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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하게 믿는다”


자원외교 비리로 혐의를 받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은 가득이나 지치고 힘든 국민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더 마음이 무거운 것은 이전의 다수 연예인 자살자들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던 것처럼 그도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이다

 

에밀 뒤르켐이 그의 자살론에서 자살률이 낮은 카톨릭과 반대로 개신교도들의 자살이 많은 것은 개인주의적 경향이 짙기 때문이라 하였는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개인주의가 인본주의의 제왕으로 등극한 오늘날 낯설지 않은 진단인 듯하다.


한 걸음 더 나가 조성돈 교수는 자살을 사회적 질병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만큼 자살은 이제 우리 사회와 삶의 한 부분이 됐다. 어찌됐든 이러한 우리 사회와 우리 교회의 부정적 현상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하게 한다.


물론 오죽했으면 자살하겠는가하는 동정도 할 수 있지만 어떤 이유로도 하나님에게 있는 생명의 소유권을 사람이 가질 수 없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한 술 더 뜬 이규태 장로라는 사람의 부정이다. 그의 삶은 국가와 사회, 교회의 부정의 극치였다. 그의 죄가 만천하에 드러남은 모두를 위해 천만다행으로 주님의 심판이라 할 수 있다.


방산비리혐의를 받는 그가 서울의 모 교회의 장로로 교회의 건축위원장을 지내면서 교회 내부에 그만의 비밀의 방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애교수준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은 그가 러시아에서 받은 수수료를 미국 계좌에 보관하다 교회에 기부금 형식으로 보냈고, 교회는 그것을 채무변제 형식으로 이 장로에게 다시 송금했다. 교회가 부정자금 세탁소였던 것이다.


더러운 빨래를 세탁하는 세탁소라면 좋겠는데, 더러운 것을 더 더럽게 만드는 불의한 교회였던 것이다. 도대체 그 나물에 그 밥이라지만 D교회 목사는 누구인가? 어찌 목사가 소변장로보다 더 더러운 대변목사가 되었는가? 그는 그동안 이장로를 가는 곳마다 자랑하며 훌륭한 장로라고 선전하였을 것이 아닌가?


목사의 자존심,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권위는 이미 쓰레기통에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개독교다. 이런 목사에게 안수를 준 목사들이나 이런 장로에게 임직을 시킨 목사들 모두 개독목사 개독장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혼전쟁을 하는 또 한 인물이 있다. 그는 한 때 잘 나가는 개그맨이었다. 그런 그가 비리를 저지르고 미국으로 떠났다가 돌아올 때는 목사로 둔갑하여 나타났다. 그는 더 이상 개그맨이 아닌 목사로 불렸다.


서세원 목사. 2011년 서울 청담동에다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던 그가 2015년 아내를 폭행한 폭력자로 우리 사회에 또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혼을 위한 법정 싸움에서는 목사로는 차마 입에 담기 부끄러운 말들이 여과 없이 쏟아져 실망의 난지도를 이루었다.


서 씨 아내는 남편이 목사가 되면 변할 것이고, 그러면 자신의 인생도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희망은 한낮 아지랑이에 불과했다고 한다. 서세원 씨는 목사가 된 후에도 계속되는 폭언, 폭행과 함께 외도를 하였기 때문이란다.


도대체 누가 이런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주었는가? 목사가 이렇게 아무나 되는 것이었던가? 언제부터 거룩한 성직이 개도 소도 되는 잡직이 되었는가? 그를 목사로 안수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서세원이라는 브랜드 효과와 혜택을 노리고 준 것은 혹시 아닌가? 거듭남에서부터 의심스러운 사람을 신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엄격한 자격과 절차를 거쳐 소명의식의 확고함을 확인한 후에 하나님의 목전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그 일을 행하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래서 서 씨보다 그를 목사로 안수한 이들이 먼저 하나님께 회개하여야 한다. 참으로 답답한 일은 이런 일들이 서 씨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때 대도로 유명세를 떨친 조00씨도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도둑이 진정으로 회개하였고 목사로의 소명이 분명하다면 당연히 목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목사가 된 후 여기 저기 간증을 다니더니 일본에 건너가 남의 담을 넘어 지금은 교도소에 안착(?)했다.


한 때 용팔이로 알려진 김00씨도 목사가 된 후 사랑의 교회에 불을 지르려다 실형을 받았다. 그 외에도 이런 사람들은 여럿 있다. 도대체 기독교는 왜 이런가? 그들을 바르게 인도하여 할 목사들이 도리어 그들을 적당히 이용하며 자기 업적을 쌓더니 자격이 검증되지도 않은 사람들을 목사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는 할 일 없으면 목사나 해 볼까하는 조롱 섞인 말들이 오고 간다.


유명인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절반의 자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목사가 되기 전 먼저 신자가 되었는가 부터 검증해야 한다. 거듭남의 확신부터 시작하여 분명한 소명됨이 있었는가를 사심과 배려 없이 철저하게 검증하고 또 검증해야 한다. 목사는 결코 아무나 되거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소식이 하늘 소리처럼 들려왔다. 물론 그의 행동에 대하여 세상은 비난했지만 신앙 안에서 그의 행동은 진정한 믿음과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제주지사 원희룡 안수집사다. 안수집사 원 지사는 지난 3월 제주도에서 열린 한라산신제제례를 이끄는 초헌관이었지만 그 역할을 부지사에게 대행하도록 했다.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국태민안이라는 명목아래 숭배되어지는 토템인 민족 신앙 행사를 거부했다. 대한민국은 어느 때부턴가 민족 신앙을 장려하고 마치 그것을 지킴으로 민족정신을 지키는 것 인양 선전하고 있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한라산신제가 토테미즘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것으로 유교제례에서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면 도민공동체의 간절함을 여러 전통문화에 섞어 구성한 것으로 종교적 의미는 없다며 그것이 도민의 일반적 정서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들은 헌법의 종교의 자유를 말하면서 역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도민을 위한 것이라는 억지 논리를 편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로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말씀은 포기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안수집사 원 지사의 결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일부 기독교인들과 일반인들은 문화적 기독교를 말하며 한라산 신제는 전통문화의 일부일 뿐이라며 저들을 거든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주지하는 것처럼 동양의 신관은 서양의 신관과 다르게 자연을 뛰어넘는 창조주를 믿기 보다는 자연의 힘이나 그 자체를 신으로 믿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기독교가 서구에서 들어온 종교이니 지금 한국 기독교도 기독교와 인본주의가 뒤섞인 서구사회 같은 구조를 이루면 합리적인 종교가 된다고 감언이설(甘言利說)한다. 이는 리차드 니버’(Richard Niebuhr)그리스도와 문화’(Christ and Culture, 1951)에서 언급한 대로 그리스도를 시대 문화와 조화시키는 자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제주시민 중 일부는 우리는 교회의 장로나 안수집사를 뽑은 것이 아니라 도지사를 뽑았다며 원지사를 비난하지만 그렇다하여 원지사의 종교가 무시되어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산은 산일뿐 신이 아니다. 그러나 원지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로 유일신이시다. 그래서 신 아닌 것을 숭배할 수 없고 오직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숭배하여야하는 것이다. 왜 기독교인들은 배타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하느냐고 비난하지만 실제로는 기독교인이야말로 진정한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우주에 신은 오직 한 분 여호와뿐이시고, 그 유일신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원지사의 믿음의 실천은 살아있는 순교와 다름없다. 요즘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적당히 타협하며 목적, 목표가 어떠하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눈을 가리려 하고 있는데, 정치적 큰 꿈을 꾸는 그가 이런 손실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한 것은, 앞서 언급된 무자격자를 목사로 만든 그들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 행동하는 믿음이다.


기독교는 문화화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화 된 문화를 만들어 복음으로 상황화해야 한다. 전통이니 민족이니 하며 우상 문화들에게 진리를 양보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목사와 신자들은 절대적 신관을 가지고 성경적 신앙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다시 십자가 복음으로 돌아가야 하고 부활신앙으로 회복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이러다가는 최윤식, 최현식이 ‘2020-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 2’에서 말한 한국교회의 위기는 그의 예상보다 더 빨이 올 수도 있다. 성직을 남발하지 말고, 세속화 된 신앙을 떠나 다시 복음으로 충만해야 한다. 이미 한국교회는 총체적 위기다. 누구를 탓하고 책임을 전가할 수 없을 만큼 비 복음적 신앙과 삶이 헐떡거린다. 선지자들을 통해 거룩한 삶을 요청하셨던 하나님의 그 시대적 간절함은 오늘 이시대 한국교회 귓가에 울리는 주님의 절규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물었다.

하나님을 믿느냐?”

노무현 대통령은 애매하게 믿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답이 오늘의 한국교회 모습 같아 씁쓸하다. 애매한 기독교, 애매한 목회와 애매한 신앙생활, 애매하게 변질된 복음이 애매모호(曖昧模糊)한 교회와 신자를 오늘도 탄생시키고 있어서다.


계인철 목사 / 광천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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