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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만 밟고 가는 행위

 

어느 날 인가, 잘 알고 있던 사람이 연락이 왔다.

교회를 옮겨야겠는데 좋은 교회를 한 곳 소개 해주세요

아니 지금 출석하는 교회가 있지 않습니까?”

있기야 하지요. 그런데 목사님 설교가 도무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아서요. 좋은 설교를 하시는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 좀 없어요?”

그 사람은 좋은 설교에 대한 갈망으로 교회를 옮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좋은 설교란 없습니다 오직 바른 설교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어떤 설교를 듣더라도 언젠가는 싫증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출석하는 교회에 좀더 진득하게 눌러 있으라고 권면 했지만 이미 기존 교회에서 마음이 떠난 그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는 힘들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예언 아닌 예언을 했다.

당신이 좋은 설교를 찾아서 교회를 옮기고, 설혹 합당한 교회를 찾더라도 조금 지나면 더 좋은 설교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이다.

주변 사람 가운데 이 친구와 같이 비슷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좋은 교회 없습니까?”

은혜스럽게 예배드리는 교회를 찾고 싶은데요

찬양이 살아 있는 교회에 가고 싶은데요

기도가 살아 있는 교회는 없습니까?”

사랑이 충만한 교회를 가고 싶은데요

조직이 잘되어 있는 교회는 없습니까?”

부담없이 교회생활을 하고 싶거든요

좋은 설교를 하는 목사님이 목회를 하는 교회

 

마치 과일가게에서 좋은사과를 고르듯이 좋은그 무엇을 찾아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자신이 먹고 있는 사과보다 더 맛있는 사과가 있다면 서슴치 않고 다른 가게나 백화점을 찾아 간다. 소비자가 좋은 제품을 고른다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제품을 찾는 소비자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서 상점과 백화점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좋은 설교좋은 예배를 찾는 성도들을 위해서 교회는 그들의 갈망에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교회가 더 좋은그 무엇을 찾는 성도들의 욕구에 맞추다보면 자칫 본질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다.

 

사과의 맛을 더욱 좋게 하기 위한 품질 개량을 하기 보다는 사과의 빛깔을 더 윤기 있게 하기 위해 금지된 약품처리를 하고 더 많은 농약을 뿌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배에 참여 하는 사람들은 예배 인도자를 위해, 내 마음이 준비되기 위해, 설교자를 위해, 은혜가 충만하기를 위해, 기도를 해 봤는가?

 

흉내만 내는 제물,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니까, 마음을 다른 곳에 빼았기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예배가 은혜가 되겠는가? 그저 성전 뜰만 밟고 가는 형식만 갖추는 것이다. 마음이 빠졌는데 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겠는가? 내게는 은혜가 되는가? 성령의 깊은 감동을 받으시겠는가?

 

이러한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다른 교회를 찾고 갈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것은 또 다른 곳을 찾아서 평생 방황하고 다니다가는 언젠가 지쳐 쓰러지고 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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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