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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국가조찬기도회의 목적과 필요성

그 어느 때보다 국가를 위해 기도해야 할 이때, 나라와 민족, 경제 번영, 국민화합 그리고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제44회 국가조찬기도회가 지난 3월8일 개최됐다.
국가조찬기도회는 디모데전서 2장에 근거하여 기도생활의 권면을 실천하는 각 개인의 신앙의 표현이다. 기독인들은 직분과 사명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무엇보다도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을 위해 간구와 기도와 도고(중보기도)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이다.


특히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대통령과 국가지도자 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백성들이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함이다.
권세를 갖고 있는 사람은 영향력이 있어 상황에 따라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도 하고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자신이 가진 권세와 힘과 영향력이 참으로 아름답게 행사되도록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국가지도자를 향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조찬기도회는 자연인에 대한 기도가 아니라 대통령직과 국가지도자에게 부여된 그 직을 위한 기도회로 그 직을 수행하는 국가지도자를 통해 국민에게 행복과 안정 평안을 주도록 그 사명을 잘 감당 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하게 이해되어야 할 헌법 제20조 2항에서 정교분리원칙은 국가가 어떤 종교를 특별히 보호하거나, 특권을 부여하거나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며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는 자기가 원하는 종교를 자기가 원하는 방법으로 신봉할 자유를 말한다.
그러므로 정교분리(政敎分離)란 정치와 종교, 국가와 교회·사원(寺院)과의 분리의 원칙을 말하는데, 이것은 국가는 국민의 세속적(世俗的)·현세적 생활에만 관여할 일이지 국민의 신앙적·내면적 생활에는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즉 국가는 각개인의 종교활동 즉 신앙생활을 인위적인 법적으로 강제 제한한다든가 간섭해서는 안되며 자기의 신앙에 따라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앙생활을 제한하기 위해 정부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최근 불교계는 기독정치인으로서 소신껏 자기 신앙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하는 기독국회의원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낙선대상자로 지명하여 발표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2월1일 미국 워싱턴 DC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제60회 미국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조계종 차기 종정인 불교 지도자가 종교간의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와 같이 이제 더 이상 불교계는 기독교 고유 신앙의 다양한 기도회 형태중의 하나인 국가조찬기도회에 대해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제 불교계는 글로벌시대를 향한 대한민국 선진국가로서 국민화합을 위해서라도 다종교사회에서 좀 더 성숙된 종교활동이 이뤄지도록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는 언행은 삼가야 하며 고유한 신앙활동을 존중하는 품격과 함께 종교간 이해와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장헌일 사무총장 / (사)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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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