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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


인간부재(人間不在)라고 한다. 

사람이 없고 일꾼이 없고 인재도 없고, 지도자도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듣는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언젠가 지도자가 없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 중에 인물이 없다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이 왜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인물이 별다른 사람인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인가, 땅에서 솟는 사람인가, 어디서 빌려오는 것인가도대체 어떤 인물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인물은 우리 가운데에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인물이어야 하고 인물을 인물 되게 만들어야 한다. 지도자를 지도자로 인정해야 한다.


오늘의 풍토에서는

지도자가 나지도 못할 뿐더러 지도자가 지도자 될 수도 없다. 이런 세대에 어느 인물이 지도자로 나설 수 있겠는가? 정신병자 아니고는 나설 사람이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 우리는 인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부정하고, 인물을 죽이는 그런 세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도자이어야 한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지도자이며, 사회에서도 크건 작건 우리는 다 지도자들이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전체가 무너지기도 하고, 전체가 세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지도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지도자의 위상에 서서 지도하며 지도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다. 목자를 세워 양을 다스리고, 아버지를 세워 가정을 다스리며, 왕을 세워 백성을 다스리듯이 위계질서를 세우셨다. 우리는 누구나 다스리고 다스림 받게 만들어졌다.

우리는 모두가 지도를 받기도 하고 지도를 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위계질서 안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고 계신다. 제사장을 세워 온 백성의 죄를 사하기도 하고, 선지자를 세워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전하기도 하시며, 왕을 세워 백성의 안녕 질서를 다스리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축복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귀한 지도자를 주신 것이다. 이 땅에 지도자가 있다는 것은 축복인 것이다. 온 백성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것은 축복 중에 축복인 것이다.

 

우리를 몹시 괴롭게 한다.

정치나 권력은 때로 우리의 마음을 몹시 괴롭게 한다. 정치는 필요악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말 없어도 안되고 두고 보자니 실망만 커지고 아주 복잡하다. 권력은 대체로 타락하고 부패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부패 한다.

이상하게도 권력만 쥐면 타락하게 되고, 권좌에 앉기만 하면 사람이 못쓰게 된다. 좋은 사람도 나쁘게 된다. 가난하던 시절 좋던 사람이 돈푼이나 벌었다고 못쓰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 그런가?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만이 왕이시며, 하나님 말씀만이 법이며, 모든 권세의 주인은 하나님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만이 왕이다. 우리는 그 권세만을 인정해야만 한다. 엑수시아(authority) 권세는 하나님께만 있다.

 

지도자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조건으로는 권위적 지도자, 민주적 지도자, 대표적 지도자, 설득력 있는 지도자, 집행적 행정적 지도자, 지적 지도자, 이렇게 여섯 가지가 있지만, 오늘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지도자는 덕() 있는 지도자인 것이다. 재능도 있고 능력도 있고 권세도 있지만 정작 있어야 할 도덕성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덕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초심(初審)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화다. AD 9세기, 독일 통일을 이룩한 철혈 재상비스마르크이야기다. 나라가 통일되자 왕은 축하연을 베풀고 부하들에게 물었다. “, 왕을 값으로 따지자면 얼마나 되겠는가?” 신하들은 저마다 200억 마르크가 될 거라느니, 점령한 나라의 보화까지 치자면 500억 마르크가 족히 될 거라느니, 심지어 5,000억 마르크니 하면서 왕을 치켜세웠다.

그런데 일등공신 비스마르크만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당신은 나를 얼마로 평가하겠소?” “29마르크입니다.” 그의 조용한 이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예수님께서 은 30에 팔렸으니 거기에서 하나를 감하여 29마르크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큰 경건인 것이다.

스스로를 크게 여기게 되면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처음 부르신 그 순간의 그 상태와 그 진실, 그 겸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한 결 같이 그 성품과 그 진실을 유지해야 한다. 초심(初審)이다.


김근중 목사 / 늘푸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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