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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테라피 3> 나는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얼마 전 상담소를 찾아온 20대 중반 아가씨의 고민이다. 사람들이 자기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도 할 수가 없고,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갈 수도 없단다.

 

직장에 가면 자신을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동료들 때문에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얼마 못 가 그만둬버리는 것이 어느새 패턴이 되고 이제는 취직할 때가 없다.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니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똑똑했던 이 아가씨는 흑인들 사회에서 이상한 아이로 놀림 받았다.

 

‘Nerd’, 즉 공부벌레라는 별명은 미국사회, 특히나 흑인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이 아가씨는 어릴 때부터 똑똑하면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자신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제는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기만 해도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 것을 눈치 챌까 봐 가슴이 철렁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 한 청년은 수련회를 가기 위해 목사님께 자세한 정보를 받았다. 밤에 자매 혼자 수련회 장소에 찾아오는 것이 걱정되었던 목사님이 한두 번 더 물었다. “오는 길은 알겠니? 괜찮겠어?” 목사님이 이렇게 물으면, ‘우리 목사님 자상하기도 하셔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자매가 화를 벌컥 낸다. “목사님! 왜 저를 못 믿으세요!” 이 자매를 한걸음 다가가서 보니 늘 잘나가는 오빠가 있었다. 뭐든 시키지 않아도 척척 잘해 내는 오빠에 비해, 자기는 늘 치다꺼리가 필요한 막내였던 것이다. 그래서 누가 할 수 있겠어?”라는 질문을 하면 난 널 못 믿어로 들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색을 입힌 선글라스를 쓰고 산다. 자라면서 자기만의 필터(Filter)가 형성되고 그 필터를 통해 보고 듣는다. 자기 만의 Life script, 즉 자기만의 스토리를 쓰며 산다. 그 대본이 형성되면, 그 대본에 맞는 증거를 수집하며 산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야. 사람들이 다 날 싫어해.”

 

사람들이 날 못 믿어.” “나는 아무리 애써도 안 돼.” “I am not good enough.” “사람들이 내 뒤에서 내 흉을 봐.” “사람들은 날 버릴 거야, 우리 엄마 아빠처럼.” 자기만의 스토리는 그 사람이 자라온 문화, 어릴 때 경험, 자기의 성격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이 스토리가 써지면 그 스토리에 맞지 않는 모든 다른 긍정적 증거들은 무시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믿어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준 많은 사람들을 보기 보다는, 날 무시하는 듯한 한 두 사람의 태도 때문에 다시 한 번 확신한다. 나는 여전히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상담을 하면서 전환점이 되는 순간은 보통 희생양의 자리(victim position)에서 빠져 나오기로 결심하는 때이다.

 

우리 부모 때문에, 그 때 사회 분위기 때문에, 문화 때문에, 내 남편, 아내 때문에 내 인생이 꼬였다고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며 슬퍼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내가 써 내려온 스토리의 저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 대본에 너무 사로잡혀서, 내 삶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온 많은 사람들은 잊어버렸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스토리를 새롭게 쓰겠다는 결심의 순간이 바로 치유가 시작되는 순간이 된다.

 

 

아픈 동생들이 있는 가정의 장녀로 태어나 우리 가정의 체면을 세울 유일한 보루로 자랐던 필자의 스토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늘 뭔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잘해도 부모님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계속해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어느 순간에 사모가 되었다. 이제는 많은 교인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야 하는 상황으로 나를 자꾸 밀어 넣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난 늘 부족하다는 스토리를 매일 반복하며 절망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에 나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나의 ‘Life Script’가 얼마나 패배감과 자기 연민에 갇혀져 있는지 보게 하셨다.

 

계속 슬퍼해봐야 별로 달라질게 없음을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이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내게 매일 새로운 스토리를 쓰게 하신다. “너는 내 자녀이다(3:16)”, “내가 너와 함께 한다(41:10)”, “너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백성이다(벧전 2:9).”

 

내 스토리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는 어둡고 아팠던 나의 과거가 아니다. 바로 이 순간, 오늘, 하나님과 함께 쓰는 ‘Life script’가 클라이맥스이며, 그 분을 대면하여 만나게 되는 그 날이 또한 클라이맥스이다. 이제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낡은 선글라스를 바꿔 낄때가 됐다. 넓고 크고 총천연색으로 채색된 세상을 똑바로 대면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선글라스로.

 

심연희 사모

RTP 지구촌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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