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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present)

 

어느 드라마에 나왔던 대사이다. 재벌 총수가 죽으면서 후계구도를 둘러싼 형제들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때에, 누나가 동생과 대화를 나눈다. “아마 네가 5살 때쯤이었지. 이웃집에 놀러갔다 오더니 그네를 만들어 달라고 떼를 썼다.

 

그때 우리 집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무들이 작아서 그네를 만들 수 없었고, 그네를 만들 수 있는 단 한그루의 나무는 너무 비싼 나무인지라 엄마가 반대를 했지. 그때 내가 아빠와 함께 그네를 만들었다. 그 이튿날 너는 하루 온종일 좋아라 그네만을 탔지.

 

얼마나 많이 탔던지 코피까지 흘리더라. 네가 12살 때에 그네 다섯 개를 만들어준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니?” 쉽게 말해 내가 너를 그렇게 사랑했노라고, 네가 정작 필요할 때에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너의 필요를 채워주었으니 이제 네가 나의 필요를 채워줄 때가 아니겠냐는 암시가 들어있을 법한 고백이었다.

 

이 말에 눈물을 글썽이던 동생이 어머니가 비밀로 해달라는 정보를 누이에게 전달해준다. 그 사랑에 감복한 것이다.

 

살다보면 현재를 놓침으로 인해 후회스러운 적이 몇 번 있다. 오래 전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던 시절 사고가 발생했다. 결혼식 광고를 그만 놓쳐버린 것이다. 사역 파트너인 전도사가 다 알아서 하던 일이기 때문에 구태여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만 주일 아침이 되어서야 광고가 빠진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낭패였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미봉책으로 예배 시간에 구두광고를 하면 어떠하겠느냐는 의견이 나왔지만 당시 중요한 광고 한둘 외에는 구두광고를 하지 않았고 그때까지 그 누구도 경조사에 대해 구두광고를 해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관례를 깨고 구두광고를 할까말까를 망설이다가 구두광고 대신에 영상 자막광고로 대신하기로 했다.

 

물론 혼주 집사님 내외분에게 머리를 조아려 사과하였고 집사님 내외분은 괜찮다고 이해를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구두광고를 했어야만 하지 않았나 후회가 된다.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그네를 타고 싶은 것은 그가 다섯 살이기 때문이다.

 

열두 살 사춘기에 그네 다섯 개를 만들어 주고 타라 한들 타지도 않을뿐더러 탄다 하더라도 다섯 살 때만큼 신명이 날 리 없다. 모든 것이 범사에 때가 있는 법인데, 지금 생각해도 그 집사님에게는 참으로 미안하기만 하다.

 

며칠 전, 교인 한 분이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부인 되시는 집사님이 목양실에 들어오셔서 기도해 달라고 하셔서 기도를 해드렸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일은 토요일이라 목사님이 바쁘셔서 병원에 못 오실 것 같아 이렇게 목양실로 찾아왔노라 하시는 것이다.

 

그 말의 의미는 설교 준비 때문에 바쁘셔서 못 오실 것이니 이해는 하지만 오시면 더욱 고맙다는 의미였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내일 가봐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사역은 늘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그 주간에 또 다른 장례와 더불어 청소년부 캠프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설교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설교자에게 있어서 설교에 대한 부담보다 더 큰 부담은 없을 것이다. 토요일에 부랴부랴 집중을 하면서 설교에 집중하다보니 병원심방에 대한 생각도 못했을 뿐더러 시간도 나지 않았다. 설교준비가 마쳐진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생각이 난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예배 후에 찾아가리라 마음먹고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에 전화벨이 울린다. 그 아들이었다. 방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결국 그분의 마지막 심방은 불발이 된 셈이다. 담임 목사가 워낙 바빴기 때문이고 그 주간에 유독 일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겠지만 이건 이해를 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평생 한 번 있을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래서 아쉬운 것이다. 장례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부조금을 더 드렸지만 그것이 위로가 될까? 한 번 지나간 사건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인데 말이다.

 

영어의 선물이라는 단어 ‘present’는 공교롭게도 오늘’(present)이라는 단어와 똑같다. 결국 오늘, 현재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내일을 다짐한다. 내일이 오면 이렇게 하리라고 다짐하지만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할 일을 내일 미루면 안 된다.

 

오늘의 예배는 다시 못 올 평생의 한 번의 예배이다. 그래서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설교준비에 최선을 다하지만 간혹 예기치 않게 내 시간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성도들의 필요와 돌봄을 또한 못 본 척 할 수 없는 것이 목회 현장의 딜레마이다.

 

어떤 목사는 토요일의 결혼식엔 주례를 서지 않는다. 그것은 토요일은 모든 성도를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인데 누구에게 특혜를 베풀 수 없기 때문이라는 나름대로의 철학이었다. 그만큼 우리 현장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주일의 사역은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최우선의 사역이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그래도 오늘은 최선을 다해 돌봄과 사역을 병행해 간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오늘 하자. 행여 사랑한다고 고백해야 할 말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지금 하자. 행여 미안하다고 해야 할 말이 있다면 전화를 걸어서라도 지금 하자.

 

오늘(present)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present)이니까.

 

조범준 목사 / 영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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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