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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혹 (1)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7
김진혁 목사
뿌리교회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저는 많은 싸움에 연루됐습니다. 그 싸움의 발단은 거의 ‘반말’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전주에서의 시간들이 저를 더욱 거칠게 만들어 놓았던 것 같습니다. 등교하고 2~3일이 지났습니다. 복도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한 녀석이 제 어깨에 팔을 무겁게 걸칩니다.


“에이! 너무 무섭다~, 너무 폼 잡지 말지?” “죽이기 전에 꺼져라.”


 깜짝 놀란 토끼눈이 되어 금새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친구들을 여럿 데리고 옵니다.


“야, 너 어디서 왔냐? 중학교 어디 나왔어?”


“…참, 별 희한한 놈들 다 보겠네, 그거 알아서 뭐하게…다시 한 번 반말했다가는 머릿가죽을 벗겨 버릴라니까 그냥 꺼져라. 응?” “끝나고 좀 남지?”


그렇다고 정말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학년 갈색 넥타이가 아니라, 한 학년 위, 그러니까 저하고 나이가 같은 2학년들까지 저하나 잡겠다고 대거 몰려왔습니다. 이후로도 하루가 멀다하고 복도로, 교실로 쫓아다니는데 귀찮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러다가 학교를 또 떠나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도 피하지 않고 싸우러 다녔습니다.


외로웠습니다. 동창 하나도 없고, 아는 친구도 하나 없으니 늘 혼자였습니다. 그렇다고 얼굴이 붉히거나 옷이 풀어진 채로 귀가하면서 부모님께 자랑스럽게 말씀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전주에 있는 영수와 친구들을 불러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일은 학교를 가지 않고 고속터미널에서 친구들을 마중해서 그대로 학교로 쳐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야, 나 요즘 귀찮아 죽겠다. 아까도 2학년 교실로 불려가서 싸우다가 다구리만 당했다.”


“그려? 맞은거여? 뭐여! 이 형님한테 좀 배워라. 아무리 많아도 맞으면 안 되지. 나도 요즘 그러고 다닌다. 아까도 농구장에서 한 판 하고, 교실에서도 한 판 했다.”


외로운 놈은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상황을 보니 영수 녀석은 저보다 더했습니다. 그냥 혼자 해결할 수 밖에 없었죠. 그간 제법 친해진 녀석들도 생겼습니다. 알아서 ‘형’이라고 불러주며 다가온 녀석들인데, 중학교를 이 근처에서 나오지 않고 나와 같이 타지역 출신들이었습니다. 방과 후 녀석들과 가끔 당구장에 가는데, 이곳에서도 저는 편칠 않았습니다. 저 끝에 덩치 큰 녀석이 저를 쏘아보는데, 이건 또 뭔가 싶어 함께 쏘아 보았습니다. 


“야, 너 이리 와봐.”


겁도 없이 저를 부릅니다. ‘저게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당구채를 옆에 있는 녀석에서 살짝 던져 맡기고 쫓아갔습니다. 넥타이도 매지 않고 이름표가 왼쪽 가슴 주머니에 들어있는데, 분명히 3학년이었습니다. ‘아, 3학년이네, 귀찮아졌구만’


“너, 중학교 어디서 나왔냐? 집은 어디고? 이름은?”


“김진혁입니다. 영등포에서 나왔는데요, 집은 사당동인데, 1년 꿇어 전주에서 좀 있었습니다.”


이후로도 이것저것 묻더니, “그래? 이 새끼 이거 맘에 드네. 나 ‘박건일(가명)’이다. 내일부터 나 보면 아는 체 해라.”라고 합니다. 


다음날입니다. 쉬는 시간에 3학년들이 저희 교실로 찾아왔습니다. 


“누가 진혁이냐?”

“전데요.”
“어제 당구장에서 건일이 꼴아본 게 너냐? 새끼, 알고 그런거야? 모르고 그런거야? 재수좋네!”


건일이 형은 3학년 짱이었습니다. 학교가 있는 흑석동에서도 건드는 이 하나 없는 힘의 소유자였는데, 누구 하나 고개 바짝 들고 쳐다보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당돌한 1학년 녀석의 등장이 제법 맘에 들었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건일이 형은 저를 제법 챙겨 줬습니다. 


“진혁아, 2학년 놈들 중에는 맘에 드는 놈이 없어, 이놈들은 다 형 보면 살살 피하기나 하지 누구 하나 쫓아와서 인사하는 놈들이 없어요. 그래서 나는 니가 맘에 든다. 새끼가 겁도 없이 형을 쏘아봐!”


그러면서 뒤통수를 한 대 쥐어박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매점에서 우동을 사주고, 지나가다가 인사를 하면 장난을 걸어주고 하니 어느 순간부터 저를 찾아와 시비를 걸거나 싸우는 녀석들이 아예 없어져 버렸습니다. 저와 제법 많이 다투던 2학년들도 여럿이서 지나갈 때나 쳐다보지 혼자서 지나다가 마주칠 때면 시선을 고정하지 못합니다. 뜻하지 않은 건일이 형과의 관계가 모든 것을 정리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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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