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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천(召天)

싱그러운 푸른 나무숲에서 벌써 여름의 서곡처럼 메미의 울음소리가 청아하게 들리는 계절이 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가뭄으로 인하여 지금 고통의 강을 건너고 있다.

요즈음에는 요란한 천둥번개라도 함께 하는 소나기가 그리운 날이 많아지고 기다려진다고들 말한다. 삶의 괴로움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우리 국민들은 메르스에도 절망 대신 희망을 찾아 이 혹독한 사막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아픈 현실 가운데 우리의 이웃 사역의 현장에서의 소식 중에는 소천이라는 메시지가 교단지나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로 슬픔의 전갈을 받은 적이 요즈음에 많았던 것 같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소식은 성경적으로 생각하면 슬픈 단어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쓰는 별세(세상을 하직한다)나 작고(고인이 됐다)가 아닌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천국으로 불러 가셨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된 길인가,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의 이별의 슬픔은 가족과 지인들에게는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삶의 괴로움으로 남는다. 얼마전 신학의 동산에서 젊은 시절의 구약학 교수님. 인생을 침신에서 후학들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신 고고한 학자의 모습으로 기억되시는 스승님이 미국의 이역 만리에서 소천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하여 듣고 몇 일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광주 H교회 목사님의 소천으로 방문했을 때, 찾아간 사모들의 손을 잡고 내 가슴이 펑 뚫린 것 같아요라며 우리는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

사역의 현장에서 우리는 동역자이므로 함께 느끼는 동감이었던 것이다. 천국에 가신 분은 황금의 계절(목표했던 기도의 응답으로 새 성전을 완성하시고 사역의 부흥) 중에 부르심을 받으셨으니 영광스런 소천으로 생각되지만 목사의 아내였던 사모님은 당장 남편없는 고아의 심경일 것이다.

지금도 용산역에서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가다 보면 샛강 옆에 우뚝 서 있는 Y교회를 볼 때 목산 동산에서 한 교실에서 공부하였던 목사님을 생각한다.

그분 또한 가장 침례교회적으로 교회 사역을 하셔서 후배들에게 얼마나 모범 답안같이 아름다운 목회를 하셨는지 모른다. 한 번은 부산 Y교회의 세미나에 오셨을 때였다. 침례병원 원목과 근무 시절이어서 아주 오래된 시절 그때는 골프하는 것이목회자 운동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운동이었다.

서울에서 비행기 타고 오는데 받은 것이라면서 함께 공부한 동문이라고 웃으면서 사탕 몇 알을 건너줄 때 골프를 한다면서요라고물었다. “아 그 운동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예요 전도하기 위해서 하는 운동이지요그때 부산과 서울 정치 1번지의 지역의 차이가 다른 것을 알고 물었던 질문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그렇게도 동문이 하는 사역이라고 앞장서서 용기와 힘을 주면서 교단마다의 일마다 앞장서 본을 보였던 목사님이 소천하셨을 때 얼마나 큰 슬픔과 아쉬움으로 남았는지 모른다.

함께 기숙사에서 후배로 공부하였던 서울 신림동에서 개척해서 사역을 잘하시다가 70년대 사명을 남편 목사님을 따라 미국 워싱턴에서 교회를 개척하시고 은퇴하셨는데 얼마 전 소천의 소식을 접하며, 미국에 갈 때마다 사모님이 주일 아침 나이 많으신 성도들을 교회에 모시고 다니는 것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었다.

주님의 부르심의 소식은 신학시절 추억의 그림으로 마음이 스산하여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던 기억이 새롭다.

몇 년간을 부산에서 수원 흰돌산기도원에 월요일마다 6시에 동래 전철역에서 버스로 6시간 달려서 흰돌산기도원초교파 목회자부부 영적 세미나에 열심히 참석했다. 그때 구포에서 함께 같이 다녔던 같은 지방 절친한 동역자가 얼마전 소천했다. 물론 병원에 여러 번 입원 소식을 들을 때마다 병문안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가장 친하였던 동기가 사라진 듯 하늘을 보고 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늘나라가기 전까지는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요즈음 영화 연평해전이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2002 한일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6, 서해 연평도에서 북한의 경비정이 연평도 서쪽 NLL2km 침범해 교전이 일어났던 실화를 토대로 하였기 때문에 더욱 실감나는 영화다.

나라를 위하여 망망대해에서 목숨을 걸고 지키는 해군들과 비무장 초소에서, 전선에서, 나라를 위해 고생하는 국군장병들과 하늘을 지키는 공군들의 노고를 생각할 때 그리고 일선에서 나라를 위해 순직도 불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후방에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지 않나 싶다.

메르스 감염이 의료인들에게 히포크라테스 소명으로 메르스의 퇴치를 위하여 온몸을 던져 싸우는 의료진이 우리 현실의 진정한 영웅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평해전에서 우리 용사들도 훈련되고 단련된 대로 행동한 것이 목숨을 바쳐 임무에 충실하며 나를 지키다 순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이 세상에 만연되고 있는 동성애의 부정한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거룩과 진리를 선포하는 하늘의 소명자로 본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소명의식으로 생명을 주님께 맡긴 진리의 사명자들이다. 우리의 소명이 실종되어 표류하고는 있지 않는지? 매일 점검하면서 건강한 마음으로 영적 전투에 임하는 파숫꾼이 돼야 할 것이다.

소천은 우리 전통 예절에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적 신종언어이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하나님 품으로 부르셨다는 의미가 포함된 영광된 천국 입성의 희소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장례식에서는 미신적인 행위와 미신적인 일은 일체 삼가고 모든 예식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중심이 되고 천국 가신 고인을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유족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행사이므로 소천은 행복한 단어이다.

남현자 사모 / 목산문학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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