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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교회, 다시 꿈꾸다

교회 창립 120주년을 축하하며 새 비전 선포



교회 창립120주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꿈의교회(안희묵 대표목사)가 지난 6월 19일 공주 백제체육관에서 “꿈의역사 120년, 꿈의교회 다시 꿈꾸라”란 주제로 창립기념감사예배를 드렸다.
공주와 세종, 대전 꿈의교회 성도 4000여 명과 외부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120년 동안 교회를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영광돌렸으며 주일학교 학생 1000여 명은 공주 문예회관에서 CCM댄스팀 노아와 개그맨 정종철 집사를 초청, 특별예배로 함께 했다.


1부 축하공연은 소울싱어즈와 소향의 찬양과 함께 꿈의교회 초기 성가대를 지휘하고 반주했던 오종근 장로(세종도담고 교장)와 이옥주 권사(공주여고 교장)의 특별찬양으로 120주년 창립예배의 시작을 알렸다. 2부 창립기념예배는 모든 성도가 한 목소리로 “임재” 찬양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해 3명의 원로장로들의 대표기도와 공주·세종·대전의 120명의 성도로 이루어진 꿈의연합찬양단의 특송이 많은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4000여명 성도들이 함께한 경배와 찬양의 시간은 그 어떠한 예배보다 큰 은혜가 넘쳤으며 이어진 120주년 기념 영상은 꿈의교회의 지난 역사를 성도들에게 보여주며 새로운 교회로의 비전을 심어줬다.
이날 “꿈의역사 120년, 꿈의교회 다시 꿈꾸라”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안희묵 목사는 “꿈의 교회는 어느 한 지역에 안주하지 않고, 여러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세계 열방의 모든 족속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하며, “이제 과거는 잊고, 새 꿈을 꾸고, 비전과 사명을 다시 높여 미래를 꿈꾸는 성도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설교 후 안희묵 목사는 120년의 역사 속에서 꿈의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겨온 믿음의 가문과 성도들을 격려했다. 특히 4대와 5대째 꿈의교회를 섬겨온 믿음의 가문과 50년 이상 꿈의교회를 섬겨온 성도들을 격려하자 많은 성도들이 감격스러워 하며 큰 박수가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꿈의교회는 공주시(오시덕 시장), 세종시(이춘희 시장)에 다음세대를 위한 장학금을 각 1000만원과 월드비전의 아프리카 잠비아에 우물 지원사업에 1000만원 후원하는 등 총 3000만원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꿈의교회는 지난 2015년 교단의 지도자를 세우는 침례신학대학교에 1억원을 기탁했고 월드비전에 1억 5천만원을 기탁하여 잠비아에 꿈의중학교를 설립하고 2개의 우물 지원 사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교단과 지역사회 그리고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모든 예배를 마치기 전 안희묵 목사는 20년전 꿈의교회에 부임할 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무모한 비전에 무섭게 순종해준 장로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앞으로도 계속 충성스러운 모습으로 섬겨주시길 당부하며 큰 박수로 장로들을 격려했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꿈의교회 창립 120주년 예배는 감동과 은혜의 시간이었으며 초기 반죽동교회를 섬겼던 30여명의 성도들이 참여해 그 의미를 더한 시간이었다.


꿈의교회는 1896년 미국 엘라씽선교회(The Ella Thing Memorial Mission) 소속 선교사인 파울링(Edward Clayton Pauling, 1864~1960) 선교사 일행에 의해서 창립, 같은 해 2진으로 들어온 스테드맨 선교사(Frederick W. Steadman, 1871~1948) 일행에 의해서 토대를 다지게 됐다. 스테드맨 선교사가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펜윅 선교사에게 모든 사역이 이양되게 되고 원산에서 함께 내려온 신명균 목사에게 공주를 중심으로 한 복음 사역을 맡기게 된다.



신명균 목사는 1903년 2월 10일에 침례신학대학교의 전신이 된 성경학원을 설립하고 이종덕 목사, 박로기 목사 등 교계의 지도자들을 세워가며 복음의 최전선에 앞장서게 된다. 이러한 복음의 열정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며 3번의 폐교를 당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는 1917년부터 1919년까지 일제의 포교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첫 번째로 폐교를 당하고, 1944년 5월 10일에 침례교단 전체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두 번째 폐교를 당한다. 그리고 한국전쟁 초기에는 반죽동교회가 공산군에 의해 점거 당하고 인민 재판소로 사용되어지며 교회는 세 번째 폐교를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끝까지 목숨 걸고 지킨 성도들로 인해 다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교회는 점차 성장하게 된다. 1953년 2월 8일에 다월 선교사의 도움을 얻어 장일수 목사(17대 담임목사)는 반죽동 교회에서 산성동의 일본식 가옥을 구입해 교회를 이전하게 되고 교회학교 등을 세워 복음 증거에 앞장서게 된다. 그리고 18대 이봉래 전도사는 반죽동 교회에 사회사업부 영민사 직조공장을 설립하여 지역사회를 돕는 일을 진행했다.


다양한 사역과 교육으로 성장하던 교회는 산성동 교회 건축 등의 문제로 분란이 일어나 성도들은 사분오열 흩어지게 되고 꿈의교회는 총회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던 중 어머니부터 3대째 꿈의교회를 섬겨오던 안중모 목사는 자신의 모교회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1971년 12월 안정된 목회지를 떠나서 공주교회로 부임하게 되고 이때부터 꿈의교회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부임 후 “찢어진 그물을 다시 꿰메자”란 표어를 내걸고 성경공부와 전도에 전념해 부임 3년만에 주일학교를 포함한 재적교인 500명의 교회로 폭발적인 성장하게 된다.



이후 안중모 목사는 48대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이 당선되어 교회는 교단을 섬기는 교회로 거듭나게 된다. 지역적인 한계로 교회 성장이 정체되자 교회 부흥을 위한 결단으로 70세의 정년을 포기하고 62세의 나이에 조기 은퇴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성실하게 목회하던 안희묵 목사를 초빙해 1998년 공동담임을 거쳐 1999년 9월 25대 담임목사로 세운다.  계속해서 2014 비전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한 꿈의교회는 2012년 세종시의 출범에 맞춰 카페브릿지를 오픈하고 주중에는 문화사역을, 주일에는 300여명이 예배드리는 예배처소로 사용했다. 세종꿈의교회는 2013년 12월 22일 세종시 한솔동에 예배당을 신축하고 현재 3000명이 모이는 교회로 급성장하며 한국교회에 주목을 받는 교회로 부흥하고 있다. 꿈의교회는 현재 공주, 세종, 대전이 한 비전과 사명으로 하나되는 멀티교회로 교회학교를 포함한 재적 6000명의 성도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세종시 새롬동에 460평의 글로리 채플(2017년 3윌 예정)을 추가로 설립하고 세종시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며 복음 증거 사역에 앞장서고 있다.                                                                        

/ 최치영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