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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自尊心)과 자존감(自尊感)


근간에 50대 여성이 상담을 요청했다. 남편이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목을 조르고, 주방에서 칼을 가지고 죽인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어서 이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면 조금 마음이 안정되어서 견디곤 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남편을 보면서 많은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여성은 남편을 치료하고자 여러 병원을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남편이 중증이므로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입원문제가 녹록지 않아 이곳에 온 것이다.


사실 이런 삶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서로 좋은 관계를 가지고 살아도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인데 날마다 고성과 폭력과 갈등관계가 깊어 고름을 낼 지경이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남편이 이렇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야기 중에 남편이 어릴 적에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함을 알게 됐다. 형과의 나이 차이가 상당했는데 아마 원치 않는 임신으로 사랑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니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에게 사랑은 고사하고 동물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할 나이에 학대를 받고 자랐으니 그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가지고 살았겠는가? 그리고 이제 결혼을 해서 부모에게 못 받은 사랑을 받으려고 했는데 아내 역시 그 남편에게 줄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계가 돌아가는 데 윤활유가 없다면 아마 그 기계는 얼마가지 않아 마찰로 멈추고 말 것이다. 우리가 어떤 병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외상으로 병원에 입원하면 간병(看病)을 해준다. 그런데 마음의 병은 그렇지 않다. 육체적인 병보다 훨씬 더 중증인데도 그를 이해하거나 배려하거나 도와주는데 상당히 인색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것이 치료되지 않을 때 이혼을 하여 아이들에게 커다란 짐과 또 다른 상처가 되어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남기도 하고, 혹은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는 있다. 몸의 병이 생길 때 이상 기후가 나타나듯이 마음의 병이 있을 때에도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것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과(看過)하는 경우가 참 많은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형태의 남편은 역기능가정에서 산출된 성인아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아이는 성인의 문제를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하게 다뤄야 했던 시절을 보낸 사람을 말한다. , 어린아이에 성인이 겪어야 하는 큰일들과 책임을 느끼며 아이가 아닌 어른처럼 행동해야 하는 압박감을 감당해야 했던 유년기를 보낸 사람을 뜻한다. 또 성인아이는 해소되지 아니한 어린 시절의 문제를 아직 처리하고 있는 성인이기도 하다.


위안을 받지 못한 우리의 내재 과거아(inner child)는 성인이 되어도 우리 안에 그대로 존재한다. 우리의 기억이나 잠재의식 속에는 과거의 사건에 반응하며 이루어진 정서적 찌꺼기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파생(派生)시켰던 사건은 끝이 났지만 여전히 그 반작용을 느끼고 있다. 이처럼 성인아이는 결혼생활에서 어려움을 경험한다.


성인아이의 증세를 가진 두 남녀가 결혼을 하고 가정생활에 들어가면 단지 두 사람이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 사람이 가정생활을 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서 두 사람의 성인과 그들의 과거 속에 존재하는 내면의 아이가 함께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다. 내면의 아이는 각기 다른 가정환경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불평한다.


처음에 결혼을 하면 부부에게 내면의 아이가 두드러지게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신혼 초에는 많은 갈등이 노출이 된다. 사소하게 보이는 일이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실 성인아이가 어린 시절에 거부당하고 소외당했다면 따뜻한 관계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일단 결혼을 하면 각자는 상대방의 내면의 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할 때는 온화하고 사교적인 면모를 갖추고 상대방을 대하던 사람이 일단 가정에 돌아오면 돌변하여 배우자에게 시비를 걸고 싸우려는 태도를 취한다. 결혼생활에서 갈등을 겪는 것이다. 아마 많은 가정에서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이혼 통계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좀 더 냉정하게 이 상황을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육신의 고통으로 신음을 앓고 있는 자는 도울 수 있는데 왜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 자를 도울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그 일말에 자존심 때문일 수가 있다. 자존심 때문에 가정이 붕괴되고, 관계가 잘못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본인 스스로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며 자존심은 타인에 의해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타인이 나를 존중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존감은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는 마음, 즉 본인의 주관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며 남의 말을 수용해가기 때문에 유연하게 바뀔 수 있는 마음이다. 그러나 자존심은 타인이 나를 존경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에 자칫 다른 사람이 더 존중 받는 것에 대해서 상처를 받아 방어하려는 마음에 오히려 삐뚤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자존감을 높여 삐뚤어진 삶, 구부러진 삶을 살지 않아야 한다. 자존감을 높여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행복의 기준이 될 것이다.


행복은 선택이다. 내가 낙심을 선택하면 그 삶은 분명히 불행해진다. 그러나 내가 행복을 선택하면 그 삶은 자기가 선택한대로 행복하게 될 것이다. 이래서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나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큰 문제가 있을지라도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바뀌게 된다. 자존심과 자존감, 행복과 불행, 이 모든 것의 주인은 바로 나다.


이규호 목사  

처음사랑교회

행복가정치유상담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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