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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과 상처의 시간을 극복하고 말씀 중심으로 일어선 ‘강릉교회’

예수 중심과 말씀으로 교회를 부흥시켜 가고 있는 전영균 목사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세워진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불안 요소는 내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교회의 상황이다. 성장보다는 안주가 편하고 적당한 선에서 재정이 맞춰지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교회 내 사역과 외부 사역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즉 “우리 교회만 괜찮으면 된다”는 마음이 팽배해진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면서 교회는 점점 도태되고 교회의 건강성을 잃어가게 된다. 작은 문제 하나가 교회 전체의 분란으로 작용해 교회의 시련으로 나타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목회자는 몸부림치지만 하나되지 못한 성도들의 모습에 좌절하고 실망하게 된다.
2010년의 강릉교회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뭔가 알 수 없는 문제들이 복잡하게 일어나면서 결국 갑자기 담임목사가 사임을 하고 떠나버렸다. 목양지에서 목자가 사라진 상황이었다.강릉교회는 영적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모교회의 아픔을 품고 부임한 전영균 목사(홍종화 사모)

강릉교회 인근에는 2004년 아름다운교회를 개척한 전영균 목사(홍종화 사모)가 사역을 하고 있었다.  개척 당시 강릉교회 중직이었던 전창균 장로가 아름다운교회 내부 시설과 여러 지원은 물론 3년 동안 교회 세를  안받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영균 목사는 셋째가 돌이 지날 때, 하나님께서 교회 개척의 소명을 담아주셨다. 당시 강릉교회 부사역자로 있으면서 모교회를 위해 더 헌신하고 충성되이 사역을 감당하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은 개척이었다.
“개척하자마자 성도들이 오고 채워지는 경험은 없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환상이고 현실은 매일 강단에 엎드려 기도하고 틈만 나면 지역으로 나가 전도하는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교회를 개척하고 해가 지나면서 후원의 손길을 끊어졌지만 그 자리를 성도들의 헌신과 봉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말 그대도 목회의 기쁨을 체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교회인 강릉교회의 어려움을 나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2010년 12월 전임 담임목사가 돌연 사임을 하고 공석이 된 상황에서 강릉교회 성도들이 전영균 목사를 찾아왔다. 담임목사직을 수락해달라는 것이었다. 교회를 개척하고 6년째 조금은 목회에 대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게 된 전영균 목사에게 새로운 선택의 순간이었다.
그는 그 제의에 먼저 기도가 우선임을 언급하고 아름다운교회 성도들에게도 기도를 요청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음성대로 전 목사는 2011년 1월 둘째주 아름다움교회 성도들과 기존의 강릉교회 성도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며 제2의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부임과 함께 찾아온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의 고난

강릉교회를 사역을 시작하면서 전영균 목사는 교회의 내적인 상처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성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또한 노후화된 교회 시설을 손보고 교회 사택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홍종화 사모는 교회 사택 수리를 챙기면서 매월 기간을 정해 금식하며 교회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하지만 사모의 몸 속에는 그때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질병이 자라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사택 수리가 끝나고 사택 생활을 시작할 무렵, 가벼운 감기증상을 보였던 홍 사모가 극심한 근육통증과 고열, 호흡곤란으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지역 병원을 돌며 투병생활이 길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서울아산병원으로 긴급 이송해 검사를 한 결과 ‘간질성 폐질환’이라는 희귀성 난치 질환을 앓게 된다.
좀처럼 흔들림 없었던 전영균 목사는 하늘이 무너져 내린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하나님의 뜻과 명령대로 순종하며 나아갔는데, 돌아온 것은 아내의 희귀 질환이었다. 사모의 병간호로 인해 주일 설교 외에는 교회를 돌볼 틈도 없었다. 교회는 교회대로 담임목회자 가정의 아픔이 자신의 가정의 아픔으로 생각하고 사모의 쾌유를 위해 기도했다.
극심한 통증과 고열,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을 처방받으면서 건강은 극도로 쇠약해지고 가능성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까지 나오면서 심리적인 고통까지 시달렸다.
전 목사는 “매순간 매일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은 꼭 있음을 고백하곤 했다. 반드시 길이 있으리라는 확신을 품으며 의사의 진단이나 처방보다는 치유의 하나님을 기다렸다”면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모든 양약의 처방을 끊고 단식원에서 말씀과 기도 생활, 생채식을 하며 체질 개선을 하면서 기적적으로 회복하게 됐다.
현재는 약 85% 정도 신체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와 전 목사의 사역에 동역하고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 삶을 책임져 주신 것이다.



말씀 중심의 설교와 교회 5대 기능에 충실

전영균 목사는 평소에도 늘 성경과 말씀공부 서적을 옆에 두고 있다. 그리고 항상 말씀을 쓰고 연구하며 성경의 깊이를 체험하고 있다. 교회 사역도 요란하고 시끄러운 것보다 말씀에 입각한 메시지와 성경 모임을 중심으로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전 목사는 “교회가 워낙 상처가 깊은 이들로 많다. 그 마음을 다시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 제 사역의 중심이다. 무너진 집 담장을 벽돌 하나 올리고 시멘트 하나 바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다시 무너지지 않도록 서서히 튼튼하게 다지는 것이 중요했다”며 ”더디가도 한 걸음씩 인간의 조급함을 좇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설교 본문도 절기를 제외하고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순차적으로 본문을 선정해 말씀을 전하고 있다. 또한 교회의 5대 사역(예배, 봉사, 전도, 교제, 양육)의 기본을 지키며 성도들에게 말씀을 증거하고 양육하며 성도들은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전도하고 봉사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어려운 성도나 주변인들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사재를 털어 줄 정도로 순수했다. 교회 재정에도 전 목사의 성품이 그대로 담겨지며 선교나 구제에 적잖은 재정을 사용될 정도로 선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전 목사의 끈기와 인내, 오래 참음을 통한 회복의 목회는 차츰 결실을 맺기 시작하고 있다. 교인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전 목사와 홍 사모의 사역에 동역하고 있다. 또한 교인들이 함께 전도훈련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참여하며 복음 전도의 사명을 키우고 있다.




“남들처럼 뛰어나고 특별한 목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이곳 강릉으로 그리고 모교회인 강릉교회로 부르신 목적은 분명히 알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고 고백한 전영균 목사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이 목회자 꾸는 가장 행복한 꿈”이라고 전했다.
교회의 위기와 목회자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일어나는 강릉교회. 장맛비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더욱 단단히 다져진 옥토로 지역의 선한 영향력을 미칠 날이 머지 않았다.
/ 강릉=이송우 부장