해하는 것이 사랑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이해하다’는 영어 단어가 ‘understand’ 아닌가! 그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 밑에 서서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그래야, 그럴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의 절실한 사정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인생을 살아오면서 눈물 나도록 고마웠던 사람이 누구였던가? 모두가 한결같이 자기를 이해해 준 사람이라고 말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인생의 험한 고비를 넘을 때, 찾아와서 위로해 주고, 이해한다고 손을 잡아주고, 함께 울어준 사람, 그 사람이 가장 고마운 사람인 것을…. 우리는 얼마나 내 주변 사람을 이해하고 사는가? 내 부모, 내 형제, 내 자식, 내 친구, 그리고 나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얼마나 이해하고 위로하며 사는가? 왜 우리는 바쁘다는
결과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질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지고 하나님께 원망과 불만을 토하지 말자.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시대의 뛰어난 주인공이 되라. 혼인잔치 집에 손님이 되지 말라. 구경꾼도 되지 말라. 뒷일이나 처리하는 자도 되지 말라. 다만 그 집에 주인공이 돼야 한다. (시31:15)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음을 알자.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참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거짓되고 허망하게 살지 말아야 한다.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추잡한 인생을 살지 말아야 한다. 알차고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텅빈 인생, 공허한 인생을 살이 말아야 한다.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인생,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바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버려야할 것들이 있다. 무기력한 사람은 생의 의욕이 없다. 적극적인 정신과 능동적 자세가 부족하다. 썩은 물고기가 탁류에 떠내려가듯이 인생을 무의도식 속에서 힘없이 살아간다. 그리스도인들은 맑은 눈과 기쁘고 환한 얼굴로 정열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또한 무관심한 사람은 삶의 목표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 무사안일 속에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대하여 열의가 없고 성의가 없다면, 불성실한 태도로
우리 사회는 세계사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겪어왔다. 이로 인해서 여러 측면에서 사회적 변화를 초래하게 됐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가족의 변화라 할 수 있다.가족이 변화되는 양상은 가족의 구조적, 기능적, 변화로부터 가족관계의 변화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고 변화속도도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가족의 구조적 측면에서 가구규모가 축소됐고 가족의 형태적 측면에서는 부부중심가족, 이외에 편부모가족, 독신 가구, 노인1인 가구, 소년소녀가장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하게 됐다.그리고 가족의 기능적 측면에서는 가족의 생산기능과 보호기능, 사회학 기능 등이 약화되게 됐다. 가족의 관계적 측면에서는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관계, 노부모와 자녀관계는 과거의 권위적이고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변하고 있으며 또한 부모와 자녀 관계중심의 가족관계에서 부부관계 중심의 가족관계로 변하고 있다.그런데 우리사회의 이러한 급격한 가족관계의 변화는 가치관의 혼란이나 가족 간 갈등을 심화시켜 가족 내의 심각한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경제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가정이 늘어나면서 가족 내에서 가족 간
지난 주간에 성도님 한 분이 대전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서 성도 몇 분과 함께 심방을 다녀왔다. 심방을 다녀 온 후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서가 아니고 함께 다녀오신 성도님 한 분 때문이었다. 그 분은 왕복 두 시간 반 동안 말씀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원래 평소에도 말씀이 없으셨던 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가 나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 성도님은 치매가 진행 중인 분이셨던 것이다. 육 개월 전에도 서울을 다녀 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사이 치매가 더 진행된 것 같았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셔서 찬송가도 열심히 부르곤 해서 그 정도까지 진행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는데 말씀을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어쩌다 한 번씩 미소 짓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가만히 생각해보니 요 근래 그 분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배 끝나고 나가면서 나에게나 다른 성도들에게 건네던 인사말을 그냥 웃음으로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이 없어진다는 것은 치매의 대표적 증상 중의 하나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분은 우리 교회에서 그야말로 ‘기둥 같은’ 일꾼이었다. 그런데 삼 년여 전부
지난 달 말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UCF) 서비스경영학과의 정모 조교수가 수업 중 “너희들 다 죽어가는 표정인데, 내가 지금 무차별 살인(killing spree)이라도 저지르는 거야, 뭐야?”라는 발언을 했다가 한 학생의 고발로 학교 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이에 대해 정교수는 “당연히 농담이었다. 학생들도 함께 웃었다”라고 징계의 부당함을 주장했지만 징계는 철회되지 않았다. 최근 수원의 한 교회 목사가 설교 중에 부적절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인권위원회의 징계를 받고 법원으로부터는 그 징계 조치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목사는 설교 중 “하와가 사과 2개를 몰래 따서 삼켰는데 씨앗은 소화가 안 돼 뱃속에서 점점 올라와 이것이 가슴이 됐다”며 “여자의 치마와 설교는 짧을수록 좋다”고 했다. 이에 성적 굴욕감을 느낀 성도가 인권위에 진정을 했고, 인권위는 목사의 언행이 성희롱이라고 판단했고, 해당 목사는 “성희롱 의도가 없었고, 혐오감을 느낄만한 언동이 아니었다”며 인권위의 징계조치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했지만 법원은 “언동이 성경과 전혀 무관한 내용으로 여성의 노출과 신체를 비하하는 내용이었던 점 등에 비춰 이로 인해 신도들이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고
인생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가지고 한 번뿐인 생애를 보다 확고한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보람 있는 인생과 행복한 생애를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목표도 서있지 않고 삶의 자세도 확립되지 않을 때 보람 있는 인생을 살 수 없다. 세상은 너무나 급속히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반석위에 세운 집처럼 든든히 서 있어야 한다. 결단코 붕괴되지 않는다. 뿌리가 약한 나무는 바람에 쉽게 쓰러진다. 믿음이 깊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에 바람에 흔들린다. 말씀에 깊이가 없는 자, 기도의 깊이와 영교가 깊지 못할 때 육신의 바람에 넘어진다. 힘없는 집은 폭풍에 무너진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지녀야 한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기도로 강한 자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불능하시다. 그러나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강하고 모진 바람이 몰아 처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모진 환란과 시험 속에서도 만세반석처럼, 뿌리 깊은 나무처럼 늠름하게 서야 한다. 긍정적인 사고와 믿음으로 인생을 살아야 의미 있고 보람 있게 살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다. 기쁜 노래를 부르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있고
가정의 달 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가정과 학교 등에서 따뜻한 정을 확인할 수 있는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기념일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가정과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은 급속한 산업화와 이기주의 때문인지 어느 시점부터인가 가족의 대화가 단절되고 끈끈한 유대도 사라져 가고 있으며 부모, 스승에 대한 존경심도 예전 같지 못하다. 아이들을 학대하고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고, 또한 우리 주변에서 무관심과 냉대로 소외되어, 홀로 사는 독고노인의 문제는 앞으로 우리 모두가 짊어지고 나가야할 문제로 자리 잡게 됐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가정, 학교, 우리 이웃의 따뜻한 정을 복원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개인 이기주의적 생각을 버리고, 사회의 구성원, 공동체 의식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에 격려하고 믿음을 주고, 학교에서는 제자를 사랑으로 다스리고 스승에게는 존경심을 보여야 하며, 더욱 우리 이웃 외롭고 쓸쓸하게 소외된 독고노인들을 비롯하여 소년 소녀가장 등 불우한 이웃을 살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 주변을 사랑하며
며칠 전 국제선 항공에서 모기업의 임원이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로 SNS에 퍼지면서 일파만파가 되었고 결국 그 임원은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사건은 지난 15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대한항공 국제선 항공기 안에서 벌어졌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당시 비즈니스석에 탑승한 포스코에너지 상무급 임원 A씨가 기내 서비스 등을 문제 삼아 여승무원에게 폭행을 행사했다. 이 사건이 20일 일부 언론에 보도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당시 상황을 정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카카오톡 화면 갈무리 자료가 퍼지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이 자료에 따르면 A씨는 탑승하자마자 자신의 옆자리가 비어있지 않은 것을 문제 삼기 시작해 아침식사 메뉴, 기내 온도 등 줄기차게 불만을 제기했다. 심지어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따로 삼각 김밥과 라면을 주문해놓고 라면이 제대로 익지 않았다며 수차례 다시 끓여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급기야 A씨는 두 번째 식사 서비스 과정에서 읽고 있던 잡지책 모서리로 여승무원 눈두덩이 쪽을 때렸다. 그러나 기내 사무장이 가격 사실을 확인하려들자 자기가 책을 들고 있었는데 승무원이 와서 부딪혔다며 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이 같은 일은
오늘도 자유로이 흐르는 한강을 지난다. 전철의 창가에서 보이는 가장 사랑스런 벚꽃나무 가지에 연분홍 꽃잎을 매달고 서있는 한강변의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활짝 핀 벚꽃 구경하기 위해 서울의 시민들은 여의도를 향해 나들이를 나서는 봄이 아닌가. 그곳에 우리 총회의 빌딩이 건축되어지는 것에도 감사를 드린다.얼마 전까지 우리는 어디서나 앉으나 서나 전쟁의 소문으로 한반도는 어려운 난국에 처해 있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세계 종군기자들이 280여명이 몰려와서 전쟁이 일어날 때의 ‘특종’를 위하여 체류하고 있었다. 우리는 분명 국가적인 위기를 맞고 있었다. 외신에서는 한반도에서의 최악의 분위기가 고조 되어있다고 보도했고, 언제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계의 화약고로 전쟁의 소문은 널리 퍼져있었다. 언제 북쪽 지도자의 오판으로 미사일을 발사할지 세계의 눈이 집중됐다.전쟁의 소문이 늘어갈수록 우리 크리스천이 해야 할 것은 이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할 때이다. 성경 속의 구약의 스토리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은 위기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께 나라를 위하여 간청할 때마다 하나님은 도움의 손길을 펴주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